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정직성, '5% 달성' 강박에서의 해방
질적 전환, 신질생산력으로의 엔진 교체
"중국, 35년 만의 최저 성장률 목표치 제시"
2026년 3월 5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업무보고가 발표되자마자 한국 언론은 일제히 같은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숫자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2026년 GDP 성장률 목표 4.5~5%는 확실히 지난해 '5% 내외'에 비해 낮아 보인다.
그러나 같은 날 발표된 재정 예산을 역산하면 전혀 다른 숫자가 나온다. 정부가 예산 편성의 전제로 삼은 암묵적 명목 GDP 성장률은 5.04%로, 오히려 2025년의 4.9%보다 높다. 언론 헤드라인이 하향을 외치는 동안, 예산은 조용히 확장을 말하고 있었다.
성장률 숫자 하나만 떼어내 "35년 만의 최저"로 규정하는 것은, 77배 커진 중국 경제의 질량과 방향을 통째로 가려버린 절반짜리 진실이다. 1990년 이후 중국의 경제 규모 변화를 보면 '35년 만의 최저'라는 이 주장이 얼마나 맥락과 균형을 잃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2026년 중국의 5% 성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약 7조 위안으로, 한국 GDP의 약 반년 치에 해당한다. 1990년 중국 경제 전체의 규모(총 GDP)는 지금 1년 성장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저 성장률"이라는 표현은 숫자만 보고 경제의 질량을 무시한 진단이다.

4.5~5% 성장 목표의 7가지 전략적 배경
① 외부 충격 완충재: 트럼프 관세의 방어막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되는 국면에서 단일 목표치는 정치적 부담이 된다. 4.5%는 최악의 시나리오(관세 60% + 전면 충격)에서의 마지노선이고, 5%는 협상이 타결되거나 내수가 예상을 상회할 때의 상단이다. 구간 목표는 외교 변수에 대한 정책 유연성을 내장한 설계다.
② 고용 방정식의 해: 1,200만 명의 대졸자 취업 중국에서 GDP 성장률 1%는 약 240만 명의 고용을 유발한다. 2026년 신규 고용 목표 1,200만 명을 달성하려면 최소 5%의 성장이 필요하다. 동시에 매년 1,100만 명의 신규 대졸자가 쏟아지는 구조에서, 고용 목표는 사실상 성장률의 하한선을 결정한다.
③ 경제 규모의 중력: 성숙 경제의 물리학 2024년 기준 중국 명목 GDP는 약 134.9조 위안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같은 성장률을 달성하는 절대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1990년대 10% 성장이 창출하던 부가가치를 지금은 7%면 충분히 뛰어넘는다. 성장률 숫자의 하락이 경제력의 하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④ 디플레이션 탈출 전략: CPI 2%의 함의 2026년 CPI 목표 2%는 단순한 물가 목표가 아니다. 2023~2025년 디플레이션 압력을 경험한 중국이 "물가가 오르는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이다. 고부가가치 신질생산력 산업 육성이 기업 마진을 높이고, 이것이 임금 상승·소비 증가·가격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목표로 한다.
⑤ 재정의 실탄: 역대 최대 적자의 역설 재정적자율 4%(역대 최고), 재정적자 5.89조 위안, 정책성 금융 도구 8,000억 위안 신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등장한 것은 "성장률 목표는 낮췄지만 경기 부양 의지는 오히려 강화했다"는 역설적 메시지다.

⑥ 정치적 정직성: '5% 달성' 강박에서의 해방 시진핑 집권 이후 성장률 목표는 사실상 정치적 성과 지표였다. 구간 목표 설정은 "우리는 숫자 맞추기가 아니라 실질 성과를 추구한다"는 정치적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동시에 지방 정부들이 목표 달성을 위한 무리한 투자를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내권(內卷, 제 살 깎기 식 출혈 경쟁)' 예방도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다.
⑦ 질적 전환: 신질생산력으로의 엔진 교체 2026년 정부업무보고는 AI·반도체·로봇·바이오를 핵심으로 하는 신질생산력에 재정 실탄을 집중 배분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경제 구조 전환기에, 4.5~5%라는 범위형 성장 목표치는 구(舊)성장 모델에서 신(新)성장 모델로 넘어가는 변속 구간이다.
2026년 중국 경제, 숫자가 아닌 게임판을 봐야
중국 경제의 10년 경제 성장 목표치를 보면 2019년에 이미 구간 목표를 도입했고, 팬데믹 때인 2020년에는 목표 자체를 없앴다. "35년 만의 최저"라는 표현은 이 맥락을 통째로 지워버린 것이다. 2026년의 4.5~5%는 오히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0년 이후 가장 안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목표 설정이다.
4.5~5%는 후퇴가 아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선택한 선언이다. 재정 암묵적 명목 성장률 5.04%라는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1,200만 명 고용 목표가 이를 뒷받침한다. 역대 최고 재정적자율 4%가 이를 실행한다.
한국에 "35년 만의 최저"라는 헤드라인이 요란스럽게 나돌 때, 중국은 이미 다음 단계 성장 엔진의 시동을 걸고 있었다.
전병서는...
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푸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반도체와 IT애널리스트로 17년간 재직했고, 대우증권 상무, 한화증권 전무를 지냈다. 이후 19년간 중국경제와 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중국100년의 꿈 한국10년의 부", "기술패권시대의 대중국혁신전략", "한국반도체 슈퍼乙 전략" , "차이나 퍼즐"등의 저서가 있다.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