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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셀럽에 길을 묻다] ① 영화감독 이장호 "돈키호테 같은 저돌성이 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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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한국영화사를 흔히 '별들의 고향'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1970년대 청년문화를 선도했던 최인호 원작, 이장호 감독의 영화 '별들의 고향'이 개봉 50주년을 맞았다. 데뷔작이 히트작이 됐던 이장호 감독도 올해로 감독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이라는 명대사로 잘 알려진 '별들의 고향'은 우리 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던 작품이었다.

이장호 감독은 1945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 건축미술학과를 수료했다. 대표작인 '별들의 고향'(1974)에이어 '어제 내린 비' (1974)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한동안 칩거해야 했다. 그후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등 사회성 짙은 작품들을 연출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칼리가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은 당시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였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감독 이장호. 2024.08.08 oks34@newspim.com

이장호 감독은 1996년부터 중부대학교, 전주대학교,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1977),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협회부이사장(2000), 전주시 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2001),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2005),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회부위원장(2007)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2002년 서울시문화상, 2003년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현재 사단법인 신상옥기념업회 이사장과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 최인호청년문화상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장호 감독은 현실과 영화의 거리를 좁히는 작품들로 정권에 순치돼 온 충무로의 관습을 깨고 사회성 짙은 작품을 만들었던 기린아였다. 청춘물로 시작하여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는 리얼리즘 영화를 만들고, 한때는 강렬한 섹스물로 극장의 흥행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장호 감독이 고등학교 동창인 소설가 최인호의 작품 '별들의 고향'을 영화로 만들어서 데뷔작이 출세작이 된 이야기부터 사회성 있는 작품과 에로틱한 영화를 넘나들었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대담은 이장호 감독과 영화계 선후배 감독으로 오랫동안 교유해 온 영화감독 이무영(동서대 영화과 교수)이 진행했다.

이하 대담전문.

- 이무영 감독: 감독님 반갑습니다. 감독님이 이제 영화계에 모습을 드러낸 지가, 그러니까 데뷔하신 지가 50년이 됐거든요.
이장호 감독: 그렇게 됐어요.
- 이무영 감독: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이 50주년을 맞이했다는 뜻이 되는 건데, 이 영화를 50년 만에 다시 보신 느낌이 어떠신지요?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은데…. 그리고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요즘은 어떤 느낌이신지 한번 듣고 싶습니다.
이장호 감독: 난 근질근질할 것 같아서 걱정을 했는데, 빠져드니까 그냥 처음 보는 것처럼 또 보게 되더라고요. 하도 오래돼서. 아이들은 텔레비전에서 '별들의 고향' 한다고 해서 봤죠. 잠자고 있는데 깨워서 나가서 보면 마음이 상할 때가 있는 게…. 난 진지하게 빠지는데 애들은 웃는 거야.
슬픈 장면에서 막 웃으면서. "되게 웃긴다" 그러고(웃음). 그럼 이게 날 모욕하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고. 젊은 관객들은 우리 때 젊은 관객하고 또 달라져서 자기중심이고. 어, 뭐라 그럴까. 더 개인주의가 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기 감각이 더 소중하고. 아버지지만 예의를 좀 갖춰줬으면 좋겠는데. 좀 겁이 나요. 젊은 사람들하고 볼 때는.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감독 이장호가 서울 여의도 본사 스튜디오에서 영화 '별들의 고향' 50주년을 맞은 소회를 밝히고 있다.  2024.08.08 oks34@newspim.com

- 이무영 감독: 그게 아마도 그 명대사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50년이면 시대가 엄청나게 많이 변했잖아요. 우리가 언어를 쓰는 어떤 태도도 변하고. 그런데서 오는 괴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어떤 상황을 만드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도요. 예전에도 봤지만 예전의 감성으로 보고. 물론 그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이런 대사들이 그때의 감성으로 보면 감회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장호 감독: 그 때도 코미디언들이 많이 그렇게 했거든요.
- 이무영 감독: 패러디를 한 거지요.
이장호 감독: 그래서 나는 이게 웃기는 대사가 아닌데. 나는 진지한 대사인데. 오히려 좀 간지러운 대사가 "제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 뭐 그런 게 난 더 좋아요. 예쁘잖아요. 그런 얘기가 회자됐으면 좋겠는데 그건 안 되고.
- 이무영 감독: 오늘 이 방송이 끝나면 그 대사도 회자가 될 것 같습니다. 감독님, 사실 데뷔작을 만드셨을 때 나이가 굉장히 젊으셨잖아요. 그리고 그렇죠. 조감독으로서 경험도 물론 연출부로서 오랫동안 신상옥 감독님 밑에서 수학을 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어떻게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되셨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거든요. 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별들의 고향' 연출하려고 선배들 찾아다니면서 책도 팔았다

이장호 감독: 내 계획에 있었던 작품이 아니고, 최인호가 가까운 친구였으니까 최인호가 신문 소설을 처음 썼고 그때도 내가 영화 만든다는 실감을 못 가졌어. 신문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으니까 점점점 욕심이 나고 책을 읽으면 항상 영상이 떠오르잖아요. 머릿속에 그걸 자꾸 영상화 생각을 하다가 홍콩에 갔는데 아버지까지 이제 신문 연재된 거를 계속 보내주시더라고. 홍콩에 한 1년 있었는데 연재된 거를 다 오려서 보내주고 그러니까 점점점 현실적으로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돌아오니까 신문 소설은 끝났고 이제 단행본으로 출판했단 말이에요. 그게 베스트셀러가 된 거예요.
- 이무영 감독 : 그랬군요.
이장호 감독: 그러니까 그때서야 조감독 입장에서 최인호한테 "야 이거 내가 영화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가 굉장히 뻔뻔스러운 것 같고 관심은 있는데, '조선일보'에서 영화화 경쟁이 붙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그 당시에 유명한 정소영 감독, 최인현 감독이라고 그 당시에 거장이 있었고, 홍파 감독 거기에 네 번째로 신필름의 조감독 출신인 이장호가 나온거지. 내가 나와서 이름을 날렸어. 이게 동기동창의 황수원씨 아들이 '조선일보' 문화부 말단 기자였거든. 얘가 그 기사를 썼어. 이장호를 고쳐준 거야. 그거 보니까 갑자기 현실감이 확 살면서 신문에 이름이 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때인데 "야 이거 이번에 뛰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도전이지. 그래서 이제 최인호 한테 "야 이거 내가 영화하고 싶다"고, 어 입에서 안 나오던 말을 했어. 최인호가 처음엔 쉽게 "아유 당연하지" 그랬거든.
- 이무영 감독: 이야, 그 친구 아빠 찬스처럼 일단 친구 찬스를 쓸 기회가 생긴 거군요.
이장호 감독: 그때부터 이제 하려고 했는데 최인호가 하루는 걱정스럽게 "야 이거 계약할 때 이 모든 걸 출판사 사장이 좌우하게 돼 있다" 이거야. 생각지도 않은 장애물이 생겼지. 최 사장 만나가지고 "이거 오래 전부터 내가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던 작품이다." 했지.
- 이무영 감독: 그 분은 출판사 사장이죠.
이장호 감독: 그랬더니 "아니 그거 다 아는데 영화는 영화고 출판은 출판이고 출판에 지장을 줄까 봐 지금은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 판매 부수가 충분히 자기 마음에 들 때 그때 이제 영화를 생각해 보겠다" 이런 거예요. 쉽게 잘 나간다 했는데 그게 장애가 딱 생겼어. 옛날부터 좀 돈키호테의 기질이 있었는데 "제가 책을 좀 팔아드리겠습니다." 이제 이렇게 막 나갔지. 그래서 총동창회 명부를 갖다가 기업의 총수들 회사마다 골라가지고 무작정 찾아가는 거야. 찾아가서 "아 고등학교 후배라고 그러고 최인호 하고 친구인데 이를 제가 영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책을 좀 사주십시오." 이제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그러지 않아도 신문 소설로 인기가 많았던 거고 그러니까 "아 그래, 여기 한 100권 갖다 놔." 뭐 그렇게 해서 부수가 싹 올라가니까 출판사 사장이 놀란 거야. 개인이 팔면 얼마나 팔까 했는데 이게 보통 부수가 아니거든.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감독 이장호(사진 오른쪽)가 후배 영화인인 이무영 감독(동서대 영화과 교수)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2024.08.08 oks34@newspim.com

- 이무영 감독 : 대단하셨네요.
이장호 감독: 그러니까 영화하게 되면 이장호 한테 제일 먼저 선택권을 주겠다. 그 소리만 들어도 뭐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몰라. 하나 써주십시오 그랬어. 그랬더니 이제 각서 각서를 써주더라고. 네 아무래도 내가 의심스러운 게 출판사 사장이 설마 이 결정권을 갖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최인호를 녹여야겠더라고. 그래서 이제 동생 불러가지고 "야 너 이번 등록금 하지 말고 다음 기회, 다음 기회하고 이걸 나 좀 빌려주라"고 그랬거든. 뭐 착한 동생이니까 "그러라고, 그 대신 내가 너 배우 나중에 시켜줄게" 이렇게 된 거야. 그걸 갖고 이제 최인호 집에 찾아갔지. 마침 최인호가 없어서 최인호 부인한테 "들어오면 이거 좀 전해주라"고 그러니까 "이게 뭐예요?" "선물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러고.
- 이무영 감독: 사실은 작가 계약금인 셈이었군요.
이장호 감독: 그래놓고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인호가 술이 잔뜩 취해가지고 전화가 왔어. 욕이 뭐 한참 나오더라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니가 알아서 해." 딱 이러더라고.
- 이무영 감독 : 그건 이제 허락을 받은 거네요.
이장호 감독 : 그렇지. 그러니까 양쪽 다 된 거지. 그러면서 이제 뛰기 시작하니까 경쟁이 붙었고 보고 이장호가 가졌다 이렇게 되잖아요. 신문에 나고 그러니까 진행이 빨리 되더라고요.

◆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짓기대회 휩쓸고 다녔던 천재 최인호

- 이무영 감독: 근데 그 동생의 등록금을 소위 강탈해서 그 계약금 형식으로 최인호 작가에게 준 게 일단은 주효했던 것 같네요. 여기서 말씀드리면. 감독님에게 돈을 빼앗긴 그 순한 동생은 나중에 70년대 대배우가 되는 이영호 배우죠?
이장호 감독: 그 다음 작품인 '어제 내린 비'의 주인공으로 영호를 썼지.
- 이무영 감독: 그 약속을 지키신 거네요. 동생과.
이장호 감독: 그렇지.
- 이무영 감독: 자 그러면 저희가 이제 최인호 작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사실은 서울고등학교 다니실 때 처음 만나셨고 그 다음에 여러 관계의 변화들이 있으셨을 거 아니에요. 최인호 작가와 감독님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말씀해 주시죠.
이장호 감독: 덕수초등학교 다녔지, 덕수초등학교에 같이 다녔거든. 근데 전체 조회 학생들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최인호를 호명하면 최인호가 아장아장 걸어가는 것 같아. 너무 작은 아이라 교단에 올라가면 교장 선생님이 "서울시 무슨 무슨 글짓기 대회 장원 받았다." 그래서 하고 한두 번이 아니고 자주 있었어. 그러니까 얘가 글을 잘 쓰니까 그런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항상 상을 받아 갖고 오니까. 나는 학교 성적도 나쁘고 좀 열등한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부러운 거지. 전체 전교생 시선이 걔한테 집중 되잖아. 그게 부러우니까. 나는 교장 선생님 교단 뒤에 있는 게양대에 올라가는 거야. 상상으로. 그러면 아이들이 전부 최인호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보는 거. 그런 상상하고 하는 것 때문에 이제 최인호를 인상 깊게 봤지.
- 이무영 감독 : 그러셨군요.
이장호 감독: 그러다가 서울중학교 같이 들어갔는데 하루는 국어 시간인데 작문 선생이 최인호를 불렀더니 "이거 니가 쓴 거 맞아?" 그러더라고.
"네, 틀림없습니다." 최인호가 아주 야무지거든. "그래, 믿을 수가 없는데 한 번 반 학생들 있는 데서 읽어보라"고 하더라고. 최인호가 읽는데 아이들이 다 나가 자빠졌지. 중학교 1학년이 썼는데 연애 소설이야. 어이가 없지. 근데 나는 초등학교 때 그 최인호를 봤으니까 틀림없이 최인호 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 이무영 감독: 뭐. 물론 최인호 작가가 굉장히 좀 뛰어난 문학적으로 그렇지만 감독님이 그때 "야 나는 저 국기 게양대에 올라가서 다른 친구들의 주목을 받겠다"라는. 사실 시각화 하는 거잖아요. 영화감독으로서 어떻게 보면 그런 상상력은 더 있으셨던 것 같으네요. 근데 두 분의 관계가 이제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잖아요. 그리고 사실 이제 감독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는지 다 아는데 그 이후로 두 분의 관계는 또 어떻게 변하셨는지.


이장호 감독: 이상하게 감수성이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게 얘가 휘파람을 잘 불어. 나도 휘파람을 잘 부는데 휘파람으로 'Count My Garden in Italy'라는 팝송이 있었는데 그거를 우리 시대 아이들이 잘 부를 수 없는 노래인데. 아주 옛날 거니까. 그거를 멋지게 부르고 그래. 그러면 참 신기한 게 우리 아버지가 부를 팝송을 얘가 부르고 그런 게 자꾸 호감이 가게 돼. 대학 때 나는 이제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신필름에 들어가면서 영화를 하게 되니까. 그게 소문이 이제 아이들한테 난 거야. 이장호가 공부 안 하고 영화판에 들어갔다고. 한 번은 프레스센터 뒤에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났어. 최인호가 "야 너 뭐 저기 영화판에 들어가서 조감독 한다며?" 그러더니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소망이 영화감독이었어"라고 한 거야.
- 이무영 감독: 네, 최인호 작가가.
이장호 감독: 엄청 조숙한 거야. 나는 조감독 하면서도 영화가 뭔지 잘 모르는데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게 참 신기하다고. 항상 내가 한 수 접고 들어가야 되는 게 세상 물정도 밝고 현실적이고 영리하고. 그러니까 이제 호감이 생기니까 자꾸 프러포즈처럼 내가 이제 최인호한테 접근하는 거지. 최인호가 귀찮아하지 않고 항상 뭐라고 그러냐면 "아 넌 애가 굉장히 순진하구나." 나한테 그런거야.
- 이무영 감독: 감독님 그렇게 순진한 분은 아니셨잖아.
이장호 감독: 그때는 말하는 게 어수룩했던 모양이지. 근데 그 말이 기분 나쁘지가 않고. 왜냐하면 나보다 훨씬 영리하고 현실적이고. 그러니까 자꾸 그런 상태로 둘이 대화가 되고 접근하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로 됐냐면 걔네 집에 놀러 가면 자기가 대학 노트에 쓴 습작들 그거 보여주고 그러면 그 악필인데…. 이제 그 글씨를 잘 읽게 될 정도로 자주 읽게 됐다고. 최인호도 신기한지 "야, 우리 형만 네 글씨 알아보는데 너도 이제 읽는구나" 이렇게 된 거야. 그때부터 이제 최인호가 새로 쓰면 내가 보게 되고 보게 되고 이제 가까워진 거지.
- 이무영 감독: 그러면 이제 '별들의 고향'은 시대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고 굉장히 많은 분들이 봤잖아요. 그 영화가 이제 그렇게 대성공을 거둔 다음에 감독님의 삶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별들의 고향' 개봉 50주년을 맞은 영화감독 이장호.  2024.08.08 oks34@newspim.com

◆ 영화계의 유혹과 도전에 맞서야 했던 순간들

이장호 감독: 최인호도 나보고 천진난만하다고 그러고 그랬는데 영화감독 하고 나서 '별들의 고향'의 성공이 실감이 나지 않고 얼떨떨했어. 나한테 그런 재능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했는데 어쨌든 텔레비전 출연 자꾸 하게 되고 신문에 오르락내리락 하고 그러니까. 아마 바보 같아도 점점 오만해지기 시작 하더라고. 이게 현실인가 현실인가 하면서도 우쭐해지고. 어떤 유혹에 빠졌냐면 다른 영화사에서 프러포즈가 왔어. 내가 '별들의 고향'에서 받은 액수의 5배를 주는 거야. 혹해서 이제 당연히 가야지 하면서 계약했지. 화천영화사. '별들의 고향' 영화사는 다음 작품 당연히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딴 데로 옮기니까 괘씸해서 보너스고 뭐고 없는 거라. 그 회사에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 최인호라도 잡아야 돼. 이렇게 된 거지. 그래서 최인호 한테 상당히 큰 액수를 주면서 '바보들의 행진'을 이제 준비를 하는 거예요.
- 이무영 감독: 파란만장 했네요.
이장호 감독: 나는 몸만 빠져나가는데 갑자기 최인호가 없어지니까 머리를 쓰다가 최인호의 미완성 소설이 있어. 그래서 최인호 한테, "그 '정원사' 내가 영화 만들고 싶다"고 하니까 "그걸 미완성으로 어떻게 만드냐" 고. 그러더라고. "꾸려보겠다"고 이제 그렇게 했지. 근데 최인호도 작품을 많이 쓰다 보니까 그 '정원사'의 방향이 최인호의 단편소설에 '침묵의 소리'라는 게 있더라고. 침묵, 침묵의 소리. 그리고 그거를 '중앙일보' 장편소설 신문소설부터 연재를 시작했거든. 그게 '내 마음의 풍차'야. 그래서 난 이제 김승옥 형한테 시나리오를 부탁했지. 소설가인 김 작가와 같이 순천에 내려가서 시나리오 쓰는데 승옥이 형이 또 쓰다가 보니까 자꾸 '내 마음의 풍차'처럼 가는 거예요. 방법이 없지, 뭐. 시작이 그러니. 최인호는 이제 그 눈치를 못 챘지.
- 이무영 감독 : 그래서요?
이장호 감독: 어떻게 보면 내가 배신 때린 거나 마찬가지인데. 완성되고 나니까 영화사에서 너무 좋다고 그러니. 제목을…. 이제 최인호 찾아가서, "야. 그거 '정원사' 시나리오 완성됐어. 승옥이 형이 이제 시나리오 됐는데 제목을 좀 지어달라"고. 그러니까 최인호가 제목을 잘 지어. '어제 내린 비'라는 제목을 주더라고요. '어제 내린 비'. 나도 너무 마음에 드는 거지. 감각적이잖아. 그렇게 해서 영화를 만드는데 그것도 또 흥행에 성공한 거지. 거기까지 나갔는데. 그다음에 '바보들의 행진'을 히트시키지 뭐. '어제 내린 비', '바보들의 행진'. 다 히트를 했단 말이야.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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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다시 청와대…낙수효과 기대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지난 22일부터 언론 브리핑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되면서, 용산 대통령실 시대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말부터 청와대에서 집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시 청와대 시대가 오는 것이다.  2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부근의 효자동과 통의동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을 방문해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기대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기자와 취재원들의 만남이 무작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전체 상인과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23일 효자로 남단에서 청와대 방향을 바라본 모습. 우측으로 경복궁 영추문이 눈에 들어온다. 2025.12.23 calebcao@newspim.com ◆ "낙수 효과로 장사 잘 될 것 기대 중" 이날 오전 자하문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A씨는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돌아왔다니까 기대하는게 크다"면서 "아무래도 직원들도 돌아오고 하니 매출이 늘어나지 않겠어요?"라고 예측했다. A씨는 장사를 시작한지 3개월 가량 지났다고 밝혔다. 점심 무렵인 오전 11시쯤 효자동에서 5년째 음식 장사 중인 김광재 청기와집 사장(62)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移轉) 전후를 설명했다. 김 사장은 "용산으로 가기 전에는 점심 장사로만 60~70명 정도를 받았고, 청와대 외곽을 경비서는 경찰 인력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서 "그러다가 청와대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나서는 5~6개월간 관광객이 몰려들며 300명씩 받는 '특수'를 누렸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후에 거의 다 관람하고 나서 청와대 신비감이 떨어졌고 2년 가까이 장사가 엄청 안됐다"면서 "용산으로 가기 전에 비하면 반 토막 정도 떨어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대통령실이 돌아온다니까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김 사장과 대화하는 중간에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 직원 7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김 사장이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님들의 자리 안내를 한 후 다시 돌아와 인터뷰를 계속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들어오잖아요. 저분들은 기동대인데, 낙수효과지. 근무하는 인원이 몇 천은 될 테니까. 그 안에서 식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밖으로 나와서 먹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도시락을 맞출 수도 있으니까 우리에겐 기회지." 집회나 시위에 대한 걱정이 없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시위 걱정? 시위대가 온다고 식당을 부수진 않으니까, 왔으면 밥이라도 한 그릇 먹겠지 우리 손해는 아닐 겁니다"라면서도 "다만 주민들은 피해를 볼 수도 있겠네요. 막 욕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할 테니까"라고 내다봤다. ◆ "별 체감 안 되는데" 시큰둥한 반응...임대료 증가 걱정도 효자동에서 남쪽에 인접한 경복궁 옆 통의동 골목에서 25년째 한식당을 하고 있는 60대 여성 B씨는 "솔직히 (장사가 잘 되는)체감이 아직은 안가요. 뭐 돌아오면 나아지겠지?"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우리 집은 경찰이나 직원들이 오는 집은 아니에요. 그 전에도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고. 주로 경복궁에 놀러 온 사람들이 찾아와요"라며 "(이전에 청와대 사람들이)오더라도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룸을 찾는지, 음식 맛보러 오는 게 아니라 대화하려고 오는거야. 그래서 대통령실 돌아왔다고 해도 그냥 그래"라며 얼버무렸다. 경복궁과 통의동을 가르는 효자로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76세 남성 C씨도 대통령실 복귀가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상권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원래 12월은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체감이 안 가는 걸 수도 있는데, 여기서 15년 장사를 했는데, 그 전에도 대통령실 직원들이나 경찰들이 우리 가게에는 오지 않았어요." C씨의 가게는 커피콩을 직접 볶는 '로스팅' 전문점이다. 과거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커피콩을 사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은 경복궁을 찾는 관광객들이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가기 전에 이 안쪽 골목에는 비싼 한식집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었겠죠. 그런데 용산으로 가버리니까, 그 집들이 다 카페로 바뀌었어요. 옛날엔 이 근방에 카페가 5~6곳이었는데, 올해만 20곳 넘게 생겼어요." C씨의 설명에 따르면 청와대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며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한다. C씨의 추측으로는 올해 들어 주변 상점들의 임대차 계약 만료일이 겹쳤는지, 전체적으로 월세가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 부근 월세가 보통 30평에 500만원을 내는데, 다른 카페들 보면 더 큰 평수겠지만 1000만~1500만원 내는 곳도 있습니다. 근데 보시면 알겠지만 장사가 안돼요. 내 나이에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월세만 내면 버티지만 다른 곳들은 걱정입니다"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시위도 두 종류가 있다"며 "무슨 노조들이 하는 시위는 매출과 관계 하나도 없고 시끄럽지만, 여러 시민단체나 각 개인이 와서 하는 시위는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옆 무궁화동산에서 만난 산책 중이던 동네 주민 D씨는 "원래 여기가 조용하기도 하고 시끄러운 곳"이라며 "용산으로 갔을 때도 큼지막한 시위는 항상 광화문에서 했기 때문에 별 차이는 못 느꼈다"고 얘기했다. D씨는 "옛날 2008년에 광우병 시위를 크게 할 때는 집에 가는 길도 시위대랑 경찰에 막혀서 불편한 게 많았다"면서 "그런 것만 제외하면 동네 사는 게 나쁘진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선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와 관련해 수백억원의 혈세가 낭비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용산에서 다시 청와대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269억원, 그 자리에 국방부가 다시 들어오는 데 238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길 때 든 비용 800억원을 합산하면 총 1300억원의 비용이 낭비된 셈이다. calebcao@newspim.com 2025-12-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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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 19만명 정보 유출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신한카드에서 가맹점 대표자 약 19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신한카드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하고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신한카드는 23일 가맹점 대표자의 휴대전화번호를 포함한 총 19만2088건의 개인정보가 신규 카드 모집 과정에서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신한카드 본사 전경[ 사진=신한카드] 2025.06.18 yunyun@newspim.com 유출된 정보는 ▲휴대전화번호 18만1585건 ▲휴대전화번호와 성명 812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성별 231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월일 73건 등이다. 신한카드는 조사 결과 주민등록번호, 카드번호, 계좌번호 등 민감한 신용정보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가맹점 대표자 정보 외 일반 고객 정보와도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해킹 등 외부 침투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며 조사 결과 일부 내부 직원의 신규 카드 모집을 위한 일탈로 밝혀진 만큼 유출된 정보가 다른 곳으로 추가 확산될 염려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현재까지 해당 정보로 인한 실제 피해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향후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으로 보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고 사실과 사과문을 게시하고, 가맹점 대표자가 본인의 정보 포함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조회 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아울러 개별 안내도 병행하고 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객 보호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안이 '목적 외 개인정보 이용'인지, '정보 유출'인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으나, 적극적인 고객 보호를 위해 '정보 유출'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yunyun@newspim.com 2025-12-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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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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