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정계 입문… '오세훈법'에서 '5공 용퇴론'까지
무상급식 논란에 연이은 낙선… 10년의 정치 시련
당내 경선서 나경원 이겨...정지적 재도약 계기 마련
[서울=뉴스핌] 이지율 기자 = "지난 10년 동안 많이 죄송했다.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 시장으로서 10년 간 살아오면서 그 죄책감, 자책감. 격려해주시는 시민들을 뵐 때면 더 크게 다가오는 죄책감, 책임감. 그 모든 것을 늘 가슴에 켜켜이 쌓으면서 여러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날을 저 나름대로 준비해왔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국민의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선출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6분의 수락 연설 동안 '죄송', '용서', '죄책감' 등의 단어를 15번 반복 사용했다. 고인 눈물을 참아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후보 선출 소감을 이어간 오 전 시장은 이제 세번 째 서울시장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을 이유로 재선 당시 중도 사퇴하고 야인의 길을 걸어 온 오 전 시장. 그가 4일 나경원 전 의원과의 초박빙 승부 끝에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자 여권도 바짝 긴장한 모양새다.
중도층과 부동층 표심이 관건인 이번 선거에서 '강성 보수' 이미지인 나 전 의원보다 '중도 보수' 오 전 시장의 등판이 더 위협적이란 분석이다. 경선 내내 더 유력하다 여겨지며 여성가산점까지 받은 나 전 의원을 5%p 이상 격차로 꺾은 그의 최대 강점으로는 '중도 확장성'이 꼽힌다.
한 여당 의원은 이날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여당에겐) 오 전 시장이 가장 버거운 상대"라며 "보수층 지지를 받으면서 중도 확장성까지 갖췄다. 나 전 의원이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비해 본선 경쟁력도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단일화 최종경선에서 오 전 시장이 이기면 안 대표의 중도층표까지 오 전 시장에 쏠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한 서울 지역구 중진 의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100%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 오 전 시장이 당선된 것을 평가해야 한다"며 "당원보다도 일반 국민 지지가 더 높은 오 전 시장을 여권에선 더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오세훈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부산시장 후보 경선 결과 발표회에서 후보 수락 인사를 하고 있다. 2021.03.04 kilroy023@newspim.com |
◆ 36살 정계 입문… 셀럽 '오세훈'에서 '5공 용퇴론'까지
잘생기고 세련된 젊은 변호사. 당시까지는 한국에 생소했던 주거환경권을 내세운 일조권 소송 사건으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오 전 시장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셀럽'이었다.
33살의 나이에 대기업을 상대로 한 일조권 소송에서 승소를 거두며 '환경 전문 변호사' 타이틀을 얻게 된 그는 이어 방송계로 진출해 유명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등을 진행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부드러운 외모, 능숙한 말솜씨로 '미스터 마일드'란 별명을 가졌던 당시 그의 인기는 일반인으로서 거의 처음으로 남성 정장 브랜드 광고모델을 했다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오죽하면 오 전 시장은 1996년 2월 동아일보에서 조사한 '결혼하고 싶은 남성' 6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 설문조사 7위가 영화배우 이병헌 씨였다.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에게 발탁돼 보수의 아성 서울 강남을의 국회의원이 된 그의 당시 나이는 39살. 당내에선 초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 회장을 맡는 등 당내 개혁에 앞장섰고 국회에선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하며 일명 '오세훈법'을 만들었다.
초선이었던 오 전 시장의 이름이 법안 명칭에 들어간 건 꽤나 파격적인 일이었다. 오 전 시장은 이후 기업이 법인 명의로 정치자금을 낼 수 있는 길을 원천봉쇄한 '정치자금법 개혁안'을 만들어내며 의원들로부터 '오세훈 악법'이란 원성을 사게 됐다.
2003년 한나라당이 정권탈환에 실패하자 "진심으로 정권을 재탈환하려면 5·6공 출신 의원들이 2004년 총선에서 물갈이 돼야 한다"며 '5공 용퇴론'을 주장한 그는 정치권에 입문해서도 여전한 '셀럽'이었다.
오 전 시장은 그렇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조그마한 기득권이라도 이를 버리는 데에서 정치개혁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대로 이제 실행하려 한다. 나아가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총선불출마를 선언했다.
정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그의 정계은퇴는 당에 큰 압박으로 이어졌고 60여 명의 원내외 정치인들이 총선불출마를 선언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8월 서울 혜화동 무상급식 주민투표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무상급식 논란부터 연이은 낙선… 10년의 정치 시련
국민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퇴장한 오 전 시장이 다시 정치권의 부름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긴급 차출된 그는 경선 당시 '이미지 선거로 흐른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미지는 아무나 좋은가.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10년 간 노출된 공인으로 살면서 이렇게 신뢰 받는 이미지는 강금실 전 장관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치며 33대 서울시장에 취임한다.
45살의 나이에 인구 1000만 도시의 수장이 된 오 전 시장은 ▲세빛섬 ▲다산콜센터 설립 ▲수도권 통합 대중교통 환승제 실시 ▲세계 도시경쟁력 9위 달성 등 업적을 남기며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에 오른다.
그렇게 여전히 '셀럽'의 삶을 이어가던 오 전 시장은 2011년 정치 경력에 최대 오점을 남기는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당시 전면적인 무상급식 실시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밀어붙였지만 투표율 미달로 개표가 무산돼 투표함조차 열어보지 못한 것. 당의 만류에도 사퇴를 강행한 그의 결정은 고(故) 박원순 전 시장에게 서울을 내주는 시발점이 되며 아직까지 그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2021년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쟁자였던 나 전 의원이 "스스로 내팽겨쳐버린 시장직을 다시 구한다는 것이 과연 명분이 있겠냐"고 공격하자, 오 전 시장은 "자리를 건 것에 대해선 국민께 여러 차례 사죄 말씀을 드렸다"면서도 "적어도 한번 정도는 원칙을 바로 세우고 싶었고 끝까지 싸운 것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시장직 중도 사퇴 이후 2016년, 2020년 총선에서 연이어 낙선한 그는 이제 세번째 서울시장 도전을 앞두고 있다. 출마 선언부터 야권 단일화를 강조한 오 전 시장은 '제3지대 단일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최종 단일화 경선을 시도한다. 오 전 시장과 안 대표 모두 중도층을 주 기반으로 하는 만큼 '경선룰'이 승패의 핵심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오세훈 측 핵심인사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 공식 후보인 만큼 단일화 방안은 당과 상의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지만 캠프 측은 실제 이날 오후부터 관련 논의에 들어가 5일 오전 단일화 실무 협상 책임자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jool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