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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비트코인① 한국 화폐 붕괴의 역사

기사입력 : 2023년09월11일 17:03

최종수정 : 2023년09월11일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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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 제2차 긴급 통화조치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조치
한반도 통일되면 원화 가치는 대 폭락? 왜?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 영화에서는 가끔 개인 금고에 5만원권 화폐를 가득 넣어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테크 측면에서 보면 이런 보관 방식은 당연히 최악이다. 합법화할 수 없는 검은 돈이나 탈세 목적이 아니라면 은행에 입금해 3%의 이자라도 받는 게 정상적인 화폐의 보관 방법이다.

그런데 화폐는 과연 영원한 걸까?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쓴다. 일본은 엔화, 유럽은 유로화, 중국은 위안화를 쓴다. 한국은 당연히 원화를 쓴다. 흥미로운 건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영원한 화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한국 화폐의 붕괴 역사를 살펴보자.

◆ 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한국은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역사적으로 주변국가들의 침략을 받는 일이 흔했다. 너무 먼 과거로의 역사여행은 자제하고 가까이에 있는 1900년도부터의 역사를 살펴보자. 1900년도 초반까지 조선에서는 상평통보가 화폐로 통용됐다.

그런데 1910년에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조선왕조)이 망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35년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이 시기에는 일본제일은행에서 발행된 '엔'과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 엔'이 화폐로 통용됐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됐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 지던 1945년 8월의 패망 직전에 도쿄에서 황급히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 한국으로 공수해 온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발행된 화폐로 인해 한국의 총 화폐 유통량은 1개월만에 기존의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화폐의 유통량이 2배로 늘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렇게 급조해 발행된 화폐들은 일본인들의 본국 귀향 자금으로 활용됐다. 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과 한국에 있던 일본인 단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다.

그 결과 한국 내의 물가폭등으로 이어져 몇 달 사이에 생활물가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 당시의 물가폭등으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서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때 만약 화폐 대신 금을 가지고 있었다면 화폐가치 하락의 상당 부분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광복 이후 한국경제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는 조선은행권이 '원(圓)'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통용됐다. 이런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5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한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개전 3일만에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은 한국은행 본점을 점령한 뒤 지하금고에서 미 발행 조선은행권 '원(圓)'을 대량으로 발견한다. 북한군은 남한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이 화폐들을 불법으로 마구 발행해 버린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다시 한번 급락했다.

그래서 이 당시 조선은행권을 가지고 있던 평범한 국민들은 본인들이 보유한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걸 다시 한번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물론 전쟁 중에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 상황에서 위조지폐까지 유통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적군인 북한군이 불법으로 제조한 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1950년 8월 28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조선은행권 교환 및 유통에 관한 건"을 공포했다. 이는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 발행한 '한국은행권'과 1대1로 교환하도록 하고 조선은행권의 유통을 정지시키는 '제1차 긴급통화조치'였다.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운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려면 필수적으로 신분확인이 필요하니 불법으로 조선은행권을 손에 넣은 북한군은 한국은행권으로의 교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보통 화폐 개혁을 할 때는 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절하)를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1차 화폐 개혁때는 1대1의 비율로 단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의 제2차 긴급 통화 조치

이후 3년간의 기나긴 전쟁으로 경제는 폐허가 됐다. 한국정부는 막대한 군사비 조달과 파괴된 생산시설 복구비용으로 통화를 대량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폭락했고 심각한 물가상승 압력에 시달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3년 2월 15일에 '제2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하고 기존의 대한민국 화폐였던 '원(圓)'을 '환(圜)'으로 변경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앞의 '제1차 긴급통화조치'와 달랐던 부분은 교환비율이 1대1이 아니라 화폐 액면 단위를 100분의 1로 낮춘 '화폐 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였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면 화폐단위를 '100원(圓)'에서 '1환(圜)'으로 변경해 화폐명칭도 바뀌었고 화폐 교환비율도 100대1이 됐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국가의 화폐가 어려움에 처하면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가 진행됐다. 6.25 전쟁 시절의 한국뿐 아니라 1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까지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를 단행했다. 도대체 왜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를 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은행예금을 동결해 정부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정부는 '화폐개혁'과 동시에 은행예금도 일정 금액을 강제로 동결시켰다. 기존예금은 10만환(圜) 이상, 긴급통화조치로 예입된 구권예금은 3만환(圜) 이상을 대상으로 20~100%의 체증율을 곱해 특별 정기예금과 국채예금으로 전환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통화증가 요인이었던 '유엔군 대여금'의 상환을 진행했다. 결국 통화량 급증을 억제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큰 폭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 표기의 숫자가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화폐단위를 절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요금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000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됐다고 가정해 보자. 옛날처럼 현금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면 100만원의 지하철요금을 현금으로 직접 지불하는 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계산과 지불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액권을 발행하거나 아예 '화폐 단위 절하'를 단행하는 경우도 많다.

◆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 조치

우리가 만약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장롱을 뒤진 결과 한국 화폐 다발이 무더기로 나왔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런데 그 화폐의 발행일이 만약 1960년이라면 그 화폐는 지금 시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정답은 사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지금 사용되고 있는 '원(WON)' 화폐는 1962년 6월 10일부터 도입된 화폐다. 그래서 그 이전에 발행된 화폐는 한국은행에서 교환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런 화폐라면 화폐 수집상에게 팔아버리는 게 100배는 더 이득이니까 말이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건 해방상황도 아니고 전쟁상황도 아니었다. 긴급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정부의 긴급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평온했던 시기의 난데없는 '화폐개혁'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의장(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부가 집권했다.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산, 투자, 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예금 이탈이 진행됐다. 그리고 1년 뒤인 1962년. 침체된 경제활동 때문에 안정적인 정권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계속 심각해지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6월 9일 밤 10시에 '제3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했다. 박 의장은 부정축재와 음성적으로 축적된 자금의 투기화를 막고, 악성 인플레를 방지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게 바로 1962년 6월 10일의 '제3차 긴급통화조치'다.

 화폐 개혁의 핵심은 '환(圜)'에서 '원'으로 단위를 바꾸고, 10대 1의 비율로 절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구당 교환할 수 있는 돈이 최대 5,000환(圜)에 불과했다. 원화로는 500원이다.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의무적으로 저금한 뒤 6개월에서 1년 후에 찾을 수 있었다. 또는 산업개발공사의 주식(연 15% 배당 보장)으로 바꿔야 했다.

그런데 구권을 신권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은 발표 이후 고작 7일에 불과했다. 전 국민이 7일안에 이 모든 걸 처리하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개인의 사유재산을 상당히 침해하는 억압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당시는 전쟁상황이 아니라 평시 상황이었다.

이 발표로 경제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바로 월요일 새벽부터 은행에는 화폐를 교환하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고, 일선 상점에서는 '구 화폐'를 받지 않거나 물건가격을 크게 올렸다. 아예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한국경제는 더욱 더 침체됐다.

그런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왜 기습적으로 '화폐개혁'을 진행하며 무리수를 둔 걸까? 화폐개혁을 하면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과 중국 화교들이 엄청난 규모로 숨겨둔 돈을 '신 화폐'로 바꾸려 할 것이고 이 때 강제로 예금으로 묶어서 국가의 부족한 재정적자를 메우고 산업자금으로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1962년의 통화개혁은 한국은행 총재 등 관계 당국자와의 사전협의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됐다. 신은행권은 정부가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사에 비밀리에 발주해 제조했고 6월 9일 중앙정보부와 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은행 본지점으로 현송됐다.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은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진행된 '통화개혁'의 기존 '환(圜)화' 회수내역을 보면, 100만 환(신화 10만 원) 이하의 소액이 90.5%를 차지했고 1억 환(신화 1천만 원)을 초과하는 예입은 총7건으로 12억 환에 불과해 당초 정부의 예상과 달리 여유자금의 현금 보관규모는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부정축재를 통해 숨겨진 돈의 규모는 많지 않았던 셈이다.

또 중국 화교들의 경우 이미 중국 정부에게 몇 번의 뒤통수를 맞은 경험들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금을 선호해 왔다. 이런 이유로 중국 화교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화폐 대신 '금'으로 바꿔서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사정권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화폐개혁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화폐개혁으로 인한 경제 현장의 극심한 대혼란과 미국의 우려까지 전달돼 군사정권의 예금봉쇄 정책은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1개월 뒤인 7월 13일에 봉쇄예금 동결을 해제했다. 이로써 기습적인 통화개혁은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 인플레이션 방지 등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부작용만 남긴 채 초라하게 끝났다.

1962년의 화폐개혁 이후에 한국 국민들은 현금자산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15% 이자율(현재 시점에선 고금리지만 그 당시는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다)의 은행예금을 기피하고 토지와 주택 구입 등 실물자산 투자로 돌아섰다. 한국 국민들의 부동산 사랑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화폐는 안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국가의 필요나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화폐개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종잇장처럼 화폐가 사라질 수도 있다. 아무리 군사정권 시절이라지만 7일안에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지 않으면 휴지가 돼 버리는 정책은 공포스럽다.

물론 정부가 화폐를 강제로 뺏지는 않는다. 그런데 보통 화폐개혁을 할 때는 '구 화폐'를 '신 화폐'로만 바꿔주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다. 1명이 교환할 수 있는 돈에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강제적으로 예금시켜 버린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개인 재산권 행사에 굉장한 침해를 받게 된다.

1962년의 화폐개혁으로 변경된 화폐 '원'이 지금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바로 그 '원화'다. 화폐개혁 이전인 예전의 원[圓]과 구별하기 위해 지금의 '원'은 한글로만 표기하고 영문 표기는 'WON'이다. 한국 화폐 '원(WON)'의 역사는 고작 60년에 불과하다.

◆ 한반도가 평화통일 될 경우 한국 화폐 '원'의 가치는?

이제 오래 전 우리의 소원대로 한반도가 평화통일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미래에 북한과 남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글로벌시장에서 유명한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짐 로저스'는 2013년에 국제시장에서 북한화폐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 로저스'는 왜 북한화폐에 투자했을까? 만약 남북통일이 될 경우 한국이 충분히 보상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짐 로저스의 투자를 이해하려면 동독과 서독의 통일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 1990년 독일의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은 각자가 발행한 마르크(mark) 화폐를 썼지만 교환비율은 달랐다. 국가재정이 취약했던 동독의 화폐는 암시장에서 서독화폐의 4분의 1에 교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서독 사람들이 희생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통일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1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동독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봤다. 추가로 발 빠르게 암시장에서 동독 화폐를 대거 매입했던 서독 투자자들도 4배의 이익을 얻게 됐다. '짐 로저스'가 노리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화폐의 상황은 어떨까? 북한은 2009년에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전격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개혁 이후인 2023년 현재 기준으로 '북한 원'의 환율은 1달러당 약 8,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원∙달러 환율 1,300원과 비교하면 화폐가치가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짐 로저스'는 혹시 평화통일이 되면 한국이 독일처럼 화폐 교환비율을 1대1이나 1대2로 너그럽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굳이 가능성을 따져보면 한반도의 평화통일보다 북한이 한 번 더 화폐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여전히 심각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시 한번 화폐개혁을 진행하면 구권을 가지고 있는 '짐 로저스'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짐 로저스의 명성은 세계적이지만 그가 과연 '북한 화폐'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확률은 희박하지만 먼 미래에 남북 통일이 됐을 때 한국 정부가 과거 독일처럼 북한과의 화폐 교환비율을 너그럽게 가져가는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화를 보유한 한국 국민들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자산은 원화보다 달러로 보유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미래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 6.25 전쟁을 겪었던 한국뿐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 최근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까지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화폐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긴 하지만 그 역시 신용화폐이자 종이화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화폐붕괴의 보험성격인 '금'이나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기도 하다.

 

②편에서 계속… 비트코인② 독일 화폐 붕괴의 역사…나락 간 베네수엘라 화폐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자.

뉴스핌 (촬영 : 조현아 / 편집 : 문소희)

longinu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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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고향 땅에서 '5년만의 통산 13승'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빨간 바지의 마법사'가 화려한 금의환향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고향 팬들과 가족의 열렬한 응원을 받은 김세영(31·메디힐)이 고향 땅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로 천금 같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20년 11월 펠리컨 챔피언십 이후 5년이라는 긴 침묵을 깨고 LPGA 통산 13승을 기록했다. 한국은 올 시즌 6승과 함께 7명째 LPGA 우승자를 배출했다. 김세영은 19일 전남 해남군 파인비치 골프링크스(파72·6785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일 4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적어내 최종 합계 24언더파 264를 기록, 단독 2위 하타오가 나사(일본)를 4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24언더파는 대회 72홀 최저타 신기록이다. 우승 상금 34만 5000달러(약 4억9000만원)를 보태 통산 1518만 달러의 상금을 쌓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를 제치고 역대 상금 10위에 올랐다. 김세영이 19일 열린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일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LPGA] 이날 4타 차 선두로 출발한 김세영은 초반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3번 홀에서 짧은 파 퍼트를 놓치며 1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노예림에게 2타 차까지 쫓겼다. 그러나 5~7번 홀에서 3연속 버디를 잡아 추격자들의 의지를 꺾었다. 이어 9번 홀(파4)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2위와 4타 차로 벌려 우승 가능성을 높였다. 후반에는 추격자들이 타수를 줄이지 못하au 단독 2위 경쟁을 하는 사이 김세영은 편안하게 타수를 지켜가며 우승을 굳히는 상황으로 진행됐다. 후반 첫 4개 홀을 파로 지나간 김세영은 14, 15번 홀에서 버디를 보태 2위로 치고 올라온 셀린 부티에(프랑스)와 6타 차까지 벌려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해남 옆동네인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난 김세영은 한국 국적 선수로는 2021년 고진영 이후 4년 만에 이 대회 챔피언에 올랐다. 2019년에 시작한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은 2023년까지 한국 선수 혹은 한국계 선수들이 우승컵을 가져갔다. 2019년 장하나, 2021년 고진영, 2022년 리디아 고(뉴질랜드), 2023년 이민지(호주)가 우승했고 지난해엔 호주의 해나 그린이 이 대회 최초로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가 아닌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다. 2025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자 안세영. [사진=LPGA] 김세영은 2015년 LPGA 투어에 데뷔해 3승을 거두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2020년까지 매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9년에는 3승을 쓸어 담았고 2020년에는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2승을 달성하며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특히 김세영은 2018년 7월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에서 31언더파(63-65-64-65, 257타)로 우승하며 남녀 통틀어 72홀 역대 최저타 및 최다 언더파 신기록을 세웠다. 이전 기록은 LPGA 애니카 소렌스탐의 27언더파, PGA 어니 엘스의 30언더파였다. 한국 선수들은 이날 대약진했다. 김아림이 이날 6타를 줄이며 공동 3위에 올랐고 안나린과 최혜진은 무려 9타씩 줄여 나란히 공동 7위에 랭크됐다. 김효주와 이소미가 공동 10위에 자리해 한국 선수 6명이 톱10에 진입했다. 고진영도 8타를 줄여 고교생 아마추어 오수민과 함께 공동 19위로 순위를 크게 끌어 올렸다.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대회 중 은퇴 기념 케이크를 선물 받은 지은희(가운데). [사진=LPGA] 19일 열린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일 캐디로 나선 최나연. [사진=LPGA] 19년 LPGA 투어 생활을 마감하는 은퇴 무대로 이번 대회에 공동 24위로 마친 지은희는 9번 홀에서 현역 마지막 퍼트를 버디로 장식하며 갤러리들의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루키 윤이나는 3타를 줄이는 데 그쳐 공동 24위로 톱10 진입에 실패했다. 2023년 은퇴한 최나연은 이번 대회에서 이정은5의 캐디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psoq1337@newspim.com 2025-10-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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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빛섬 '청년 버스킹'... "분위기 만점 음악 즐겼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와이스 맨 세이, 온리 훌스 러브 인, 밧 아이 캔 헬프, 폴링 인 러브 위드 유." 바람 부는 한강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대표곡 '캔 헬프 폴링 인 러브(Can't help falling in love)'가 울려 퍼졌다. 제3회 싱어송라이터선발대회 '히든스테이지'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마누는 맨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가 환생한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히든스테이지 시즌3 TOP10' 무화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야외무대에서 감엔터테인먼트 주최로 열린 '2025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mironj19@newspim.com 2025.10.18  18일 오후 1시, 반포 한강공원 세빛섬에서는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가 후원한 '2025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가을비가 그치고 다소 바람이 불어 쌀쌀함이 느껴지는 날씨였지만 청년 뮤지션들의 음악을 향한 열정과 가을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히든스테이지 시즌3 TOP10' 오춘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야외무대에서 감엔터테인먼트 주최로 열린 '2025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2025.10.18 mironj19@newspim.com 삼삼오오 야외공연장에 모여든 시민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거나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고 다양한 음악을 구사하는 청년 뮤지션들의 공연을 즐겼다. 버스킹 축제의 문을 연 김마누는 "바람이 불었지만 이런 날의 매력이 있다. 오늘은 조금은 추워서 셋 리스트를 따스한 곡으로 바꿨는데 다들 따뜻하게 들어주신 것 같아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혼성듀오 섬과 도시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야외무대에서 감엔터테인먼트 주최로 열린 '2025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2025.10.18 mironj19@newspim.com  김마누의 무대가 끝나자 '히든스테이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밴드 '오춘'이 무대를 이어받았다. '깊을 오(奧), 봄 춘(春)'. 이름처럼 따뜻하고 깊은 감성을 전하는 팀이다. 대학 동기들과 군악대 인연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이 팀으로 경연이 아닌 야외 공연은 처음"이라며 "추운 날씨에 손이 어는 느낌도 들기도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만족스러운 무대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무대는 나린과 수피(루키상), 유구름으로 이어졌다. '히든스테이지' 톱 10에 올랐던 5인조 아카펠라 팀인 나린은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데몬헌터스'의 주제가인 '골든'을 아카펠라로 편곡해 불러서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용인에서 친구들과 함께 축제를 찾은 10대 여성관객인 B씨는 "아는 분들이랑 한강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축제를 보고 신기해서 구경하게 됐다"며 "오춘이 나올 때부터 봤는데 다들 너무 잘했다. 특히 나린의 '골든'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025 한강 청년 버스킹' 무대를 찾은 가족 관객이 포토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2025.10.18 mironj19@newspim.com  의정부에서 왔다는 20대 여성 A씨도 "드럼 선생님이 경연에서 상을 받으셨다고 해서 공연을 보러 왔다"며 "날씨가 춥긴 하지만 노래를 듣다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면서 미소 지었다. '히든스테이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유정이 선배가수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자 관객들은 가을이 무르익은 한강과 너무 잘어울리는 무대라면서 환호했다. 성해빈, 박은희의 혼성 듀오인 '섬과 도시', '히든스테이지'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무화, 톱 10에 올랐던 널디나, 김지신 등의 무대도 저마다 개성이 넘쳤다. 이날 무대에는 '김루꾸 재즈밴드'도 참여해 뉴올리언스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재즈 선율로 축제의 밤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각종 재즈 페스티벌과 공연 무대에서 50여 차례 이상 활약한 실력파 밴드답게, 세빛섬의 공기를 따뜻하게 물들였다. 발라드와 R&B, 재즈, 포크는 물론 록과 아카펠라까지 다양한 음악을 구사하는 청년 뮤지션들은 바람부는 한강에서 K-팝의 미래를 펼쳐보였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히든스테이지 시즌3 TOP10' 널디나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야외무대에서 감엔터테인먼트 주최로 열린 '2025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2025.10.18 mironj19@newspim.com  이날 공연장 한쪽에는 관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 부스도 마련됐다. '서울의 향을 찾아서'라는 이름의 향수 체험 코너에서는 선유·도산·연희·성수·삼청·후암·도화·낙원 등 서울의 대표 지역을 모티브로 한 향을 시향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자신이 고른 향에 원하는 향료를 섞어 '나만의 향수'를 완성하며 추억을 남겼다. 또 '한강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가족과 연인도 자주 눈에 띄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히든스테이지 시즌3 TOP10' 널디나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야외무대에서 감엔터테인먼트 주최로 열린 '2025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2025.10.18 mironj19@newspim.com 서울에서 가족과 산책 중 우연히 들렀다는 30대 남성 C씨는 "길을 걷다 들렀는데 노래가 너무 좋아서 자리를 잡았다"며 "향수 체험도 정말 좋았다. 무대와 체험 둘 다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조금 추워했지만 그 추위마저 분위기 같았다"고 웃어 보였다. 4시간에 걸쳐 진행된 '2025 한강 청년 버스킹'을 주최한 감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야외공연장을 찾은 시민들이 청년 뮤지션들 덕분에 수준 높은 음악을 만끽할 수 있었다"면서 "가을 한강을 배경으로 버스킹 공연과 이벤트가 잘 어우러진 축제였다"고 말했다.  oks34@newspim.com   2025-10-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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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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