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비·정유설비·전쟁 구조까지 얽힌 구조적 의존
공급 충격 커지는데 대체는 더 어려워진 '이중 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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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한국의 원유 공급망이 '싸서 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적 딜레마에 빠졌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과 시장 변화가 이어졌으나 결과적으로는 다시 70% 수준으로 회귀했다. 지정학 리스크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커졌지만, 설비·수송비·시장 구조가 얽히면서 대체 옵션은 오히려 줄어드는 '이중 제약'이 현실이 됐다는 지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 1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의존 배경과 과제' 보고서에서 원유 도입선 다변화 필요성은 커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시장 여건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 줄어든 듯했던 중동 의존…결국 다시 70%
KIEP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2015년 82.3%에서 2021년 59.8%로 6년간 22.5%포인트(p) 떨어지며 수입선 다변화 성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하지만 2023년 71.9%로 다시 뛰어올랐고, 이후에도 70% 내외 수준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중동 70% 의존'이 한국 원유 공급망의 새로운 상수가 된 셈이다.
같은 기간 미국·호주 등 비중동 원유 비중은 확대됐지만, 전체 판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3분의 1 이상은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차지하고, 아랍에미리트(UAE)·이라크·쿠웨이트 등이 그 뒤를 잇는 구조가 고착됐다.
보고서는 한국의 중동 의존을 '정책 실패'보다 경제성과 산업 구조가 만든 귀결로 본다. 우선 지리적 요인이 가격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2025년 기준 중동산 원유의 수송비는 배럴당 1.87달러로 글로벌 평균보다 1.12달러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유종이라도 중동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들여오면 '운임 프리미엄'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 정유설비의 체질도 중동 편중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한국 정유사는 중동산 중질·고황 원유를 대량 처리할 수 있는 고도화 설비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미국산 경질유 등 다른 유종으로 바꾸면 설비 활용도와 수익성이 동시에 떨어질 수 있다. 설비와 조달선이 서로를 전제하는 구조가 되면서, 중동에서 벗어날수록 단기 비용 부담이 커지는 역설이 생긴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원유 거래 지형이 바뀐 점도 중동 의존 고착을 부추겼다.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를 줄이자 중국·인도가 이를 대거 흡수했고, 그 여파로 중동산 원유가 한국·일본 등 아시아 수요에 더 많이 배정되는 흐름이 나타났다는 게 KIEP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가격·설비 적합성·시장 접근성' 세 요소가 결합해 중동 의존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작동해온 셈이다.
◆ 공급 충격 커졌지만…대체는 더 어려워졌다
문제는 중동 의존이 더 이상 '싸고 안정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충돌과 호르무즈 해협 긴장 고조로 중동에서 하루 1000만배럴 안팎의 공급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호르무즈를 오가는 원유·제품 물량이 '일종의 실질적 봉쇄'에 가까울 정도로 줄면서, 단기적으로 하루 800만배럴 규모의 공급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문제는 대체 공급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글로벌 화석연료 투자 위축으로 주요 산유국의 증산 여력은 제한적이고, 미국·브라질·가이아나 등의 생산 확대도 중동발 공백을 메우기엔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설령 물량을 구해도 '질'이 또 다른 제약으로 등장한다. 비중동 지역 원유는 황 함량·밀도 등 유종 특성이 달라 국내 정유설비와 완전 호환이 어렵고, 이 경우 정제마진 하락과 설비 효율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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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한국은 공급 충격은 과거보다 커졌지만, 이를 회피하거나 완충할 수 있는 선택지는 줄어든 '이중 제약'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면 당장의 비용·효율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반대로 현 구조를 유지하면 거시경제 리스크가 커지는 딜레마다.
◆ 해법은 단계적 접근…"당장은 확보, 결국은 구조 전환"
KIEP는 대응 방향을 '단기 수급 안정–중기 다변화–장기 구조 전환' 세 단계로 제시한다. 현재처럼 지정학 리스크가 극대화된 국면에선 가격·수익성보다 공급 안정성을 우선해 접근 가능한 원유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첫 과제다. 특히 호주·미국·앙골라 등 이미 석유제품 교역이 활발한 국가들과의 협상을 통해 원유 구매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이 제안됐다.
중기적으로는 도입선 다변화를 뒷받침할 정책 지원이 관건이다. 중남미·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새로운 공급처를 발굴하되, 추가 운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해상운임 지원과 장기계약을 뒷받침할 금융·보험 지원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특정 국가·해협에 대한 리스크 평가를 정례화해 위험 구조가 다시 고착되지 않도록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산업 구조 자체의 전환 없이는 근본 처방이 어렵다는 점도 강조된다. 재생에너지·전기차 확산, 석유화학 구조조정 등을 통해 국내 석유수요를 줄이는 한편, 정유설비를 다양한 유종을 처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연화해 특정 산지에 대한 락인(lock-in)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동 70%'가 아니라 '어디든 30% 이상 쏠리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목표로 에너지 안보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 한 줄 요약
한국의 중동 원유 의존은 '싼 기름'이 만든 구조적 고착으로, 공급 충격이 커질수록 더 벗어나기 어려운 거시경제 리스크로 변질되고 있다.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