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선관위에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허용 판결
투표소에 따라 투표 보조인 규정 제각각
29일 일부 투표소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거부, 투표 포기하기도
[서울=뉴스핌] 최수아 인턴기자 =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은 서울 종로구 종로구보건소 건물에 위치한 사전투표소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과 지난 1월, 법원이 허용하라고 판결한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발달장애인인 최은진(22·여성)씨는 지난 투표 때 투표 용지의 칸이 너무 작아 정확한 위치에 도장을 찍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최 씨는 사전에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검토해 소중한 한 표를 던질 곳을 정해두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투표지의 칸은 여전히 작았다. 투표 보조인이 필요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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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수아 인턴기자 = 29일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를 위해 서울 종로구 종로구보건소 사전투표소를 찾았다. 2025.05.29 geulmal@newspim.com |
◆ 발달장애인 참정권의 현실...재판은 '현재 진행중'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중증 발달장애인 A씨의 어머니는 투표사무원에게 자신이 A씨의 투표 보조를 하겠다고 요청했으나 A씨에게 신체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에서는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법률에 발달장애인은 명시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투표에 어려움이 있어도 투표 보조인 요청을 거절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2021년부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한국피플퍼스트 등 장애인단체들은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상대로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해왔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선관위가 발달장애인에게 투표 보조 편의를 제공하고 투표 관리 매뉴얼에 발달장애 등 정신적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사람을 포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어 지난 1월 부산고등법원에서도 재판부는 발달장애인은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하는 2인의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선관위가 이를 거부하고 각각 항소, 상고를 결정하면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 보조는 여전히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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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수아 인턴기자 =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요구 기자회견'에서 활동가가 참정권을 요구하며 투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5.05.29 geulmal@newspim.com |
◆ 발달장애인에게 '여전히' 어려운 투표
이날 종로구보건소 사전투표장은 다행히 발달장애인이 투표의 어려움을 설명할 경우 투표 보조를 허용했다. 최 씨는 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투표를 무사히 마쳤지만, "도장 방향(위아래)을 모르겠어서 어려웠다. 보조인이 있으니 도움이 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저는 무연고자다. 부모가 없다고 하면 조력자(보조인)를 두 명이나 배치한다"면서 "기본적으로 비밀투표인데 부모가 없는 발달장애인에게는 보조인이 두 명이나 붙어야 하는 것이냐"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기표소 내)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방법 등을 설명한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 보조인도 1명만 있으면 될 것 같다"면서 "그림 투표용지가 도입돼도 (사전에) 연습할 수 있는 모의 투표가 잘 돼 있어서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문석영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그냥 투표한 것보단 보조 용구가 있어서 흔들리지 않게 칸에 (도장을) 찍을 수 있어 편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3년부터 선관위가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 제작 가이드'를 마련해 각 정당에 공문을 발송하고 있다. 그 결과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민주노동당이 자료를 제작해 사전투표 전날인 28일 배포했지만, 이마저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문 활동가는 "(투표용지에) (후보) 사진이랑 글자도 (크게) 들어갔으면 좋겠다"면서 "공보물도 쉬웠으면 좋겠다. 이번에 (배포된) 쉬운 공약도 어려워서 조금 더 쉬워졌으면 한다. (말이) 너무 어려워서 누구 뽑아야 할지 고민된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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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수아 인턴기자 =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요구 기자회견'에 참여한 활동가들 2025.05.29 geulmal@newspim.com |
◆ 매뉴얼 부재로 투표소에 따라 투표 보조인 규정 '제각각'
제대로 된 매뉴얼의 부재로 인해 투표 보조의 허가 여부는 '운'에 맡겨진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사직동 투표소에서는 '기표용구 시험용지'의 손떨림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보조인이 허락됐다. 피플퍼스트에 따르면 이 투표소는 3명 중 2명의 보조 요청을 거절했다.
한 명은 결국 투표를 포기했고, 다른 한 명은 혼자 투표를 진행한 후 눈물을 흘렸다.
공덕주민센터 투표소에서는 사무원들이 가족이 아닐 경우 보조인이 2명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동행인의 투표 보조가 거부되기도 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사무국장에 따르면 선관위는 이날 발달장애인들이 사전투표에 참여하며 투표 보조를 요청할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 선관위가 연락해) 내일 기자회견, 사직동 사전투표소에서 시끄럽고 소란 피우면 문제가 되니 주의하라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장추련에 따르면 선관위가 이날 벌어질 상황을 사전에 파악했음에도 현장에는 통일된 매뉴얼이 갖춰지지 않았다. 때문에 투표소에 따라 투표 보조가 허가되는 혼선이 빚어졌다.
송효정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사무국장은 "전국적으로 투표소마다 너무 분위기가 다르다. 선관위가 사전에 그런 교육들을 잘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의 대리인 이수연 변호사(법조공익모임 나우)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존재, 인간으로서 존엄성,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당연하게 주어진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이 나라에서 살아있는, 보이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나"면서 장애인 참정권 실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geulma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