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고위급회담서 수석대표 간 '지각 해프닝' 화제
지난 5일 회담서 3분 늦은 조명균 "시계 고장 나서"
北 리선권 "시계가 주인 닮아 관념 없어" 꼬집어
15일 회담 앞서 조 장관, 먼저 나와 리선권 기다려
대표단, 회담 중요성 감안해 의전에 조심 또 조심
[서울=뉴스핌] 공동취재단 노민호 기자 =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남북 정상 간 합의한 일련의 선언을 구체화하는 일종의 ‘카운터파트’다.
두 사람 간 만남의 기회가 잦아지면서 웃지 못 할 일도 생기곤 한다. 그 중 대표적으로 손꼽을 수 있는 건 ‘지각 해프닝’이다.
조 장관은 지난 15일 남북고위급회담장에 들어서기에 앞서 북측 대표단을 기다렸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리 위원장은 조 장관에게 “먼저 나와 계십니까. 아까는 내가 먼저 나왔는데”라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조 장관도 “제가 지난번에 그런 것도 있고....”라며 화답했다.
남북 고위급회담 수석대표 간 만남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은 지난 5일 평양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당시 조 장관과 리 위원장은 평양 고려호텔에서 고위급회담 대표단 협의를 가졌다. 협의 시작 시간은 오후 6시였다. 리 위원장은 시작 10분 전부터 회의장 앞에서 조 장관을 기다렸다.
[판문점=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평양공동선언 이행방안 협의를 위한 5차 남북 고위급회담이 15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개최된 가운데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으로 한 우리측 대표단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수석대표단이 회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2018.10.15 |
그러나 6시가 됐지만 조 장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리 위원장은 복도에 서서 “단장부터 앞장서야지 말이야”라고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6시 3분쯤 조 장관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북쪽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게 복도에서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말이야”라며 “일이 잘될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당시 리 위원장의 발언은 농담으로 받아들여졌다. 남북 관계자들은 웃으면서 배정된 자리에 앉았고, 조 장관은 지각 이유가 “고장 난 시계 때문”이라고 해명, 리 위원장의 불쾌감을 풀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실제 조 장관의 시계는 30분 정도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그의 옆에 앉은 정재숙 문화재청장을 통해 확인됐다.
당시 리 위원장은 “자동차라는 게 자기 운전수를 닮는 것처럼 시계도 관념이 없으면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고 웃으면서 계속해서 농을 던졌다. 일종의 '언중유골(言中有骨, 말 가운데 뼈가 들어있다는 의미)'이다.
[판문점=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평양공동선언 이행방안 협의를 위한 5차 남북 고위급 종결회담이 15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개최된 가운데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으로 한 우리측 대표단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수석대표단이 공동 보도문을 발표한 뒤 평화의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8.10.15 |
리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남측 대표단 일각에선 과도한 발언이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남북을 대표하는 직책을 감안한다면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15일 남북 고위급회담 당일 조 장관이 리 위원장을 먼저 기다린 것은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만큼 고위급회담에 임하는 남북 대표단의 기싸움이 치열하고, 한편으로 서로 배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는 의미다.
한편 ‘대남 대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리 위원장은 군 출신이다. 2006년부터 장성급 회담이나 군사 실무회담 등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통일부에 따르면 리 위원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체제 출범과 함께 국방위원회 정책국 부국장에 오르며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받고 있다.
그는 2014년 10월 정책국장으로 승진했으며 남북 고위급 북측 대표단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직을 맡았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 들어 가장 고속승진을 하고 있는 북측 인사가 리선권 위원장"이라며 "그만큼 자부심이 강하고 강단있는 인물로 봐야 하기 때문에, 남측 대표단도 각별히 의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