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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의 외교포커스]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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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지난 9일 외교부가 미국과 대북정책 공조를 논의하기 위한 협의를 가질 것이라고 발표한 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워킹그룹' 논란이 다시 등장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외교부가 미국과 북한 문제를 협의하는 것에 강력 반발했다. 정 장관의 반발 속에는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드러난다.

한·미 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남북관계와 대북제재를 조율하기 위해 만든 협의체다. 북한과 국내 진보층의 강한 반발로 2년 여 만에 해체됐다. 민주당은 워킹그룹을 통한 미국의 개입으로 남북관계가 파탄났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지난 15일 민주당 정부 통일부 장관 출신 6인이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제재의 문턱을 높이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했다. 17일에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가세해 "사사건건 미국에 결재를 맡아 허락된 것만 실행에 옮기는 상황으로 빠져든다면 남북관계를 푸는 실마리를 꽁꽁 묶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워킹그룹은 미국이 남북관계의 진전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남북 협력사업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와 충돌하지 않도록 사전 조율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와 미국의 합의로 설치한 것이다.

당시 북한과 대화 국면이 갑자기 열리면서 '한반도의 봄' 분위기가 조성되자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시민단체 등의 대북사업이 봇물처럼 이어졌다. 이러한 사업들은 대부분 북한과 정상적인 교류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했던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미는 워킹그룹에서 안보리 결의에 저촉되는 사업을 통제하고 인도적·비정치적 사업에 대해서는 안보리를 통해 일시적 '면제(waiver)'를 받아 진행할 수 있도록 조율했다. 이 면제 조치로 2018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 2019년 이산가족 화상상봉 장비 반입, 대북 인도적 지원 물자 반입 등이 진행됐다. 당시 워킹그룹을 통해 제재 면제를 받은 사업은 11건이다.

워킹그룹이 없었다면 교류사업이 더 원활히 진행되고 남북관계도 빠르게 진전될 수 있었을까. 만일 그랬더라면 한국의 많은 기업과 지자체, 단체 등은 국제제재에 직면했을 것이고 한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는 나라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워킹그룹은 이를 막는 '안전판' 역할을 했다.

개성공단 재개나 금강산 관광 등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은 면제 대상이 아니었다. 제재를 푸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관련 조치의 '상응 조치'이므로 그 정도 수준의 제재 면제는 비핵화 협상의 결과물로 이뤄져야 한다. 협상을 하기도 전에 제재를 풀어준다면 협상을 할 필요도 없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할 필요도 없다.

워킹그룹 때문에 남북사업이 지체됐다는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북한은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까지 4번의 핵실험과 3번의 장거리로켓 발사, 6번의 중·장거리미사일 발사를 포함해 120여차례의 발사 실험을 했다. 남북사업이 더디게 진전된 것은 워킹그룹 때문이 아니라, 북한이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무시한 채 불법 핵무장을 추구한 것에 대응해 국제사회가 부과한 대북제재의 무게 때문이다.

남북사업을 빠르게 진척시키려면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착수하고 그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이걸 선제적·자율적으로 풀지 않아서 남북관계가 깨졌다고 주장했다. 엄존하는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하라는대로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은 워킹그룹 출범 직후부터 '남북합의 이행을 막는 외세의 장치'로 규정했다. 개성공단·금강산 사업이 진전되지 않자 워킹그룹이 '외세 개입이며 '미국의 승인'을 받는 구조라며 한국 정부는 자율성이 없다고 비난했다. 또 워킹그룹을 철폐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해체를 요구했다. 결국 워킹그룹이 폐지되자 북한은 "자주적 결단의 결과"이며 "올바른 조치"라고 했다.

지금 정 장관과 전직 통일부 장관들, 정 대표의 주장은 북한의 입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안보리 결의도 무시하고 비핵화 진전도 없이 북한의 요구대로 남북 경협만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길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워킹그룹은 '사사건건 미국의 결재를 맡는' 구조가 아니다. 남북사업 진행을 막은 것은 북한의 불법 핵무기 보유가 수반한 안보리 제재 때문이다. 워킹그룹은 무분별한 대북 사업으로 한국이 유엔결의 위반에 따른 국제제재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며,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만일 대화가 재개되고 남북 교류사업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설치해야 할 것이 워킹그룹일 것이다.

7년 전의 일을 다시 상세하게 거론한 이유는 정 장관과 전직 장관들, 민주당 인사들의 주장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며, 이 오해를 바로잡아야 할 외교부와 통일부가 입을 닫고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opent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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