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한 달 못 돼 7건 발생…처벌만이 능사 아니다
예방 취지 무색...규정 모호하고 과도한 처벌 지적도
[편집자]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로 시행 한 달을 맞는다. 정부와 기업 등 각계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시행 이후 적지않은 중대재해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뉴스핌> 중대재해법 시행 한달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흡한 점과 바람직한 개선방안을 모색해 본다.
[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채 안 돼 실효성 의문이 번지고 있다. 한 달 사이 관련 사고가 7건, 나흘에 한 번 꼴로 발생하면서 처벌이 아닌 예방에 목적이 있다는 법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산업계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발생한 7건의 중대재해를 대상으로 정부의 사고 원인 파악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올 1월 27일 법 시행 이틀 만인 1월 29일 삼표산업의 경기도 양주 채석장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작업자 3명이 매몰됐다. 닷새에 걸친 구조 및 수색 작업 끝에 매몰된 작업자 3명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당일 해당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밝히며, 삼표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약 열흘간의 조사 끝에 고용부는 삼표산업 골재부문 대표이사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첫 입건 사례다.
이후 고용부는 압수수색 등을 거쳐 법 위반 여부를 집중 조사하는 한편, 삼표산업 전국 사업장에 대해 특별감독도 실시 중이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지난해 2건의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체에서 다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참담하다"며 "사고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재발방지대책 수립 의무 등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 규명을 하겠다"고 했다.
삼표산업뿐만 아니다. 2월 들어서는 지난 8일 판교 신축공사장 승강기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11일 여천NCC 공장 폭발 사고와 한솔페이퍼텍 차량 전복 사고, 16일 세종~포천 고속도로 현장 추락 사고, 18일 창원 두성산업 급성중독 사고, 20일 고성 조선소 추락 사고가 이어졌다.
최근 삼표산업에 이어 급성중독 질병자 16명이 발생한 창원 두성산업 대표이사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는 등 산업계의 중대재해법 처벌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7건 외에도 지난 21일 강원도 동해의 쌍용C&E 시멘트 제조공장에서 철골 설치작업중 50대 작업자가 떨어져 사망한 것과 같은 날 충북 충주의 한 골프장 공사현장에서 60대 작업자가 화물차 적재함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고 등 현재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와 함께 사고 경위 조사가 진행 중인 건 등을 감안하면 해당 법 적용 사건은 금세 불어날 수 있다.
이에 사업장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중대재해법이 사고 예방 효과는 없이 처벌 사례만 쌓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초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도 규정이 모호하고, 처벌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수없이 제기됐다.
해당 법률은 '경영책임자'라는 개념을 도입,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재벌 총수 등에 대한 처벌이 가능케 한 것이 특징이다.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대해 처벌을 부과하고 있는데,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경영책임자엔 기업의 대표뿐 아니라 행정기관의 장도 포함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설문조사 결과,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규정에 대해 '과도하다'고 답한 비율이 77.5%였다. 4명 중 3명 이상이 처벌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본 것. '과도하지 않다'고 응답한 이들은 16.9%로 나타났다. 아울러 '과도하다'고 답한 응답자의 94.6%는 추후 법 개정 또는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법적 모호성도 문제다.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예방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주체부터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다. 누가 경영책임자가 돼야 하는지, 사업장이나 장소를 '지배'하는 자와 '운영'하는 자 그리고 '관리'하는 자가 서로 다를 경우에 누가 예방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고, 원청이 해야 하는지 아니면 하청이 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한 경우도 많다는 얘기다.
이에 더해 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채 경과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부여하면서 이행 주기를 '6개월'로 규정했다. 수사 결과 경영책임자가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시행령을 근거로 '의무를 이행할 계획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당국은 중대재해법이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닌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사고 비율이 해외 주요국가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의 법정형과 달리 실제 법원에서 선고하는 형량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정부 측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처벌규정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해 대형 인명사고나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를 막고자 하는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했다.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