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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석한 정청래의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메시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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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14일 페이스북에 글 올려
근현대사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정치 정체성'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인공지능(AI) 언론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는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은 정 대표의 이 메시지를 구글(Google)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Gemini)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뉴스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6년 2월 14일 이와 같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렸다. 제미나이가 보는 이 메시지의 주된 메시지와 의미는 뭘까"라고 물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의 알콩달콩 페이스북]

다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 전문과 제미나이가 답한 해석이다.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저는 1965년 5월 18일(양력) 충남 금산군에서 10남매중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 아내는 전남 강진군에서 역시 10남매 중에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1921년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1922년 전북 금산에서 태어났습니다.(그 때는 금산이 전북이었고, 1963년부터 금산이 충남으로 편입.)

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한 살 어린 꼬마 신랑에게 대둔산을 넘어 사십리를 걸어서 시집을 왔습니다. 이 산모퉁이 돌면 마을 나올까, 저 산모퉁이 돌면 마을이 나올까...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 낯선 땅 낯선 신랑에게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 시집을 왔다고 했습니다.

마당에서 연지곤지 찍고 혼례를 올리는데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도 궁금해서 맞절하다가 살짝 훔쳐보니 저하고 똑같이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큰 아들 낳고 마흔다섯 살에 10번째로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열 명을 낳았는데 저는 호적에 5남매 중에 막내입니다. 1939년생 큰 형님과 1953년생 둘째 형님 사이 14년 동안 다섯을 잃었습니다. 아이 낳고 첫돌 지나서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쯤 되면 홍역이 와서 데려가고, 데려가고, 데려가고 그래서 다섯을 연거푸 어머니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는 아기 무덤을 아장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아기가 죽으면 아버지는 하얀 천에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갔습니다.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가슴 속 무덤에 묻어야 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슬픔의 깊이를 저는 모릅니다. 어머니는 다섯 아기 무덤의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기 무덤을 어머니에게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탈과 압제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갑니다. 생떼같은 남편이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3년간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서 석탄을 캤습니다. 강제징용 끌려가서 못 돌아온 사람도 많은데 아버지는 다행히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돈 한푼 없이 다 떨어진 남루한 옷차림에 돌아왔지만 그래도 살아서 돌아온 것이 그렇게 기뻤다고 했습니다.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이 나면 다들 고생이지만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죽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저희 동네는 산골 오지마을이고 아버지는 화전민 출신입니다. 평지가 거의 없고 산동네 다랭이 논농사를 하는 산도 높고 골짜기도 깊은 산골 마을입니다. 산이 높고 험하다는 것은 인민군 빨치산이 많다는 뜻입니다. 낮에는 국군이 지매하고 밤에는 인민군이 지배하는 위험천만한 동네입니다.

어머니는 무학이라 글을 읽고 쓰지는 못했지만 말씀이 청산유수이고 삶의 지혜가 많아서 동네에서는 '변호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어머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군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중립외교, 균형외교를 했습니다. 낮에는 국군을 돕고 밤에는 몰래 인민군도 도왔나 봅니다. 해가 지면 인민군들은 총을 들이대고 밥을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민군들은 총을 들고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끌고 나갔습니다. 집 앞 논바닥에서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인민재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국군 편을 더 드는 반동으로 몰려서 즉결 처분 총살형을 선고받고 사형집행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인민군에 결박당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인민군 총살장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갔습니다. '골로 간다'는 표현이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트라우마입니다. 아버지는 인민군에 끌려 골로 갔습니다. 이 곳에 끌려가면 걸어 나온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시신을 수습하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밤 10시쯤 아버지가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사립문을 열며 "나 왔어~"라는 믿기지 않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어머니가 방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신발 벗지 마세요" 어머니는 기절초풍 기뻐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 촉은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자는 아이를 깨워서 둘러업고 솥단지 하나만 빼내서 머리에 이고 아버지와 4km 야간 산행을 했습니다.

면소재지 지서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인민군에 인민재판 받고 끌려가 총살장에서 죽을뻔 했는데 살아서 돌아왔다. 인민군에게 협력하겠다고 해서 살았는데 그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용서해달라." 그러나 경찰은 믿지 않았고 아침에 인민군 부역혐의로 이제 군군에게 총살을 당할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남편이 신발도 벗지 않고 이렇게 곧바로 자수하러 왔다"며 경찰을 설득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덕분에 우리 집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어린이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1950년대 중반 큰 아들이 새로 생긴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큰 형님이 중학교 3학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납부금을 낼 수가 없어서 자퇴를 시키러 아버지가 학교에 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이 아이는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고등학교까지 나오면 집안을 일으킬 수 있으니 내가 등록금을 내 줄테니 중학교는 졸업시킵시다"고 했답니다. 어버지는 끝내 그럴 수는 없다며 공부 잘 하는 큰 아들 손을 잡고 학교를 자퇴시켰습니다. 아들이 학교 갈 시간에 아버지와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런 큰 아들이 장성해서 장가를 갔습니다. 형수님은 어머니와 같은 동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어머니와 똑같은 코스로 대둔산 산길 사십리를 걸어서 우리 집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큰 며느리가 첫 손주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큰 며느리보다 5개월 늦게 저를 갖고 말았습니다. 첫 손주 해산을 돕고 며느리를 돌봐야 할 시어머니가 임신을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했답니다.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저를 지우려고 대전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막상 산부인과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생명인데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 며느리 배를 보니 남산만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산부인과 가서 저를 떼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기억 납니다. "어머니 두 분이 좋아서 저를 가질 때는 언제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저는 뱃속에에서 제 생애 첫 번째 투쟁, 생존권 투쟁을 했습니다. "어머니 저를 낳아 주세요" 수술대에 누웠는데 뱃속에서 아기가 요동을 치고 노는데 얘를 떼면 내가 큰 벌을 받겠구나 싶어서 수술 중지를 외치고 낳은 것이 접니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지요.

외할아버지는 동네 훈장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자 아이가 배우면 못 쓴다'고 공부를 안 시켰답니다. 먼발치에서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까지 혼자 뗐다고 했습니다. 입으로만 외운 겁니다. 그런 어머니가 제가 여섯살 되던 해부터 농사일로 고단할 텐데도 밤에 호롱불 밑에서 한글을 독학으로 뗐습니다. 제가 일곱살이 되자 어머니는 저에게 가나다라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저는 한글을 깨우치고 '국민교육헌장'을 읽고 쓰고 외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이름도 못쓰고 학교 가던 시절이라 저는 신동의 탄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담임 선생님께서 "이름 쓸 줄 아는 애 손들어 봐" 그래서 제가 번쩍 손을 들고 칠판에 백묵으로 "정 청래" 이렇게 글씨를 쓰자 선생님께서 "정청래 반장"이라며 저를 반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다 어머니 심모원려 덕분입니다. 반장이 되니 6학년 누나들이 교실 청소를 하고 나면 나는 책·걸상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날씨판에 맑은 날이면 햇님, 비가 오면 우산, 흐린 날에는 구름을 붙이고 한 시간 늦게 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시간 늦게 집에 가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여름방학 한달 내내 나의 첫 번째 정치구상에 들어갔습니다. 개학날 아침 조회 때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을 안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인사를 안 하냐고 혼을 낼 기색이길래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반장직을 사퇴 합니다" 그러지 선생님도 이에 질세라 "너는 미성년자이니 자기 결정권이 없다. 어머니 모시고 와라"

"어머니 저 반장 사퇴하고 왔어요" "뭐라고 내가 너 반장시킬려고 을매나 고생했는데 안 된다 안 돼. 누구 맘대로 반장을 그만둬. 너 이 놈의 자식..." 하면서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시다 말고 감나무 가지를 꺾어서 내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릴 기세로 뛰어오셨습니다. 이에 질세라 저는 젖먹던 힘까지 내서 마을 뒷동산까지 도망가서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어머니가 밥 먹으로 오라고 동네 한바퀴를 하며 저를 부르고 다니셨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군 장병과 거수경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초딩 1학년 짜리가 밤이 깊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자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저를 부르러 다녔습니다. "청래야 밥 먹어라" 저희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밤이 되면 옆집 부부싸움까지 다 들립니다. 큰 산소에서 몸을 숨겨 있는데 무섭기도 하고 어머니가 심각하게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청래야, 그까짓 것 반장 안 해도 된다. 얼른 밥 먹으러 와라" 어머니를 믿고 밤 10시쯤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누구 맘대로 반장 그만두냐. 절대 안 된다"고 태도를 돌변해 어머니가 완고했습니다. 저는 제 생애 첫 단식투쟁으로 맞섰습니다.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밥을 안 먹자 그제서야 어머니는 "알았다. 그까짓 것 반 장 안 해도 된다. 학교 가자" 그리고 제 손을 잡고 학교 교무실에 가서 "우리 아들 반장 사퇴를 어머니로서 인허가 합니다"고 말씀하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평생 "공부하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산골 오지 시골 깡촌의 삶이 다 그러했듯이 저희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직 물려받지 못한 산에 아버지는 불을 질러 곡괭이 하나로 밭을 일궜습니다. 아버지는 화전민이었습니다. 집에 1km쯤 떨어진 산에 6천평의 밭을 일궜으니 얼마나 할 일이 많았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가 뜨기 전에 밭에 가셨고 해가 지고 껌껌해서야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제일 싫었습니다. 반공일과 공일이면 어김없이 산과 들, 논과 밭에 일하러 갔습니다. 겨울이면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아버지가 만들어준 꼬마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다녔습니다. 평일에는 소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이는 담당은 제 몫이었습니다. 소 풀을 뜯기러 다니다 쇠죽을 끓이면서 마늘을 구워 먹었습니다. 어렸을 때 마늘을 많이 먹었고 금산 인삼농사를 지으며 인삼 잔뿌리를 그렇게 많이 먹어서 제가 건강합니다. 학교에 가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참 좋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산골 오지 가난한 동네입니다. 운동화는 중학교 입학식날 처음 신어봤고 바리깡의 빡빡머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나의 아픔이고 부끄러움이었습니다.(사진은 중3 때 모습)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옷차림은 얼굴처럼 까만색, 아니면 흰색이었습니다. 때꼬장물이 흐르는 우리 시골 아이들은 한 여름이면 맨발로 다니고 둠벙에서 옷 안 입고 멱을 감았습니다. 축구도 맨발로 했습니다. 그때는 맨발로 다녀도 발바닥이 안 아팠습니다.

6학년 때 서울에서 한 여자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우리 동네 조그만 교회로 부임한 전도사 집 딸이었습니다. 내가 본 우리 동네 여자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가위로 싹뚝 자른 단발이 아닌 웨이브가 약간 있는 긴머리에 피부는 복숭아 빛처럼 빛났고 옷은 흑백 단색이 아니라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의 숄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달걀형에 눈을 검고 컸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 소개를 마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다음 순서가 지난달 월례고사 시상식이었습니다. "우등상 정청래" 상을 받고 돌아서 들어오는데 그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전학 오자마자 처음 들은 이름이 정청래고, 처음 눈이 마주친 것도 정청래임이 분명합니다. 내 이름과 내 얼굴을 같이 기억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선녀가 하강한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의 검은 눈과 나의 검은 얼굴 속에 박힌 내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나의 가슴은 한없이 뛰었습니다. 사랑은 순간이고 찰나에 오는 것임을 나는 일찍이 알았습니다. 그 아이도 나의 존재를 또렷이 기억했을 겁니다.

"아부지, 저 내일 모레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 해요. 네~ 이번 주만 일 안하고 교회 보내 주세요. 저 꼭 교회에 가야 돼요. 그러자 아버지는 "야~ 교회에 가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안 돼 이번 주 일요일에는 콩타작 하는 날이다. 너는 밭에서 콩을 지게 지고 날라라. 그래야 내가 타작을 하지..."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일요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1km쯤 떨어진 콩밭에서 콩줄기를 잔뜩 지게에 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작업 분량이 있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집 마당과 콩밭을 오가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하필이면 12시 쯤 교회가 끝나고 그 아이가 빨래터로 오고 있고 나는 빨래터를 지나 집 마당으로 콩줄기를 지고 갑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얄궂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숨이 헐떡헐떡 막히고 때꼬장물 흐르는 나의 비참한 모습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창피하고 또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나의 옮기기 싫은 발걸음이 그 아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어쩐답니까. 그 아이와 내가 10m쯤 가까이 왔을 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바람이 홱~불어서 지게 균형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비틀비틀 넘어지려는 지게의 끝을 작대기로 부여잡고 온몸으로 무너져 가는 지게를 지탱하고 있는 순간 지게도 무너지고 나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아이 바로 코 앞에서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멘붕이 왔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재빠르게 지게를 벗고 개구리처럼 이마를 땅에 대고 땅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 아이가 나를 보던말던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지 않았으니 그 아이가 나를 본 것도 무효처리하고 싶었습니다. 몸을 땅에 대고 엎으려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어깨를 두들겼습니다. "너 정청래지, 괜찮아" 나는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이런 내 모습의 내 이름을 기억하다니...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다니. 빨리 내 곁에서 멀어졌으면 좋겠는데 그 아이는 내가 다쳐서 꼼짝 못하고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아이고 그게 아니라니까. 제발 좀 가라구 제발. 그 아이는 계속 내 곁을 지키고 떠날 생각이 없었습니다.(계속됩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02.09 pangbin@newspim.com

제미나이의 해석

정청래 의원이 2026년 2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족을 지켜온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헌사와 자기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제미나이가 분석한 이 메시지의 핵심 의미와 주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근현대사의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글의 중심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6·25 전쟁, 그리고 극한의 빈곤을 모두 겪어낸 어머니가 있습니다.

생존의 지혜: 무학(無學)이었음에도 '변호사'라 불릴 만큼 명석했던 어머니가 인민재판과 총살 위기에서 남편을 구출해내는 과정은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것이 '가족을 지키려는 여성의 의지'임을 보여줍니다.

상실의 아픔: 10명의 자녀 중 다섯을 홍역으로 잃고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을 '아장살이'라는 단어로 형상화하며 그 시대 어머니들이 감내해야 했던 보편적인 한(恨)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2. '정청래'라는 정치인의 뿌리와 자기 정체성

이 글은 정 의원이 왜 지금의 성격과 정치적 자산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원담'이기도 합니다.

투쟁의 시작: 낙태 위기에서의 '생존 투쟁', 초등학교 시절의 '반장 사퇴 투쟁'과 '단식투쟁'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강단 있는 기질이 모태에서부터, 그리고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위트 있게 풀어냈습니다.

정무적 감각: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과 '균형 외교'를 언급하며 자신의 정치적 감각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임을 강조합니다.

3.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

명절은 가족의 부재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막내들의 만남: 10남매 중 막내인 자신과 아내의 배경을 언급하며 가난했지만 북적였던 옛 시절을 소환합니다.

성장 소설 같은 서사: 짝사랑하던 전학생 소녀 앞에서 지게를 지고 넘어졌던 부끄러운 기억 등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배치해 '정치인 정청래'가 아닌 '인간 정청래'로서 대중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합니다.

요약과 결론

결국 이 메시지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시대의 고통을 지혜와 눈물로 이겨낸 어머니였다"는 감사와 그리움의 표현입니다.

비극적인 현대사(강제징용, 6·25)와 개인적인 성장사(가난·첫사랑)를 교차시키며 독자들에게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그 희생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계속됩니다'라는 예고는 이 서사가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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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ADR 30일부터 전환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SK하이닉스 주식예탁증서(ADR)와 국내 보통주 간 전환 절차가 오는 30일부터 시작된다. 다만 국내 원주를 ADR로 바꾸려면 별도의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하고 발행 물량에도 제한이 있어, 두 시장의 가격 차이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ADR 상장의 의미를 단기적인 주가 흐름보다 글로벌 투자자 기반 확대와 미국 자본시장 진출에 두고 있다. ADR 발행과 키옥시아 지분 매각 등으로 확보한 현금의 일부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추가 환원 방안도 연내 공개할 계획이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의 모습. [사진 = 뉴스핌DB] ◆30일부터 양방향 전환…차익거래는 '제한적'SK하이닉스는 29일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한국거래소 원주 추가 상장이 완료되는 다음 날인 오는 30일부터 ADR을 원주로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나스닥에서 거래되는 ADR 10주를 국내 증시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보통주 1주로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ADR 1주가 국내 보통주 10분의 1주(0.1주)에 해당하도록 발행됐기 때문이다. 29일 현재 SK하이닉스 주가는 130만원, SK하이닉스 ADR은 130달러다. 현재 환율은 감안하면 ADR 10주는 188만원으로 국내 주가 보다 높은 상황이다. 미국 투자자가 ADR을 원주로 바꿔 국내에서 팔 경우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신고 절차·물량 제한…가격 괴리 당분간 지속가격 차이를 이용하려면 국내 원주를 사서 ADR로 바꾼 뒤 미국에서 매도해야 하지만, 원주에서 ADR로의 전환에는 규제상 신고 절차와 발행 한도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양방향 차익거래가 자유롭지 않아 ADR에 붙은 가격 프리미엄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국내 기업의 기존 주식예탁증서(DR) 사례를 고려하면 원주를 ADR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규제상 신고 절차가 필요할 수 있으며 통상 수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물량에도 제한이 있다. 현재 ADR 전환 한도는 이번 공모를 통해 발행한 신주 규모인 1779만주로 설정돼 있으며, ADR 총 발행 잔량도 이를 초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30일부터 양방향 전환 체계가 시작되더라도 원주와 ADR 사이의 가격 차이가 단기간에 완전히 해소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원주에서 ADR로의 전환에는 시간과 물량 제약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ADR은 공모가(149달러)를 밑도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AI 투자 둔화 우려와 글로벌 반도체주 조정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글로벌 자본시장 진출"…주주환원도 확대 검토다만 SK하이닉스는 이번 ADR 상장의 의미를 단기 주가보다 글로벌 자본시장 진출과 투자자 기반 확대에 두고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나스닥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기술 경쟁력과 성장성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신뢰를 확인한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주요 고객 및 파트너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향후 ADR 비중 확대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회사는 "ADR 비중 확대는 규제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면서도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보유 현금 활용 방향도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 지분 매각과 ADR 발행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AI 시대 성장 기회를 위한 적기 투자 ▲안정적인 재무구조 유지 ▲주주환원 확대라는 세 가지 원칙 아래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주주환원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SK하이닉스는 "시장의 높은 관심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의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ADR 공모와 관련한 규제와 절차상 제약으로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방식과 규모를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되는 대로 연내 시장과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 syu@newspim.com 2026-07-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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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상반기 美로비 자금 34억원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쿠팡이 국내 규제 현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워싱턴 정관계를 상대로 한 로비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쿠팡Inc가 올해 상반기 신고한 로비 지출액은 237만달러(약 34억4200만원)로, 자체 조직과 외부 전문업체를 통해 백악관과 미 의회, 주요 행정부처 등을 폭넓게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제재를 미국 기업 차별로 규정하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공화당 의원들의 연명서한과 하원 조사보고서, 외국 공무원 입국 제한 법안 발의로 구체화됐다. ◆ 상반기 237만달러…외부업체 6곳 가동 29일 미국 상원 로비공개법(LDA) 공시에 따르면 쿠팡Inc가 올해 상반기 신고한 로비 지출액은 총 237만달러(약 34억4200만원)다. 이는 지난해 연간 지출액 227만달러(약 32억9700만원)를 이미 10만달러 웃도는 규모다. 올해 1분기에는 109만달러(약 15억8300만원), 2분기에는 128만달러(약 18억5900만원)를 지출했다. 2분기 지출액은 1분기보다 17.4%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지출액 110만달러(약 15억9800만원)와 비교하면 올해 상반기 로비 비용은 115.5% 증가했다. 쿠팡Inc는 자체 조직과 ▲볼러드파트너스 ▲컨티넨털스트래티지 ▲크로스로드스트래티지 ▲밀러스트래티지 ▲모뉴먼트애드버커시 ▲윌리엄스앤드젠슨 등 외부 업체 6곳을 활용했다. 접촉 대상에는 미국 상·하원과 백악관, 국무부·상무부·미국무역대표부(USTR) 등이 포함됐다. [AI 인포그래픽=김정인 기자] ◆ 서한·보고서 거쳐 법안까지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제재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는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은 올해 들어 조사와 서한, 보고서,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지난 2월 쿠팡Inc에 한국 정부의 조사·제재와 관련한 문서와 통신 기록 제출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쿠팡 관계자의 증언도 요구하며 한국 정부의 미국 기업 차별 여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어 마이클 바움가트너 공화당 하원의원은 지난 4월 공화당 하원의원 54명과 함께 한국 정부에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한국 온라인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밀려날 경우 테무와 알리바바, 쉬인 등 중국계 플랫폼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조사 내용을 토대로 지난 1일 한국 정부의 미국 기업 차별 의혹을 다룬 중간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반복적으로 조사하고 경쟁사보다 과도한 규제와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이 제출한 자료와 관계자 증언도 보고서에 활용됐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뉴스핌DB] 정치권의 문제 제기는 법안 발의로도 이어졌다. 바움가트너 의원은 지난 22일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을 경제적으로 차별한 외국 정부 당국자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고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이민·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국 공무원 입국 제한법안'으로 불리는 H.R.9834는 차별적 정부 조치에 관여한 외국 공무원을 입국 불허·추방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현재 하원 법사위원회에 회부된 발의 초기 단계다. 바움가트너 의원은 법안 설명자료에서 한국 당국의 쿠팡 조사와 과징금을 미국 기업 차별 사례로 제시했다. 다만 법안은 쿠팡과 한국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며 유럽연합(EU)의 구글 규제와 브라질의 미국계 플랫폼 규제도 함께 언급했다. ◆ 쿠팡 "합법적 활동…수출 확대 목적" 쿠팡은 미국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한 로비가 미국 헌법과 관련 법률에 따라 보장된 합법적인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자사의 로비 규모도 미국 주요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과 비교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공식 로비 의제가 미국산 상품 수출과 미국 내 일자리 창출, 한미 경제·통상 관계 강화라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포춘 글로벌 500 첫 진입을 발표하면서도 자신을 시애틀에 본사를 둔 미국 기술기업으로 소개하고, 지난해 미국 상품·서비스·농산물의 해외 판매액 가운데 50억달러 이상을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쿠팡을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차별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 국적과 관계없이 플랫폼 사업자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kji01@newspim.com 2026-07-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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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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