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 유지 서려있는 동양 본산 매각에 동양·오리온 오너들 참담
[뉴스핌=강필성 기자]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 오너들이 최근 본격화된 동양시멘트 인수전을 보며 애를 태우고 있다. 선대의 유지가 서려있는 동양시멘트 삼척 공장과 결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에게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은 그룹 시발점이자 동양그룹 분해를 실감케 하는 비극적인 곳이 됐다.
창업자인 고(故) 이양구 명예회장의 선영은 바로 동양시멘트 삼척공장과 길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죽어서도 동양시멘트 공장을 지켜보겠다는 그의 유지 때문에 이곳에 이 명예회장의 묘를 썼다.
17일 시멘트업계 등에 따르면 동양시멘트의 본사인 삼척시멘트 공장은 그룹의 모태와도 같은 곳이다. 이 명예회장이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을 일군 첫 토대가 바로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이어서다.
이 때문에 이 명예회장은 삼척 공장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깊었다. 그는 1957년 동양시맨트를 인수한 직후 공장 북서쪽 언덕에 ‘육경단(六慶壇)’이라는 비각을 건립하고 삼척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늘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이곳부터 찾았다고 한다. 그대로 직역하면 여섯가지 경사스러운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 팔각정처럼 이곳 비각의 상단이 육각형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범 동양가 내부의 전언도 있다.
이 명예회장은 생전에 종종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동해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고 이는 현실이 됐다. 그의 무덤은 육경단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동양시멘트 삼척공장. <사진=뉴시스> |
이는 비단 오너일가만의 일은 아니다. 동양시멘트 임직원들은 이 명예회장이 생전에 그랬듯 매년 육경단에 제를 올린다. 주요 사업이 진행되거나 새해가 시작할 때도 그렇다. 그들에게 이미 육경단은 번창의 상징이기도 했다.
때문에 동양가 오너들이 명절에 이 명예회장의 산소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명예회장은 두 딸 사위에게 각각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으로 나눠 물려줬다. 첫째 사위인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 금융, 제조사를 맡았고 둘째사위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식품계열사 등을 분배 받았다.
문제는 2013년 동양그룹이 무너지면서 비롯됐다. 동양그룹이 자금난으로 인해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시멘트, 동양네트웍스 5개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사실상 공중분해된 것. 이 때문에 동양시멘트는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이다.
삼표, 유진기업을 비롯 중소레미콘사 컨소시엄 등 레미콘업체는 물론 한일·아세아시멘트 컨소시엄, 라파즈한라 등 경쟁사, 한앤컴퍼니, IMM, 한림건설, CRH 등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다음달 22일 본입찰이 마감되고 나면 사실상 동양시멘트는 동양의 품을 떠나게 될 전망이다. 동양, 오리온 일가와 삼척이 결별하게 되는 것이다.
동양그룹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는 “주인이 바뀌게 된다면 연례행사라고 하더라도 이전 오너의 선영을 방문할 일이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결국 선대 회장의 유지는 후대로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육경단은 ‘개기철권문(開基鐵券文)’이라는 비문이 새겨져있다. 집터를 닦으며 신에게 맹서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이 명예회장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새기며 동양시멘트의 성장과 행운을 기원했다.
“금, 은, 동 재물과 돈 9만999환과 각색의 예물을 놓고 정성을 다해 개황후토원군에게 공경을 올립니다. 역병과 부상당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천재지변을 쫓아내시고 영구이 행운을 주시옵소서. 만약 맹약을 어긴다면 땅속을 주관하는 관리가 앙화를 받을 것이며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태상황제에게 고할 것입니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