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네프트·루코일 전격 제재
달러 결제망·해상보험망까지 봉쇄
중국·인도 정유사들 단기 공급 차질 '불가피'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미국 정부가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와 루코일을 동시 제재했다. 러시아의 전쟁자금 흐름을 차단하려는 조치로, 아시아 주요 고객국인 중국과 인도의 원유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재무부는 22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며 두 회사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번 조치의 목적은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모든 법인은 자산이 동결된다. 미국 기업, 개인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재무부는 11월 21일까지 기존 거래를 종료하도록 유예 기간을 부여했는데, 이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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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있는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8월 15일(현지시간)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5.08.27 kwonjiun@newspim.com |
◆ 러시아산 원유 절반 차지…중·인도 정유사 직격탄
로스네프트와 루코일은 하루 400만 배럴이 넘는 러시아 원유 수출의 절반가량을 담당한다. 석유·에너지산 수익은 러시아 연방정부 예산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 서방이 2022년 말 배럴당 60달러 상한제를 도입한 이후, 두 기업은 중국·인도 시장을 중심으로 수출을 유지해왔다.
케이플러의 무위 쉬 선임 애널리스트는 "이번 조치는 러시아 해상 원유 수출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주요 구매국들이 단기적으로 매입을 축소하거나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인도에서는 국영 정유사인 인디언오일·바라트페트롤리엄·힌두스탄페트롤리엄과 민간 대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 HPCL-미탈 에너지, ONGC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로스네프트가 구자라트주 바디나르 정유소를 운영하는 나야라 에너지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원유 확보보다는 정제제품 판매에 차질이 우려된다.
◆ 중국도 신중 모드…"단기 중단은 불가피"
중국 국영 정유사들도 '러시아산 리스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쉬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모든 국영기업이 로스네프트·루코일 관련 화물에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며 "러시아산 원유의 완전 중단은 아니더라도 단기적 공백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보텍사에 따르면,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는 로스네프트와 파이프라인 공급 계약을 맺고 있으나 해상 원유에 대한 장기계약은 없는 상태다.
◆ 왜 중국도 '비상'인가
미국의 제재가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이번 조치가 달러 결제와 해상 운송망 전체를 포괄하는 금융·거래 제재이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로스네프트와 루코일을 '특별지정국민(SDN)' 명단에 올려, 이들과 거래하는 개인·기업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달러 결제망 접근을 차단했다. 즉, 직접 제재 대상이 아니더라도 이들과 거래한 제3국 기업 역시 '세컨더리 제재(2차 제재)' 위험에 노출된다.
원유 거래는 대부분 달러 기반으로 이뤄지고, 선박 운송에는 미국·영국계 보험사(Lloyd's, AIG 등)의 해상보험이 필수다.
따라서 로스네프트·루코일산 원유를 구매한 선박은 보험 보장을 받지 못하고, 중국 기업이 해당 물량을 수입하더라도 결제·운송·보험망이 막혀 사실상 거래가 어려워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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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에 따르면 릴라이언스는 올 하반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한다. [사진= 로이터 뉴스핌] |
중국은 러시아와 파이프라인을 통한 일부 직수입이 가능하지만, 해상 운송 비중이 높기 때문에 단기적 공급 차질은 피하기 어렵다.
결국 중국도 직접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달러 결제·보험·운송망의 '미국 중심 구조' 때문에 간접적인 타격을 받는 셈이다.
◆ "러시아 수익은 줄이고, 공급 충격은 피하려는 전략"
래피던 에너지그룹의 밥 맥낼리 대표는 "미국은 러시아의 수익만 줄이면서도 수출 자체는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제재로 인해 수입국들은 새로운 운송·결제 경로를 찾아야 하며, 이는 거래비용 상승과 복잡성을 초래한다.
어게인 캐피털의 존 킬더프 파트너는 "비(非)제재 원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제유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발표 직후 브렌트유는 5% 가까이 뛰어 배럴당 64.91달러를 기록했고,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3.93% 상승한 60.8달러에 거래됐다.
◆ "가격 아닌 원천 차단"…G7 가격상한제보다 한층 강력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기존 G7의 가격상한제보다 한층 강력하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거래되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가능했지만, 이번 제재는 가격에 상관없이 거래 자체를 금지한다는 점에서 '전면 봉쇄'에 가깝다는 것이다.
반다 인사이츠의 반다나 하리 창립자는 "이번 조치는 워싱턴이 물러설 수 없는 고강도 압박"이라며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한 통화로도 상황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