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수출 호재·내수 부담
조선·철강업계, 희비 엇갈려
환헷지 전략으로 리스크 관리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최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30원을 넘나들며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중 무역갈등 재점화와 미국 정부 셧다운 우려로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가 확산되며 달러 강세가 이어진 영향이다.
이번 고환율은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자동차·조선·철강 업계에 엇갈린 명암을 드러내고 있다. 수출 중심 업종은 수익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원가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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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용 자동차 선적장 모습 [사진=현대차] |
14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7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30.10원을 기록했다. 전날 환율이 1434원까지 치솟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약 1년 6개월 만에 '구두개입'까지 나섰지만, 시장 불안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업계는 환율 상승 배경으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지속과 한미 관세협상 지연, 미·중 무역전쟁 재점화 등을 꼽고 있다.
이 같은 고환율 상황은 한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조선·철강 업계에 상반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완성차·조선업계는 '환율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원자재를 수입하는 철강업계는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대부분 업계는 리스크 관리법으로 미래 결제될 외화 금액의 환율을 미리 고정해 환차손을 최소화하는 '환헷지' 전략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효과도 업종별로 차이가 있다. 조선업계는 대부분 달러로 수주 대금을 받기 때문에 헷지 비중이 높지만, 철강업계는 원자재 수입 비중이 커 헷지 효과가 제한적이다.
◆ 車 업계, 수출 호재지만 원가 부담 존재
현대차그룹과 한국지엠 등 완성차 업체들은 전체 생산량 중 약 60% 이상을 해외 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까지 오르면서 달러 매출을 원화로 환산할 때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해외 부품 조달 비중이 높은 만큼, 수입 원자재와 부품 단가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은 내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차량에 들어가는 수입 부품 가격이 올라 완성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제조단가 상승과 가격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소비자는 차량 가격과 금융비용 부담이 동시에 늘어나는 셈이다.
이에 완성차 업계는 환리스크 관리와 헷지 전략 강화에 집중하는 한편, 원가 절감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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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삼호가 건조해 2024년 인도한 17만4000입방미터(㎥)급 LNG 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HD현대] |
◆ 조선 업계, 달러 강세로 수익성 방어
조선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내 조선 3사(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는 선박 수주 대금을 대부분 달러로 받는다. 이 때문에 원화 약세는 수주 대금의 원화 환산액을 늘려 수익성 개선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발주가 둔화된 상황에서도 달러 강세 덕분에 수익성 방어가 가능하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조선 3사는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이 실적에 반영되며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주 불확실성은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전체 매출의 95% 이상이 수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환율이 높아지면 수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환헷지를 하고 있어 드라마틱한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기본적으로 고환율은 업계에 호재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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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진=현대제철] |
◆ 철강 업계, 원자재 수입 부담에 수익성 악화
철강 산업은 대부분의 원자재(철광석·석탄 등)와 에너지를 달러로 수입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환율 상승은 곧바로 원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대에서 1400원대로 오르면 원자재 수입 비용은 약 40% 이상 증가하는 셈이다.
반면,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이 같은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 등 철강업계는 가격 인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와 수요 위축 탓에 실적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공급망 다변화와 내부 효율화가 핵심 대응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원자재를 수입하고 제품을 수출하다 보니 환율에 따른 수입·수출 간 상쇄 효과가 있다"며 "다만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만큼 고환율 구간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