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마약, 폭력 일상화 된 학교는 서바이벌 전쟁터
무한 경쟁 부추기는 한국 교육 현주소 치부 보는 듯
웹툰 기반 영상물, 강한 자극만 찾는 현상 극복해야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학교 안에서 좀비들이 판을 친다. 교복 입은 좀비가 교정을 누비고, 학생들은 피가 튀고 사지가 뒤틀리면서 죽어간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학생들이 죽을 순서를 정한다. 괴생명체가 학교를 공격하여 학생들이 총을 들고 맞서 싸우기도 한다. 일진들이 편 가르기를 통해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고, 왕따 당한 학생은 학교 화장실에서 먼지가 나도록 맞기도 한다.
[서울 = 뉴스핌] 드라마 '밤이 되었습니다' 포스터. [사진 = U+모바일 TV 제공]2 2024.02.28 oks34@newspim.com |
소위 'K-학원물' 내용은 드라마라고 치부하기엔 도가 지나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맞고, 깨지고, 죽는 장면은 마치 입시지옥에 사는 대한민국 학생들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이러한 K-학원물이 발생지는 'K-웹툰'이다. 네이버나 다음에 연재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던 웹툰물이 'K-학원물' 붐을 타고 잇따라 드라마로 제작된다. 영상으로 만들어진 학원물들은 웹툰의 그것보다 훨씬 자극적이다.
"눈깔을 빼서 깍두기를 담가 버릴까?","이 얼굴에 칼자국 나도 이쁘려나?","한 번만 내 앞에서 웃으면 아가리를 찢어버린다.", "니네 다 뒤졌어. 씨X년들아." 학원물로 제작된 한 드라마에서 일진 여학생들이 화장실에서 동급생을 폭행하면서 나누는 대화다. 조폭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서울 = 뉴스핌]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 포스터. [사진 = 티빙 제공] 2024.02.28 oks34@newspim.com |
드라마 속에서 학교는 학생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바른 인격체를 만들어가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하얀 교복이 피로 물드는 전쟁터다. 29일 공개되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은 여고생들이 한 달에 한 번 비밀투표로 왕따를 뽑는다.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학생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로 나뉘어 잔혹한 서바이벌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서바이벌 과정에서 교복에 선혈이 낭자하다. 달꼬냑 작가의 동명 웹툰도 인기를 얻었다.
'K-학원물'이 붐을 이룬 계기는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지우학)'이 원조 격이다. '지우학'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학교에서 고립된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큰 인기를 얻으면서 올해 '지우학 2'도 공개될 예정이다. 최근 공개된 학원물들은 한결같이 학교폭력물이 대부분이다. U+ 모바일tv 오리지널 시리즈 '밤이 되었습니다'는 마피아 게임을 통해 살아남기 경장을 벌이는 학원폭력물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피를 토하면 죽어가는 장면들이 여과 없이 방영됐다.
U+ 모바일tv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쿠키'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마약을 만들어 유통한다. 쿠키로 위장한 마약을 먹은 학생들이 자살하거나 실성하는 장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된다. 앞으로도 학원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하반기 공개되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인 '스터디 그룹'은 학교 폭력에 대항하는 학생들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지금 우리 학교는 2'도 좀비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작품이다.
[서울 = 뉴스핌]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제공] 2024.02.28 oks34@newspim.com |
미국 교육학자 E.라이머는 '학교는 죽었다'라는 저서에서 기존의 학교를 해체하고, 자율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교육의 목적은 '진정한 자유인을 만드는 것'이지만 지금의 학교는 '국가가 사회를 통제하고 유지하기 위한 기관'으로 변질됐다고 말한다. 학교의 경쟁에서 탈락하면 도태되어 낮은 사회적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고, 학교와 사회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주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K-학원물'은 대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바꿔 말하면 학생들이 좀비로 변하고, 총을 들고 전쟁을 벌이며, 학교 화장실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한국의 교실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현장이 'K-학원물' 속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 청소년들은 학원에 가서 공부하느라 잠이 부족한 좀비처럼 학교 안팎을 오가는 건 아닐까. 학교는 의사가 되기 위해 서바이벌 전쟁을 벌이는 전쟁터가 아닐까. 학생들이 한 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기 위해 마약을 복용하듯 각성제를 복용하고 공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K-학원물'이 넷플릭스 등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드라마 속 교복 입은 학생들 모습이 그저 재미를 위해 동원된 장치일 뿐이기를 바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 우리 학교가 드라마 속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면 당장 우리도 진정한 자유를 가르치기 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를 갈아 엎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