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
"삼성, 기술력 여전하지만 과거 '초격차' 사라져"
"엔지니어링은 실패가 누적돼야 성과 나와"
"더 많은 시도에 점수 부여할 수 있어야"
초격차는 어디 갔을까. 잃어버린 반도체 경쟁력과 주당 5만원대를 맴도는 주가는 삼성전자의 현주소다. 이재용 회장의 취임 2주년을 맞은 삼성전자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서울=뉴스핌] 정승원 기자 = "삼성전자는 기업 문화를 더 개방적으로 바꾸고,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에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고 더 많은 실패를 용인하고 더 많은 시도를 하는 것에 점수를 부여해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도와 실패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충분히 실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사진=삼성전자] |
'반도체 삼국지'의 저자로 잘 알려진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삼성 연구개발(R&D) 허점은 가능할 것 같은 프로젝트 위주로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해 솔루션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투자돼야 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초격차의 근간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했다.
과거 삼성전자는 반도체 기술력에서 초격차를 자랑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반도체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현재 더 이상 삼성전자는 경쟁사들과의 초격차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정기태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이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된 반도체 대전(SEDEX 2024) 중 대한전자공학회의 '제7회 반도체 산학연 교류 워크숍 세션'에서 "경쟁사보다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자신한 것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삼성이 반도체에서 갖고 있는 압도적인 경쟁력이 이전과 달리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의 시스템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충분한 실패가 용인돼야 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문화의 변화도 피력했다. 전영현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 부회장은 지난 8일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내놓았다. 전 부회장은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해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엔지니어링은 원래 실패가 누적돼야 성공의 성과가 나온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적으로 점점 어려워지는 선단 공정의 기술력 확보에서는 온갖 예상치 못 한 에러와 결합들이 나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치열한 토론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계급장 떼고 보고라인 무시하면서까지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솔루션 제일주의가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에는 경직된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 권 교수는 "임원 조직을 개편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과 범위를 넓히고 사외이사직을 외부 전문가들이나 해외 전문가들에게로 개방해야 한다"며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을 더 고객사 입장에서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자사의 파운드리로의 접근성을 더 개선하는 등의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일 필리핀 라구나주 칼람바시에 위치한 삼성전기 필리핀법인(SEMPHIL)을 찾아 현지 임직원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다음은 권석준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인텔을 비롯해 반도체 기업들이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 종합반도체 산업 모델을 추구한 전통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당면한 위기로 볼 수 있다. 인텔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설계-제조-판매'의 모든 라인을 자사에서 처리하려는 모델을 끌고 온 것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TSMC와는 달리 인텔은 자신들의 팹을 외부 고객에게 개방하는 것이 쉽지 않다. TSMC가 고객의 위탁 생산 위주로 팹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인텔은 자사의 로직 반도체 생산으로 팹을 운영해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도 위기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됐나.
▲ 삼성의 위기는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에서 초격차가 사라진 것에서 비롯됐다. 그로 인해 다양한 고부가가치 칩의 개발로 연계가 느려지고 품질 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돼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 AI 메모리가 대세인 상황에서 변화의 시기를 제 때 잡지 못했기 때문일까.
▲ 삼성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할 때는 지금처럼 AI 반도체가 전도유망했던 시대도 아니었다. GPU나 AI 반도체에 특화된 HBM 같은 고성능메모리가 득세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어려웠다. 시대를 제대로 못 읽은 것은 아쉽지만 당시의 경영진과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기존의 범용 반도체 기술력 개발과 초격차가 더 우선이었을 것이다.
- 삼성전자가 기술경쟁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삼성의 기술력은 여전히 글로벌 수준이다. 다만 10년 전과 비교해 초격차라는 개념을 쓸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삼성 R&D 허점은 가능할 것 같은 프로젝트 위주로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해 솔루션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투자돼야 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초격차의 근간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 내부 조직 문화에 대한 반성도 나온다.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장 부회장은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치열하게 토론하겠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이는 그동안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해 보인다.
▲ 엔지니어링은 원래 실패가 누적돼야 성공의 성과가 나온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적으로 점점 어려워지는 선단 공정의 기술력 확보에서는 온갖 예상하지 못 한 에러들이 나오고 결함들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토론이 치열하게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계급장 떼고 보고라인 무시하면서까지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한 솔루션 제일주의가 정착해 가장 중요한 자원을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스핌DB] |
- 삼성전자가 도전보다는 수성의 마인드가 굳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 어떤 기술이나 기업이든 한 분야에서 지배력이 오래 지속되면 성을 쌓게 마련이다. 그 성벽을 기술력이 아닌 비용 절감으로 쌓는 것은 당장의 수익률 강화라는 결과로 나온다. 때문에 많은 제조기업들이 택하고 있다. 실제로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필요 없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래가치가 풍부한 기술에 대한 탐색과 뿌리 기술의 정착 기회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 임원들이 단기 목표에 집중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 임원들은 6개월, 3개월짜리 가시적 성과에 집중한다. 임원의 목숨이 파리목숨 같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임원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고 더 높은 성과급을 받기 위해 달성가능한 핵심성과지표(KPI)를 단기적으로 구성해 조직의 역량을 그에 맞게 몰아가려 한다. 이는 임원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성과 측정을 하고 리워드를 주는 회사의 시스템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 삼성의 파운드리 기술력 회복은 가능할까.
▲ 기술력 자체는 충분히 있다. 문제는 그것이 수익성 있는 기술력이 되게끔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더 많은 실패와 데이터 누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럴 여유를 삼성이 스스로 만들지 못 하고 있다.
- 보다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 리더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감한 결정이 부족한 이유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리더십들의 시스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감한 결정 이후에 올 수 있는 각종 실패 사례에 이름을 올리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 삼성전자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 기업의 문화를 더 개방적으로 바꾸고 더 문제 해결을 위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트러블슈팅에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더 많은 실패를 용인하고 더 많은 시도를 하는 것에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 또한 임원들의 조직을 개편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과 범위를 넓히고 사외이사직을 외부 전문가들이나 해외 전문가들에게로 개방해야 한다.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에서는 더 고객사 입장에서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자사의 파운드리로의 접근성을 더 개선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 삼성전자의 위기로 한국 반도체의 위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나.
▲ 이제 글로벌 대기업이 된 삼성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지원은 어렵다. 다만 반도체 팹 증설 과정에서 필요한 전력망 설치 등의 인프라 확충과 제도 개선, 인력 양성 프로그램의 선진화 등의 각종 국내외 산업 정책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나라는 직접 보조금이 없지만 해외 정부는 천문학적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반도체 특별법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는데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보조금 유무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조금을 필두로 한 지원 패키지의 유무는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직접 보조금을 다른 나라에 준하는 수준으로 확충하고 무엇보다 인재 양성 프로그램 강화와 전력·용수·폐수처리·송전 등의 인프라를 충분히 강화해 개편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 우수한 반도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인력들에게 일종의 라이선스를 부여하고 이들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고연봉 직업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충분히 좋은 인재가 다시 공대로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정부에서 안정적으로 기초·응용 과학 및 공학 R&D를 지원하고 풀뿌리 연구로부터 응용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연구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되면 연구 커리어에 정착하는 젊은 인력들이 많아질 것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 [사진= 뉴스핌 DB] |
◆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한·중·일 반도체 산업에 대해 분석한 '반도체 삼국지'의 저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매사추세츠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반도체 신소재와 차세대 반도체용 나노 및 포토닉스 소자 관련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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