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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군에 끌려가는 '구르미 그린 달빛' 속 홍경래. 홍경래의 난 이후에도 계속 산 자로 설정됐다. <사진=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 캡처> |
[뉴스핌=김세혁 기자] 종영을 앞두고 이야기가 막바지에 접어든 KBS 인기 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에 홍경래가 등장했다. 이미 홍경래의 난 이후를 다룬 이 사극에서 홍경래는 어떻게 생존한 것인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홍경래의 난이 발발한 건 순조 11년인 1811년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순조 대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야기 전개 상으로 보면 효명세자(박보검)와 홍라온(김유정)의 로맨스가 한창 고조되는 극중에서 홍경래의 난은 한참 과거 일이 된다.
그럼에도 '구르미 그린 달빛'에는 홍경래가 산 사람으로 등장한다. 특히 홍라온의 아비로 설정된 홍경래는 효명세자와 여식이 안타깝게 이별한 10일 방송에서 일부러 나타나 추포된다. 드라마가 역사적 팩트를 너무 심하게 흔든 건 아닐까.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니다. 홍경래는 1811년 우군칙 등과 대규모 농민항쟁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홍경래의 난이다. 홍경래의 난은 약 5개월간에 걸쳐 일어난 민란으로, 봉기군은 남진군·북진군으로 나뉘어 거병한 지 열흘만에 청천강 이북 10여 개 지역을 점령했다.
다만 홍경래의 난은 전열을 수습한 관군이 들이닥치면서 세력이 급속도로 변모한다. 민란의 특성 상 주력부대 약화가 곧 실패로 이어지는데 홍경래의 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관군이 화약 매설 등 적극적인 진압에 나서면서 홍경래 등 주모자가 모두 처형됐다.
중요한 것은 과연 홍경래가 관군에 잡혀 죽었는지 여부다. 역사에는 분명 홍경래가 난을 주도한 남정 1000여명과 함께 붙잡혀 목이 잘렸다고 적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백성들 사이에서는 홍경래가 살아남았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일부 학자들은 실제로 홍경래가 난이 진압된 직후 죽지 않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같은 소문은 홍경래에 대한 농민과 백성들의 깊은 신뢰 또는 지지가 빚어낸 것으로 분석된다. 즉, 홍경래는 실제로 죽었지만 그의 사상과 이념이 민초들을 결속시키면서 죽어서도 산 사람처럼 추앙 받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시골 선비였던 홍경래는 조선사회에 깊이 자리한 차별을 일찌기 체험하고 개혁을 꿈꾼 사상가였다. 단지 시골 출시이라는 점 때문에 과거를 보는 과정에서도 숱한 차별을 당한 홍경래는 난을 통해 체제전복을 꿈꿨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