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국회 등 전문가 인터뷰①
"일단 사람이 바뀌어야"…정치인들 도덕성 제고·리더십 고민 필요
2025년,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변혁을 요구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우리 정치는 적대하고 증오하고 대립한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 대통령은 탄핵 심판의 대상이 됐다. 극단으로만 치닫는 정치 환경에서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 못 하는 이는 없지만 정치권의 대화와 타협은 늘 파행과 결렬이라는 늪에 빠졌다. 뉴스핌은 설문조사를 통해 22대 국회의원들이 생각하는 정치개혁의 방향성을 청취, 여야가 공감할 만한 정치개혁의 과제를 도출하고자 한다.
[서울=뉴스핌] 지혜진 신정인 기자 = 강대강 대치로 시작한 22대 국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심리적 내전 상태'가 극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제도 개선 과제로 국회의원 특권 폐지, 비례대표 확대, 정당혁신, 입법부 권한 강화 등을 꼽으면서도 본질적으로 정치가 달라지려면 사람과 리더십의 문제가 수반돼야 한다고 봤다.
뉴스핌은 2025년 신년 기획을 준비하면서 학계, 국회 등 다양한 현장의 전문가들로부터 '현재 정치권에서 가장 시급한 제도 개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들었다. 인터뷰들은 대부분 12·3 비상계엄 이전에 진행됐으나 양극화된 한국 정치를 진단한다는 점에서 이후에도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글싣는 순서] - 2025 신년기획 '정치개혁'
1. 대한민국, 대변혁 변곡점에 서다
2. 개혁과제는…與 "선거제" vs 野 "검찰개혁"
3. 여야 "대통령제 중임제 개헌" 한목소리
4. 이원집정부제는 '글쎄'…대통령 권력 분산엔 '찬성'
5. 선거제도 개혁 어떻게…여 "병립형" vs 야 "준연동형"
6. 바람직한 공천제도…여야 "중앙공천 유지, 투명·공정성 강화"
7. 현실정치에 적합한 정당제는…여야 "3~4개 다당제가 적절"
8. 양원제 도입에 대한 의견은…여야 모두 '단원제' 선호
9. 선거연령 하향 부정적..."현행 만18세가 적합"
10. 필리버스터에 대한 의견은…"강화해야" vs "대체 방식 찾아야"
11. 일하는 국회 되려면…여야 "상시회 채택·국정감사 유지"
12. "특권 폐지·정당개혁·책임정치 필요…제도보다는 사람"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25일 서울 성북구 국민대학교에서 뉴스핌과 만나 정치개혁을 위해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만 굽신거리고 선거 끝나면 온갖 특권을 누리지 않나. 국회의원은 국민의 공복인데 300명은 많다"면서 "국회의원을 늘리고 싶으면 무보수 명예직으로 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보좌 직원 수(1인당 보좌진 9명)라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는 가진 사람이 공동체에 제공하는 서비스"라며 "그런데 한국은 선거공영제에 평상시 정당 운영비까지 지원받고 있다. 국민이 봉인가"라고 지적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11월 26일 국회 인근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최 소장은 "비례대표 수가 40여석까지 줄었는데 80~100석 가까이 늘리는 개혁이 필요하다"며 "비례대표를 늘리면 제3당의 진입을 용이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지금처럼 당대표 입맛대로 뽑는 게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비례대표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소선거구제에서 선출된 사람들은 지역 단위로, 본인 선거구 중심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비례대표가 많아지면 좀 더 넓은 시야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최 소장은 "국가의 중대 사안에 한해서 국민투표를 도입하는 개헌도 의미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 대표는 지난해 11월 28일 뉴스핌과 만나 "모든 정치개혁은 정당 혁신이 전제된 이후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정당은 헌법 8조에 등장한다. 입법·사법·행정보다 먼저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기관이 정당"이라며 "지금처럼 부패하거나 극단화된 정당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제도 개선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민심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게 정당"이라고 덧붙였다.
신 대표는 정당 혁신 이후에 입법부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 성숙의 차원에서도 국회 우위, 입법 우위로 갈 필요가 있다"면서 오히려 탄핵 제도를 상시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탄핵한다고 해서 국회가 막 나가는 게 아니다. 국회는 민주적 통제를 항상 해야 하지 않나.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황두영 작가는 지난해 12월 2일 국회에서 뉴스핌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국회로 쪼개진 이중권력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봤다. 특히 제도 개선을 통해 정치적 책임 소지를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황 작가는 22대 국회의 극한 대치 상황을 언급하며 "국회나 대통령 모두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실패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지 않나. 최종적으로 부담을 갖고 결정할 만한 이유가 없는 정치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황 작가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로 들며 "거부권 제한을 어디까지 둬야 하는지 아니면 국회가 최종적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거부권 사용 이후 재의결 정족수를 조정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국회가 매일 치고받고 치열한 논쟁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변화가 없다. 변화는 없고 서로 상처만 남는 게 정치 현실"이라고 했다.
◆ "일단 사람이 바뀌어야"...정치인들 도덕성 제고·리더십 고민 필요
전문가들은 제각각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정치하는 사람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 교수는 "제도를 바꾸거나 강화하면 정치적 문제 상황을 일정 정도 완화할 수 있을진 몰라도 한계가 있다. 정치인들이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정치 환경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도덕적으로 부패한 지도자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건 위험하다. 사법리스크가 있는 사람이 야당 대표로 있지 않나. 그런 것만 보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엄청나게 퇴보한 상태"라면서 "젊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두고 공동체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 풀뿌리로 지역구에서 출마하고, 거기서부터 중앙 정치로 올라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소양, 도덕성, 리더십, 국제적 감각이 길러진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소장은 "정치는 제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어느 조직이나 누가 '사장'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나. 왜 '윤석열'이고 '이재명'인가. 시대가 원하는 리더의 상이 달라진 건 아닌지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신 대표도 "일단 사람을 바꿔야 한다. 우리 헌법이 잘 만들어진 편이다. 결국 제도를 누가,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다원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정치는 정책, 조직, 선전·선동 세 분야로 나뉘지 않나. 평가 지표를 다원화해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짜야 한다. 애초에 정치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잘 선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heyj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