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자영업·소상공인 어려움, 최저임금 인상이 가중시켜"
김대일 "최저임금 인상, 정책 취지와 달리 근로자 일자리 줄여"
전문가들 "정책기조 바뀌는 분위기...보완은 불가피한 선택"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부터 '경제 챙기기'에 팔을 걷어 부치면서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인과의 대화(1월 7일), 기업인과의 대화(1월 15일),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2월 7일)에 이어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대화(2월 14일)까지 경제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거의 열흘에 한번 꼴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개월 째 40%대에서 답보 상태를 유지, 경제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 차원의 행사를 크게 늘렸다.
또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사실상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톱다운' 형식으로 진행돼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온 문 대통령의 비중이 줄어든 측면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자영업자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청와대] |
◆ 김대일 서울대 교수 "최저임금 인상, 정책 취지와 달리 최저임금 적용 근로자 일자리 줄여"
그럼에도 불구, 네차례 이뤄진 경제 간담회에서 좋은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대화’에선 급기야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달라”(방기홍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 회장)는 직접적인 요구까지 나왔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아직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자영업과 소상공인들의 형편은 여전히 어려운데, 최저임금의 인상도 설상가상으로 어려움을 가중시킨 측면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최저임금의 인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의견도 충분히 대변되도록 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엄청난 산통 끝에 내놓은 것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인데, 돌아온 결과는 기대 이하"라면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보다 실패했다는 말들이 많다. 정부에서도 여론이 이 정도로 악화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5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열린 학국경제학회 학술대회 특별세션에서 "저소득층 근로자의 소득 제고를 목표로 한 최저임금 인상이 정책 취지와는 달리 최저임금 적용 근로자의 일자리와 근로시간을 감소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지난해는 정부 정책에 가장 힘이 실리는 집권 2년차였는데,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여 얻은 성과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은 형국"이라면서 "지금의 분위기로만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는 쉽지 않다. 인상 폭과 시기를 조절해서 탈출구를 찾거나 아니면 강도 높은 보완책을 내놓지 않으면 민심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여권 내 분위기는 궤도를 수정하기보다 보완책을 찾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여권 핵심인사는 "지금에 와서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백지화할 수는 없다. 그러면 정책 추진동력이 급격히 사라질 수도 있다"며 "결국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폭과 속도를 조절하는 쪽으로 보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여권에 따르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폭을 조절해가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법 등을 통한 보완조치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은 다음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업 대표 간담회 모습. [사진=청와대] |
◆ 소득주도성장 대표 정책 최저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 수정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조절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여당은 근로시간 단축의 보완책인 탄력근로제 확대를 2월 국회에서 입법화하겠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해 제 때 결론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탄력근로제 확대를 당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도 달라졌다.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기 어려운 지역 숙원 사업들에 예타 조사를 면제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의도다.
에타 조사는 대규모 국가 재정이 소요되는 사업의 정책·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춤했던 대형사업들이 진행된 점 역시 정부 정책기조 변화의 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지난 15일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과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청와대] |
◆ 전문가 "경제 정책기조, 사실상 바뀌는 상황...민간 역할 강화될 것"
박상병 "신자유주의적 방향 전환 우려 있지만, 경제 너무 어려워"
채진원 "외면했던 현실 직시, 과거 정권에 비해 긍정적 효과 나올 수도"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3년차를 맞아 경제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이같은 변화가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제 정책기조가 바뀌고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공식적으로 기조 변화를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공공의 역할을 강조하다가 이제 민간을 강조하는 것은 큰 변화인데, 이를 인정하면 야당이 사과를 요구하고 책임자 처벌을 말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비교정치학 교수도 "경제정책 기조가 변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겠지만, 보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성과를 못 냈다는 것은 청와대도 인정한 셈"이라며 "노선은 어쩔 수 없지만 기존 정책에 한계가 노정돼 보완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책기조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교수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처럼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경제가 너무 힘들어 그런 것을 논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신자유주의적으로 흐르는 것은 최소화하되 재정정책으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도 이것을 하지 않고는 지방에 대규모 자금을 넣을 수 없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이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 교수 역시 "그동안 외면했던 현실이나 보지 않았던 요소들을 보게 되면서 생긴 것"이라며 "현실을 인정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느꼈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dedanh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