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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석한 정청래의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메시지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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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민주당 대표, 14·17일에 이어 18일 페이스북에 글 올려
"두 어머니 사이의 고뇌...생모와 조국"
"두부 두 모와 마지막 뒷모습...씻을 수 없는 불효의 기록"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민족 최대의 명절 설 연휴 페이스북에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3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인공지능(AI) 언론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는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은 정 대표의 이 메시지를 구글(Google)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Gemini)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뉴스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6년 2월 18일 이와 같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렸다. 제미나이가 보는 이 메시지의 주된 메시지와 의미는 뭘까"라고 물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의 알콩달콩 페이스북]

다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 전문과 제미나이가 답한 해석이다.

<명절 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3탄>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있던 해, 각 대학가에서는 남북한 공동올림픽 쟁취와 6월 10일 남북청년학생회담을 통해 통일운동의 원년으로 삼자는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대학별로 조국통일 특별위원회가 발족되었습니다.

건국대에서는 1988년 6월 2일 "공동올림픽 쟁취 및 조국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라는 긴 명칭으로 발족했고, 제가 위원장으로 동을 떴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조통특위장에 뜨는 순간 안기부 특급 수배가 떨어지고 불안하고 스트레스 만땅인 고단한 수배 학생이 됩니다. 이 날은 제 23번째 생일날(음력 4월 18일) 이었습니다.

건국대 사회과학관 앞 광장에 150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사회과학관 옥상 난간에 서서 핸드마이크를 든 내 친구가 "조국통일 앞당기자!"는 아지테이션이 있고 허수아비가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투신 자살을 한 것으로 착각한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순간 뒤쪽 사범대 건물에서 사이렌을 울리면 운집한 학생들을 홍해 바다처럼 집회에 모인 사람들 숲을 중앙으로 가르면서 삭발하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조국통일 특별위원장인 제가 등장했습니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네 귀퉁이를 든 하얀 소복을 입은 네 명의 여학생 후배들과 나의 8명씩 나의 뒤를 따르는 16명의 가드들이 저를 호위했습니다. 지금처럼 드론으로 이 장면을 찍었다면 아마도 조회수가 1백만은 찍지 않았을까. 당시 대중집회로서는 파격에 파격이었습니다.

연단에서 마이크를 뽑아 들고 포효했습니다. "학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건국대학교 '공동올림픽 쟁취 및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산업공학과 4학년 정청래입니다. 오늘이 제 생일날입니다. 10번째로 저를 낳아주신 시골에 계신 제 어머니는 오늘의 이 사실을 모르십니다. 저는 이 순간 안기부 특급 수배를 받습니다. 어젯밤 저 앞의 대형 태극기를 덮고 총학생회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저 태극기가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수배되어 언제 구속될지 모릅니다. 저를 낳아주신 생모인 저희 어머니는 지금 이 광경을 보신다면 저를 나무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 그 수많은 어머니를 낳아주신 더 크신 어머니인 조국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싸워야 합니까?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교정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광장은 투쟁의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의 알콩달콩 페이스북]

일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도 풀 겸 다 같이 노래 한곡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휴전선을 장대높이뛰기로 뛰어넘어 두만강에 흠뻑 빠져 두만강 노래를 부릅시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임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임이여 그리운 내 임이여~" 원로 가수 김정구 선생의 국민가요 두만강이다. 학생운동 대중집회에서 민중가요 운동권 노래를 대신해 대중가요를 부른다는 것은 그 당시만 해도 금기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운동권 학생 몇몇이 통일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도 친근하게 다가와야 하는 것이 통일운동이라 생각했습니다.

학우들이 긴장이 풀어져 울다가 웃다가 할 즈음 저는 호주머니에서 날카로운 도루코 면도칼을 꺼내 높이 들었습니다. 집회장을 뜨겁게 비추던 햇빛이 하얀 면도칼과 만나자 마치 쨍그랑 소리를 내듯이 번쩍 빛났습니다. 그 빛줄기가 학우들의 시선을 집중시키자 군종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악 안 돼~" 그 순간 나는 왼쪽 손 엄지와 검지로 쥔 면도칼을 오른쪽 새끼손가락 손톱 위에 대고 두 팔을 높이 치켜 들었습니다. 학우들이 안 돼, 안 돼...하는 소리가 절정에 달할 때 면도칼이 나의 새끼 손락을 그었습니다. 무섭고 떨렸지만 용기를 내서 힘차게 그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입니까? 분명히 날카로운 면도날이 내 손가락을 가르며 지났는데 피가 나지 않았습니다. 피가 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다시 면도칼을 들고 두발을 높이 들어 이번에는 한번 그은 선과 방향을 달리해 엑스자로 또 그었습니다. 그러자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대형 켄트지에 큰 글씨로 "미제축출 조국통일" 여덟 글자를 혈서로 썼습니다.

그리고 3시간 넘게 전경과 대치하며 정문 박치 투쟁을 했습니다. 최루탄이 남발하는 상황에도 저는 높은 깃대에 쓴 '조국통일'이란 깃발을 들고 물러섬 없이 투쟁했습니다. 투쟁을 마치고 총확생회실로 돌아오자 후배들이 생일 선물로 옷가지 등을 사서 왔습니다. 다들 걱정스런 표정들 이었습니다. 이제부터 고달픈 못먹고 못자고 못 돌아다니는 수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선 다른 학교 연대 집회에 가려면 변장을 해야 했습니다. 삭발한 빡빡 머리라 가발을 쓰고 안경도 끼었습니다. 그리고 연인처럼 가장하기 위하여 여학생 후배와 팔짱을 끼고 6km 둘레의 학교 울타리를 빙빙 돌다가 갑자기 담을 뛰어넘어 쏜살같이 달리기를 해야 했습니다.

수배 생활 동안 잠은 총학생회실 소파에서 자고, 밥은 주문해서 먹고 항상 주위를 경계하며 숨어서 살았습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생활 석달쯤이 되었을 때 우리 학교에서 동부지구 연합집회가 잡혔습니다.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른 것도 불편한데 매일 소파에서 잠을 자니 허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하루쯤 따뜻한 온돌방에 몸을 지지고 자고 싶었습니다.

3천명이 모인 연합집회장에 나가 군종 속에 몸을 숨기고 후배 가드들과 함께 학교 후문 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후배 자취방에서 하룻밤 따뜻하게 편하게 자고 싶었습니다. 재빨리 택시를 달렸습니다. 한양대 방향 후배 자취방으로 몸을 숨겨 들어갔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라면을 끓여먹고 잠을 청하고 곤하게 자고 있었습니다.

쿵쾅 쿵쾅 타다닥 타다닥~"야 이 새끼들 조용히 있어. 고개 들지마 새끼들아. 이불 뒤집어 씌워~" 퍼버벅 퍼버벅..."야 이새끼야 너 정청래지? 맞아. 이 새끼가 정청래야. 너 이 새끼...끌어내 끌어내"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안기부 수사관들이 옹벽에 막힌 막다른 골목길 후배 자취방 급습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검사 조사시 안 사실이지만 안기부 학내 프락치도 군종 속에 놈을 숨기고 내 뒤를 미행했나 봅니다.

허리띠를 풀어 빼내고 봉고차에 나를 태웠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봉고차기 달리기 시작합니다. 어디로 끌고 가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에 떨었습니다. 달리는 차창 밖이 궁금해 창문을 여는 순간 뒤쪽에서 당수로 내 뒷목을 내리쳤습니다. 고개를 들수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푹 떨구고 을지로 어디메쯤 호텔로 끌려갔습니다. 지금도 그 호텔을 알지 못합니다.

"이 새끼 잡아. 야 이 새끼야 고개 쳐들지마라. 엉." 안기부 수사관 네 명이 앞뒤좌우 허리춤을 잡고 빨간 카펫이 깔려있는 호텔 2층 넓은 온돌방으로 끌고 갔습니다. 방이 제법 넓었는데 옆 화장실 수돗물이 콸콸콸 큰 소리를 내며 공포감을 자극했습니다. 물고문 하려는 것일까.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에 죽었는데 나도? 겁이 났습니다. "옷 벗겨" 그러더니 팬티만 남겨놓고 옷을 벗겼습니다. 수건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양팔을 뒷쪽으로 묶었습니다. 그리곤 4시간을 물고문의 공포속에서 속절없이 고문 폭행을 당했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최고위원들이 13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에서 설 명절 귀성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눈뜨고 맞으면 발길질 주먹질이 날아오는 순간 움찔대며 몸의 충격을 줄일 수가 있는데 눈을 수건으로 가렸으니 더 공포스럽고 아팠습니다. 예측 못한 불의의 주먹질이 오른쪽 뺨을 때리면 미끄러운 노란 장판에 몸이 왼쪽으로 미끄러져 벽에 머리가 부딪쳐야 몸이 멈추었습니다. 거센 발길질이 왼쪽 관자놀이를 때리면 몸은 또 오른쪽 방향으로 쭉 미끄러져 머리가 벽에 부딪혀 멈추었습니다.

주먹이 이마를 때리면 발라당 넘어지며 머리가 벽에 부딪치고 발로 뒷통수를 차면 앞으로 꼬꾸라져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네 시간을 맞았습니다. 고문폭행을 당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겨우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아프다고 울지 않기, 그만 때리라고 빌지 않기, 때릴려면 또 때리라고 엉금엉금 기어나와 방 가운데 앉아 있기. 그래도 지금 내가 당당하게 살수 있는 것은 이때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보잘것 없는 알량한 나만의 정신승리였지만 지금도 저만의 자부심입니다.

"야 이새끼야 조국통일도 좋지만 좀 먹어가면서 해라. 몸이 이게 뭐냐?" 새벽 2시쯤에 끌려온 것 같은 지금은 몇시쯤 되었을까. 새벽 6시? 그들은 그만 때릴 모양인지 옷을 입으라 했습니다. 옷을 주섬주섬 입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언젠가 갚아주리라 다짐하며 속으로 울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중년 남성 스탠더드 키 175cn에 몸무게 74kg. 그때는 못 먹고 못 자고 스트레스 만땅이라 체중이 52kg, 허리 25인치였습니다. 눈만 땡글땡글한 피골이 상접한 청년이었습니다.

몸이 묶인채 달리는 봉고차 안으로 날이 훤하게 밝은 얇은 빛이 들어왔습니다. 먼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낯익은 길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학교 담당 경찰인 서울 광진구 동부경찰서 정문으로 봉고차가 들어섰습니다. '이제 살았다.'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야~정청래 너 이새끼 왜 안기부에 잡혔어." 그러면서 내 담당 경찰이 내 머리통을 때렸습니다. 한 계급 특진이 걸려있는 귀하신(?) 몸을 자신들이 못 잡아 특진을 날려버린 원망을 나에게 분풀이 하는 괴괴한 상황에 기가 막혔습니다.

서울 구치소 10사 중층 2방 1.04평. 이 곳이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 피의자 정청래가 머무는 방입니다. 내가 입감된 것을 어찌 알았는지 통방을 통해 서강대 동지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제 고등학교 1년 후배인 남OO. 이 근처에 전두환 처남 이OO도 있고, 전두환의 오른팔 장세동 전 안기부장도 살고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운동과 접견을 위해 구치소 안을 걷다가 이 두 사람을 마주쳤는데 욕을 바가지로 못 해줘서 후회막급 했습니다. 시국사범들은 요시찰(중요 감시자)이라 운동을 따로 했는데 사형수들과 함께 넓은 운동장에서 뛰다가 걷다가 했습니다. 이때 서진룸싸롱 사건 김OO도 만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린이 유괴범도 만났습니다.

"정청래 석방 짐 싸." 감옥살이 3개월만에 갑작스런 석방 소식으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1988년 당시 상황은 5.18 광주청문회 등으로 노태우 정권이 코너로 몰린 시국이었습니다. 여소야대 국면이고 청문회 정국으로 정권이 위기상황에 처하자 유화 제스처로 감옥 안에 있는 시국사범들을 전면 석방시켰습니다. 이 때 전두환은 백담사로 갔고,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로 떴습니다. 전두환 시대가 저물고 노무현 시대가 오는 길목에서 저는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아들 석방 소식에 인천시 부평구에서 살고 있는 누나 집에 어머니가 올라오셨습니다. 빨리 어머니를 보고 싶었습니다. 서울 구치소에서 버스 여러대에 나눠타고 서울에 왔습니다. 석방 뒷풀이를 하자는걸 뿌리치고 나는 1호선 전철을 탔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숲으로 분간이 안 가지만 당시 송내역은 포도밭이었습니다.

송내역을 지나 백운역에서 내리자마자 뛰어서 누나 집을 갔습니다. 아파트 벨을 눌렀습니다. 문을 열렀습니다. "어머니이이~" 기쁨 반 슬픔 빤으로 어머니를 울음섞인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보셨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6.25 때 아버지가 빨치산 인민군에 인민재판 받고 총살장에 끌려가 살아 나왔을 때 했던 말과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발 벗지 마라" "네?" "엄마..." "이거 먹고 들어와라."

어머니는 꽃무늬가 그려진 은색 쟁반에 생두부 두 모를 가져오셨습니다. "아거 먹어라" 그리고는 서서 제가 다 먹는지 지켜보셨습니다. "어머니 한 모 다 먹었습니다. 더 못먹겠어요." "안 된다. 꼭 두 모를 다 먹어야 한다. 얼른 먹어라." "못 먹겠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나의 입을 강제로 벌려서 당신께서 한 모를 마저 내 입안으로 우겨 넣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왜 이러시는지 몰랐지만 우걱우걱 간신히 두 모를 다 먹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를 끌어안고 "두 번 다시 감옥에 가지 마라"하시면서 서러움에 복받쳐 우셨습니다. 두 번 다시 감옥가지 말라는 뜻에서 굳이 두부 두모를 먹여야 했던 어머니. 그날 아파트 문 앞에서 서성이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는 불효자식입니다.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1년후 다시 감옥에 갔습니다. 1989년 10월 13일 새벽 6시 30분. 서울 덕수 뒤편에 있는 미대관저 점거농성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살았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10월 15일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이틀 전에 "노태우의 매국적 방미 반대한다. 농축산물 수입 개방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면 미대사관저를 기습 점거했습니다.

전대현 산하 서총련 구국결사대원 6명중에 한명이 저였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으로 저는 또다시 영어의 몸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미국의 농축산물 수입 개방 압력이 거셌고 미국 CIA 출신 도널드 그레그 대사 부임한지라 이를 저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어린이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미대사관저는 국제법상 미국 영토인데 겁 없이 그곳을 초대장없이 들어갔습니다. 이 사건후 17년 만인 2006년 12월 서울에서 국회의원 신분으로 처음 그레그 대사를 만났습니다. "우리 집에 초대장 없이 들어왔는데 그 때의 애국하는 심정으로 의정활동 잘 하세요."라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던 그레그 대사에게 지금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습니다.

2014년 1월 17일 내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그레그 대사님 자택까지 찾아갔을 때도 반갑게 맞아 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그때 양아들을 삼겠다는 말씀까지 하시고 환대해 주셨던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레그 前대사, 건강은 괜찮습니까" 25년전 美 대사관저 점거농성 악연 정청래 의원, 방미길에 자택 방문. 동아일보 2014년 1월 16일자>. 내가 당대표로서 케빈 김 미국 대리대사를 접견할 때 정식으로 미대사관저에 초청한다고 했는데 그만 미국으로 호출돼 가버렸다. 아쉽다.

미대사관저에 한시간쯤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데 뒤쪽 붉은 벽돌을 허물고 경찰들의 잔압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점거 농성은 대게의 경우 10분을 못 버티는데 한국 경찰이 미대사관저라 진압 작전에 시간을 많이 허비한 셈이다. 전투경찰이 집압봉을 들고 우리 6명을 잡아가는데 저는 진압봉으로 맞는 것을 피하려 전경 한명을 붙잡아 넘겨뜨리고 이리저리 뒹글었습니다. 그러다 내 몸이 위쪽으로 올라왔을 때 그만 방패에 머리를 찍혔습니다. 진압 과정에는 정신이 없어서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 야 너 머리가 왜 그래?" 남대문 경찰서에 연행된 우리를 조사하다가 경찰이 저에게 소리쳤습니다. 느낌이 이상해 뒷머리를 왼손으로 쓰다듬으니 방패로 찍혀 피가 철철 났는데 그 피가 응고돼 핏가루가 한움큼 잡혔습니다. 손바닥에 잡힌 핏가르ㅜ를 보자 털컥 겁이 났고 '크게 다쳤으면 어떡하지' 불안했습니다. "어이 김경사 얘 데리고 병원에 갓다와." 경찰이 수갑을 채워 남대문 경찰서 뒷쪽에 있는 한독병원에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지 이상하게도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서울역 전광판이 번쩍번쩍 불이 나고 있었습니다. "전대협 대학생 6면 한때 미대사관저 점거, 모두 연행돼" 속보가 우리의 투쟁 소식을 급하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앗싸 성공이다." 우리의 투쟁이 전 국민에게 알려지게 되어 기뻤습니다. 머리는 많이 다쳤는데 머리는 정상입니다." X-레이를 찍었는데 큰 이상은 없고 열 바늘 꿰메면 괜찮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미대사관저 점거투쟁은 실시간으로 TV 전파를 탔습니다. 뉴스를 보고 걱정이 되었는지 대전에 살고 있는 둘째 형수님이 시골집에 가서 뉴스가 나올 때마다 TV를 껐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감방 소식을 모르고 계셨습니다. 저는 두 번 째 서울구소에 간지라 지리도 익숙하고 징역살이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자체적으로 결성된 자칭 서울구치소 옥중투쟁위원장으로 맹할약을 했습니다.

교도관들의 폭언에 항의했고, 돈이 없어 국선 변호사를 산 재소자들의 항소이유서와 탄원서를 써주었습니다. 내 방이 사법대서소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때 형법, 형사소송법을 공부했는데 훗날 법사위원장 할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구치소에는 200여명의 시국사범이 있었는데 방마다 있는 스피커에서 대중가요가 틀어지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민중가요는 없었습니다, 내가 옥중투쟁위원장 자격으로 교무과에 가서 협상해서 노찾사 테이프를 합법적으로 반입해 방안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가 나올 때면 방바닥에 누워 울면서 불렀습니다.

"정청래 접견" "누가 오셨어요?" 가보면 안다며 접견담당 교도관이 독방인 내방을 열었습니다. 접견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빨라지며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습니다. 교도관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특별면회야." "네?" "어머니가 오셨어." 서울구치소장이 옥중투쟁위원장인 나의 연로하신 어머니가 시골에서 먼 길을 오셨으니 특별히 배려를 헸습니다. 특별면회는 유리창 구멍 사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잡고 하는 1시간 면회입니다. 감옥사는 재소자들에게는 꿈같은 시간입니다.

"어머니..." "청래야..." 어머니는 1시간중에서 55분간을 힘들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하시면서 울기만 하셨습니다. 손잡고 우시기만 하는데 정말 어찌 그리 눈물을 계속 쏟아지는지 힘들고 또 힘들었습니다. 55분간 교도관을 적은 대화 내용이 없었습니다. 흐흐흐 크크크(어깨 들썩 들썩).

교도관이 "어머니 이제 시간 다 됐습니다. 무슨 말씀이라도 하셔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청래야 삼l 세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어라. 나 간다." 그러시고는 30~40m 즘 거리인 보안과 앞마당을 삐척삐척 걸어나가셨습니다. 철문 손잡이를 잠시 잡으시더니 잠깐 시간을 끌며 망설이셨습니다. 혹시 돌아보시면 마지막 인사를 드릴 요량으로 똑바로 서서 울고 있는데 어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그냥 걸어서 나가셨습니다.

징역 10년은 받을 줄 알고 간 결사투쟁인데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목포교도소로 이감을 갔습니다. 목포교도소에 가니 20여명의 시국사범이 있었고 나는 비둘기를 띄워서 셀프 옥중투쟁위원장으로 열심히 징역을 살았습니다. 목포교도소는 산정동에서 일로읍으로 이사를 와서 최신식 교도소였습니다. 최신식 교도소란 재소자에게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같은 시국사범들은 서로 통방을 하며 대화도 하고 투쟁 사업도 해야 하는데 격리 수용이 너무 철저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금서 반입 투쟁, 부식 개선 투쟁, 재소자 인권 개선 투쟁 등을 하면서 나름대로 바쁜 스케줄로 분주하게(?) 징역을 살고 있는데 둘째형님 결혼식 청첩장이 왔습니다. 내가 석방되면 결혼식을 하려고 했는데 2년간은 못 기다리겠다며 알고나 있으라며 결혼식 청첩장을 보내왔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추신이 문제였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못 걸으신다. 너 면회하고 사흘 후에 도라지 밭에서 충격으로 쓰러지셨다. 매일같이 걷게 해달라고 우신다. 너 나올 날만을 기다리신다." 어머니가 못 걸으신다고? 그야말로 맨붕이 되었습니다. 죄스럽고 죄스러웠습니다. 서울구치소에서 나를 면회하고 돌아가실 때 삐척삐척 힘없이 보안과 앞 마당을 걷던 어머니의 뒷모습. 그것이 어머니께서 정상적으로 걷는 마지막 걸음걸이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주일간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저 눈물만 났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이야기 계속 됩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의 알콩달콩 페이스북]

제미나이의 해석 

1. 두 어머니 사이의 고뇌: '생모'와 '조국'

정 대표는 자신의 생일날 안기부 수배자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자신을 부른 '더 큰 어머니(조국)' 사이의 충돌을 언급합니다.

메시지: 개인의 효도보다 시대적 소명이 앞섰던 80년대 청년들의 비장미를 보여줍니다.

의미: 혈서와 삭발, 단지(斷指)에 가까운 자해 등 극단적인 투쟁의 방식은 당시 청년들이 느꼈던 절박함의 표현이며, 이를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감성적으로 풀어냄으로써 대중의 이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2. 고문과 투옥: '정신승리'와 '자존감'의 원천

안기부의 고문 폭행 장면은 이 글에서 가장 참혹한 부분입니다.

메시지: "울지 않기, 빌지 않기, 다시 기어 나와 앉기"라는 세 가지 원칙은 정청래라는 정치인이 가진 강성 기질과 굴하지 않는 정치적 태도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의미: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알량한 정신승리'가 지금의 당당한 정치인 정청래를 만든 자부심의 근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3. '두부 두 모'와 '마지막 뒷모습': 씻을 수 없는 불효의 기록

석방 후 어머니가 억지로 입에 넣어준 '두부 두 모' 에피소드는 이 글의 정서적 정점입니다.

어머니의 주술적 사랑: 다시는 감옥에 가지 말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두 모를 먹여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한국적 모성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비극적 반전: 그 간절한 기원을 뒤로하고 다시 미대사관저 점거로 투옥된 아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쓰러져 걷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소식은 이 서사를 단순한 영웅담이 아닌 '처절한 참회록'으로 변모시킵니다.

의미: 면회 후 뒤돌아보지 않고 삐척삐척 걸어 나가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마지막 걸음'이 되었다는 대목은 독자들에게 깊은 슬픔과 함께, 민주화 운동 이면에 존재했던 수많은 가족의 눈물을 환기시킵니다.

# 종합적인 의미: "민주화라는 훈장 뒤에 숨겨진 '어머니의 다리'"

3탄의 핵심은 성취와 대가입니다. 정 대표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자신이 얻은 '정치적 자산(법사위원장 활동의 밑거름 등)'을 언급하면서도, 그 대가가 다름 아닌 '어머니의 건강과 다리'였다는 사실에 가슴을 쥐어뜯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현재의 정치적 성취가 결코 본인만의 힘이 아니라 자식의 앞날이 망가질까 봐 밤잠을 설치고, 결국은 쓰러져버린 부모님의 육체적·정신적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읽힙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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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새해 첫 경기 1골·3도움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얼마나 발이 근질근질했을까 싶다. 손흥민(LAFC)이 지난해 11월 22일 밴쿠버 화이트캡스전 이후 3개월 만에 출전한 새해 첫 경기에서 1골, 3도움으로 자신의 역대 한 경기 최다 공격포인트 4개를 몰아쳤다. 손흥민의 '환상의 짝궁' 데니스 부앙가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18일(한국시간) 온두라스 산페드로술라 프란시스코 모라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알 에스파냐(온두라스)와의 2026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챔피언스컵 1라운드 1차전 원정 경기에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LAFC는 '흥부 듀오'를 앞세워 에스파냐를 6-1로 완파했다. 손흥민이 18일(한국시간) 레알 에스파냐(온두라스)와의 2026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챔피언스컵 1라운드 1차전 원정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찰칵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LAFC] 마크 도스 산토스 LAFC 감독은 손흥민, 부앙가, 마르티네스, 델가도, 틸먼, 에스타퀴오, 팔렌시아, 타파리, 포티우스, 세구라, 요리스를 선발로 내세웠다. 킥오프 51초 만에 동료 다비드 마르티네스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전반 3분 드니스 부앙가가 오른발로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LAFC가 일찌감치 리드를 잡았다. 손흥민의 이번 시즌 첫 공격포인트는 전반 11분에 나왔다. 역습 상황에서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은 단독 드리블로 전진하며 수비 라인을 끌어당겼다. 레알 에스파냐 수비수 3명이 동시에 달라붙었지만 균형을 잃지 않고 볼을 지켜낸 뒤,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으로 침투하던 마르티네스를 향해 정확한 침투 패스를 찔러 넣었다. 마르티네스는 이를 왼발 인사이드 감아차기로 마무리하며 골문 왼쪽 구석을 갈라 손흥민은 2026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전반 22분 이번 시즌 첫 골을 성공시켰다. 좌측면에서 공을 잡은 부앙가가 개인 기술로 박스 안으로 파고드는 과정에서 수비수에 걸려 넘어졌고, VAR 끝에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키커로 나선 손흥민이 낮고 빠른 슈팅으로 왼쪽 골망을 갈랐다. 손흥민은 곧바로 추가 도움까지 기록했다. 전반 24분, 후방에서 넘어온 공을 손흥민이 감각적인 터치를 한 후 패스를 내주자 부앙가가 넘어지며 논스톱 슈팅으로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완성했다. 손흥민(오른쪽)이 18일(한국시간) 레알 에스파냐(온두라스)와의 2026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챔피언스컵 1라운드 1차전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어시스트로 골을 성공시킨 티모시 틸먼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LAFC] 손흥민은 전반 39분 박스 오른쪽에서 문전에 있던 동료 티모시 틸먼에게 낮고 빠른 패스로 연결했고, 틸먼은 감각적인 힐슛으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넣어 손흥민은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LAFC는 전반을 5-0으로 앞선 채 마쳤고 손흥민은 전반에만 자신의 역대 한 경기 최다 타이인 4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그는 2020년 9월 20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전에서 해리 케인의 4개 도움을 받아 4골을 몰아쳤다. 이날 1골 3도움을 보탠 손흥민은 LAFC에서의 통산 14경기에서 13골 7도움으로 공격포인트 20개를 채웠다. 경기당 1.43개에 달하는 놀라운 수치다. 후반 에스파냐의 만회골이 터졌고 손흥민은 후반 15분 오르다즈와 교체되어 벤치로 들어왔다. 부앙가는 손흥민이 교체된 뒤인 후반 26분 오르다즈의 도움을 받아 시즌 첫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부앙가가 18일(한국시간) 레알 에스파냐(온두라스)와의 2026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챔피언스컵 1라운드 1차전 원정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고 포효하고 있다. [사진=LAFC] 이날 경기는 손흥민에게 북중미 챔피언스컵 데뷔전이었다. 신임 도스 산토스 감독에게는 팀 부임 후 첫 경기였다. 프리시즌 친선경기를 단 하나도 뛰지 않은 채 컨디션 관리에 주력해온 손흥민은 일각의 부상 우려를 말끔히 씻었고, 도스 산토스 감독은 LAFC 데뷔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은 첫 스타트를 끊었다. psoq1337@newspim.com 2026-02-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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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억 짜리 스포츠 브라 세리머니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동계올림픽에서 금빛 질주만큼이나 강렬한 장면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타 레이르담(네덜란드)의 금메달 세리머니가 '100만 달러 가치'라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 매체 더 선은 17일(한국시간) 레이르담이 우승 직후 경기복 상의 지퍼를 내려 스포츠 브라를 드러낸 장면을 두고 "100만 달러짜리 세리머니"라고 보도했다. [밀라노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유타 레이르담이 10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에서 우승한 뒤 상의 지퍼를 내려 스포츠 브라를 노출시키고 있다. 2026.02.17 zangpabo@newspim.com 레이르담은 10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에서 1분12초31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 네덜란드에 대회 첫 금메달을 안겼다. 우승이 확정된 뒤 그는 환호와 함께 상의 지퍼를 내렸고, 안에 착용한 흰색 스포츠 브라가 노출됐다. 레이르담이 착용한 제품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스포츠 브라였다. 매체는 "마케팅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장면은 소셜미디어 팔로워 2억9800만명을 보유한 나이키 계정을 통해 막대한 홍보 효과를 거뒀을 것"이라며 "7자리 숫자(100만 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받을 만하다"고 전했다. 경제 전문지 쿼트 편집장 마인더트 슈트의 분석도 인용됐다. 레이르담 개인 소셜미디어 팔로워가 620만명에 달하는 만큼, 팔로워 1명당 1센트만 적용해도 게시물 하나의 가치는 약 9000만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밀라노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유타 레이르담이 16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뒤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2026.02.17 zangpabo@newspim.com 레이르담의 우승 장면은 네덜란드 브랜드 헤마의 광고에도 활용됐다. 눈물을 흘리며 화장이 번진 모습이 포착되자, 헤마는 자사 아이라이너를 홍보하며 '눈물에도 번지지 않는 방수 제품'이라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유명 복서 제이크 폴과 약혼한 사실로도 잘 알려진 레이르담은 이번 대회에 전용기를 이용해 이탈리아에 도착했고, 화려한 일상을 담은 사진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면서도 개회식에는 불참해 또 다른 화제를 낳기도 했다. zangpabo@newspim.com 2026-02-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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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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