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일본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됐다.
21일 임시국회에서 치러진 총리 지명 선거에서 다카이치 총재는 1차 투표에서 237표를 얻으며 과반(233표) 득표에 성공해 일본의 제104대 총리에 올랐다.
이후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총리 임명장을 받는 친임식과 각료 인증식을 거쳐, 이날 밤 다카이치 내각이 공식 출범한다.
◆ 보통의 샐러리맨 가정에서 일본 총리까지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정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습 정치인과 달리, 평범한 맞벌이 가정 출신으로 정치 가문이라는 배경 없이 독자적으로 기반을 닦아 온 인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치와 인연이 없던 평범한 샐러리맨 가정에서 자라나 영국의 마가렛 대처 전 총리를 동경했던 보수 논객이 마침내 '유리천장'을 깼다"고 평가했다.
다카이치는 1961년 나라(奈良)현 출신이다. 아버지는 회사원, 어머니는 경찰관인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고베대학을 졸업한 뒤, 정치인 양성 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에 들어간 것이 정치 입문의 출발점이었다.
1992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듬해인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은 해에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신진당을 거쳐 1996년 자민당에 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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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제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의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아베 전 총리와 정치 행보 함께...'여자 아베' 별명
국가관이나 정치 신념이 닮은 아베 전 총리와는 정치 행보를 함께 해왔다. 아베 전 총리 시절 각료를 맡으며 중앙 정치 무대에서 입지를 넓혔다. 특히 2022년 신설된 '경제안보상'을 역임하면서 반도체·핵심 기술 보호, 공급망 관리 등 전략 산업 육성에 주력했다.
다카이치는 일관되게 보수적 정치 노선을 유지해 왔으며, 2022년 아베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당내 보수파의 대표격으로 자리매김했다.
위안부 문제, 역사 교과서 서술 등 민감한 역사 인식에서 수정주의적 입장을 보였고, 가족 제도나 성(姓) 제도 개혁, 동성혼 인정 등 사회 제도 변화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언론에서는 그를 '여자 아베'라 부른다. 아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자위대 강화, 헌법 개정 필요성, 전통적 가치 수호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다카이치는 스스로를 아베의 후계자로 규정짓는 시각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며 "자신의 길을 간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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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다카이치, 일본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 될까
2021년 처음으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아베의 지원을 등에 업고 1차 투표에서 기시다 후미오에 이어 의원표 2위를 기록하는 선전을 펼쳤다.
2024년 총재 선거에서는 당원·당우 표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앞서며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역전을 당해 총리 자리를 눈앞에서 놓쳤다.
다카이치 총리의 등장은 일본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사건이다. 첫 여성 총리라는 역사적 상징성과 더불어, 보수적 노선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와 국제사회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일본의 외교 균형,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 같은 구조적 문제 해결은 다카이치의 리더십을 시험할 과제다.
26년간 연립정권을 이어 온 공명당과 결별하고 일본유신회와 새롭게 손을 맞잡은 다카이치 총리가 어떻게 정권을 운영하고, 어떤 메시지로 일본의 진로를 제시할지에 따라 향후 일본 정치의 색깔과 국제적 위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