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목소리' 용인, 정 장관 '좌충우돌' 이어질 듯
통일부 업무보고 내용 실제 추진 땐 국내외 혼란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대북 접근법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외교부와 통일부의 지난 19일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교통정리를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외교부가 미국과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도 북한 문제를 미국과 협의하는 역할을 통일부가 맡아야 한다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이 대통령은 외교부·국방부·통일부가 함께 대북정책을 논의하는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갖도록 지시했다. 외교부와 통일부는 대북정책을 논의하는 차관급 정례회의를 갖기로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각 부처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은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전권을 갖겠다는 최근 정 장관의 폭주를 용인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에 따라 정 장관의 '좌충우돌'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국내적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통일부의 업무보고는 국제정세를 감안하지 않고 남북대화 재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정 장관은 대북제재가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또 2010년 정부의 독자 대북제재인 5·24 조치가 이미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해제하겠다고 했다. 또 서울-평양-베이징 철도 건설, 남·북·중 원산 환승관광, 북한 광물 수출과 인도적 물자 수입 허용 등의 교류협력 사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 말대로 대북제재가 무력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제재를 유지하는 것은 실효성과 무관하게 북한의 핵을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제재를 푸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겠다는 말과 같다. "제재를 24번을 한들, 26번을 한들 무슨 실효가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정 장관의 말은 제재를 유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간과하고 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패널이 활동이 중단되면서 감시의 눈을 잃었다. 한·미·일 등 11개 '유사 입장국'은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을 구성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지금도 각국은 꾸준히 대북 독자제재를 추가하고 있다. 한국이 안보리 대북제재를 무용지물로 규정하고 혼자 제재를 푸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국제적 마찰을 초래하게 된다.
정 장관의 구상대로 5·24 조치를 무효화해 남북 교역을 재개하고 남·북·중 원산 환승 관광 등을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설사 북한이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교역·관광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안들이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저촉될 수 밖에 없어 국제적 레짐과 충돌하게 된다. 안보리 제재가 유지되는 한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 교류를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통일부가 신설되는 '안보관계장관회의'나 외교부·통일부 협의, 미국과의 대북정책 협의 등에서 업무보고에 나온 이같은 내용들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한다면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북한이 정 장관의 구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통일부 업무보고 내용은 정책으로 삼기 어렵다. 정 장관은 일관되고 더 실천적인 화해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해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으면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교류를 차단하려는 목적이라는 점에서 정 장관의 대북 인식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익명의 전문가는 "북한은 한국의 문화가 침투하는 것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선포한 것도 이같은 체제 위협적 요소를 차단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화와 교류 재개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게는 위협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다른 전문가는 정 장관의 '대화 조급증'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북한 문제는 한국 혼자만 의욕을 앞세워 진전시킬 수 없는 국제적 사안이어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 협상에 오래 관여해온 전직 관료 출신의 이 전문가는 "정 장관이 정치적 성과를 위해 무리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 장관의 비현실적 주장을 제지하지 않은 이 대통령의 대북 인식도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opent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