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작가 변연미는 5월 28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태풍 이후 숲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열었다.
- 1999년 프랑스를 강타한 대태풍 '로다르'를 계기로 숲을 파괴와 재생이 공존하는 드라마틱한 인식의 장으로 그리게 됐다.
- 커피가루를 섞은 물감으로 독특한 질감을 구현한 그는 프랑스와 한국에서 24회 개인전을 열며 자연의 시간성과 감각을 담은 숲 연작을 선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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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태풍 후 목도한 대자연의 순환과 재생의 리듬 밀도있게 표현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1994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후 화가 변연미(BYUN Younmi)는 숲을 그리기 시작했다. '숲'을 주요한 주제로 삼아 자연을 단순한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과 인식의 장으로 확장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런 그의 그림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99년 프랑스 일대를 휩쓴 강력한 태풍 '로다르' 때문이었다. 그냥 태풍이 아니라 '대태풍'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걸 무너뜨리는 엄청난 태풍을 목도한 작가는 자연을 안정된 대상으로 바라보던 시선에 균열을 안겼고, 숲을 예측할 수 없는 힘과 순환의 구조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후 변연미의 그림은 보다 숲이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식의 장이자 파괴와 회복, 재생이 드라마틱하게 순환되는 장으로 바뀌었다.

작가로 데뷔 후 오랫동안 숲을 관찰하고 숲을 그려온 변연미는 1999년 매일 산책하던 파리 외곽의 벵센느숲이 태풍으로 절망의 풍경이 된 것을 목격했다. 집채 보다 큰 나무들이 퍽퍽 쓰러지고, 뒤엉킨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곤 그 절망과 통한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전 숲그림과는 180도 달라진 어둡고 장엄한 그림이 탄생했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 변연미가 고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변연미는 서울 관훈동 노화랑(대표 노세환) 초대로 '스스로 그러한 숲'이란 타이틀로 지난 5월 28일 개인전을 개막했다. 오는 6월 18일까지d 열리는 이 전시에는 대재앙의 폐허에서 목격한 자연의 순환과 재생을 특유의 필치와 감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내걸렸다.
태풍 이후 한동안 어둡고 장중한 숲 풍경을 그렸던 변연미는 이후 시간이 흐르며 놀라운 회복을 보여주는 자연의 에너지에 크나큰 경외심을 느꼈다. 그리곤 다시 찬란한 햇살로 가득한 빛나는 숲그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서울에서의 개인전은 태풍 '로다르'가 휩쓸고 난 후 검은 톤으로 장엄하게 그린 숲그림 연작과 다시 소생한 생명의 숲그림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이와 함께 제주도 곶자왈의 울창한 숲그림 대작도 나왔다.

노화랑 전시실에 들어서면 압도적 크기의 숲그림이 감상자의 시선을 붙든다.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햇빛으로 가득한 푸른 숲 그림이 펼쳐져 있다. 제주도 곶자왈의 울창한 숲을 그린 2021년 작품이다. 가로 4m에 달하는 '다시 숲 21-09'는 이 풍경화는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강렬한 빛이 감돌며 살아숨쉬는 숲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다. '기운생동'이란 수식어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작업의 큰 전기가 된 대대풍, 자연의 위력과 재생을 그리다
변연미의 작업은 1999년 전과 후로 나뉜다. 1994년, 서른의 나이에 접어든 작가는 5년만 현실과 떨어져 작업에 올인해보자고 되뇌며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비자로 파리에 당도했지만 막상 대학 수업은 한국서 배운 내용이라 작파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변연미의 회화세계를 통째로 뒤바꿔놓은 건 1999년 파리를 강타한 세기의 태풍 '로다르'였다.
"늘 산책하던 파리의 뱅센느 숲이 대태풍으로 완전히 초토화됐어요. 집채만 한 나무 뿌리들이 통째로 뽑혀 쓰러진 모습을 보는데 무서운 게 아니라 전율이 돋았죠. 제가 화면 위에서 추구하고 싶었던 가장 강력한 장력의 '선(線)'이 바로 제 눈 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곤 바로 작업실로 돌아와 대태풍이 휩쓸고간 벵센느 숲을 정신없이 그리기 시작했다. 슾을 처참하게 무너뜨렸던 태풍의 위력과 파괴력이 변연미의 화폭에 격정적인 선과 구도, 어둡고 장엄한 색채로 담겨졌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력을 회복해낸 숲의 놀라운 재생이 포개지기 시작했다. 해마다 시나브로 달라지는 숲의 천변만화하는 풍경이 작가의 끈질긴 표현으로 묵직한 실존의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커피가루가 만든 독특한 텍스처, '구상과 추상의 경계'
변연미의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탄탄한 붓질의 흔적과 함께 독특한 질감이 느껴진다. 거칠면서 미묘한 마티에르를 전해주는 것은 물감에 커피가루 찌꺼기를 섞어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화폭 곳곳에는 꺼끌거리는 질감과 깊은 색감이 구현되어 있다. 분명 구상이지만 마치 추상처럼 느껴지게 하는 표면인데 몇 발작 뒤로 물러서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웅장한 숲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변연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숲을 거닐고 산책한다. 산책은 작가에게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작업의 출발점이자 사유의 방식이다. 숲을 걷는 동안 그는 크고 작은 나무와 그 나무들이 품고 있는 녹색의 잎사귀, 그리고 공기와 빛,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탐색한다. 녹색의 잎은 한가지 녹색이 아니라 연하고 짙고, 각각 다른 채도를 지니고 있어 저마다 새록새록 다른 초록이다.

또 나무의 형태도 기기묘묘하기 이를데 없고, 숲에는 시간의 흐름이 켜켜이 녹아들어 있음을 절감한다. 결국 작가에게 숲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빛과 시간, 그리고 감각이 중첩된 총체적 대상인 것이다. 변연미의 그림 또한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며 '시간성을 품은 작품'이자 '감각의 숲'인 셈이다.
변연미는 1999년 이후 프랑스와 한국에서 23회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이번 노화랑 개인전은 24회 개인전이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루앙의 루앙대학교, 국립현대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모나코 시청, 전남 행촌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프랑스 메넨데즈 상(1999년)과 살롱 몽후즈 상(2000년), 모나코 국제현대미술제 모나코 시장상(2001년) 등을 수상했다.
art2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