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 리스크 헤지 모색
빅테크 부외 부채 논란 확산
중앙은행도 긴장감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에 거액의 판돈을 건 투자은행(IB)들이 리스크 헤지에 잰걸음이다.
AI 버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다 최근 빅테크의 부외 부채를 둘러싼 경고음이 고조되는 상황과 맞물려 월가의 관심을 끈다.
AI와 클라우드 컴퓨팅 수요가 급증하는 사이 데이터센터 부문에 수십 억 달러의 대출을 제공한 도이체방크가 해당 섹터에 대한 익스포저를 헤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월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은행 경영진들은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투입하는 천문학적인 자금 가운데 부채의 비중이 늘어나자 내부적으로 잠재적인 위험 노출 관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소식통들은 은행이 AI 관련 주식 바스켓에 공매도 포지션을 취하는 형태로 해당 섹터의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는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합성 리스크 이전(SRT)이라는 거래를 통해 파생상품을 활용한 일부 부채의 디폴트 헤지를 설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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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로소프트가 추진중인 데이터센터 건설 프로젝트 [사진=블룸버그] |
AI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베팅이 버블을 형성하고 있다는 우려가 번지는 한편 과거 닷컴 버블 붕괴 이전 상황과 흡사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상황.
회의론자들은 기술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가치가 빠르게 감가상각 되는 자산에 수 십억 달러가 투입되고 있다며 쓴소리를 낸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주로 알파벳(GOOGL)과 마이크로소프트(MSFT), 아마존(AMZN)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게 대출을 제공했다. 해당 여신은 안정적인 수익을 약속하는 장기 계약으로 담보돼 있다.
도이체방크가 알파벳을 포함한 빅테크에 직접 자금을 빌려준 게 아니라 이들 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 데이터센터 업체들에게 대출을 제공했다는 얘기다.
해당 데이터센터 업체들은 빅테크와 서비스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했고, 도이체방크는 장기 계약을 담보로 삼았다는 얘기다.
빅테크가 직접 자금을 차입하지 않은 이유는 대차대조표 상 부채가 늘어나 재무건전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빅테크가 외부 데이터센터 업체들과 장기 리스 계약을 체결하고 은행권의 대출을 측면 지원하는 형태를 월가는 부외 부채라고 판단한다. 실제로는 빅테크의 채무라는 얘기다.
도이체방크가 리스크 헤지에 나선 이유는 데이터센터의 감가상각이 예상보다 급속하게 진행되거나 AI 버블이 꺼지면서 빅테크들이 계약을 축소하거나 해지하면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대출금을 상환하기 어렵게 되고, 결국 은행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사이에만 도이체방크가 스웨덴의 에코데이터센터와 캐나다의 5C에 여신을 제공했고, 이들 업체는 총 10억달러 이상을 조달해 사업 확장에 나섰다.
은행 측은 해당 섹터에 대한 대출 규모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지만 월가와 주요 외신들은 수십억 달러로 추정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도이체방크가 리스크 헤지 방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AI 테마주의 주가가 고공행진 하는 상황에 해당 주식들의 바스켓에 역베팅할 경우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SRT 거래 역시 등급을 받기 위해 분산된 대출 풀이 필요하고, 투자자들은 부도에 대한 보험으로 더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센터 업체들의 부외 부채를 둘러싼 경계는 도이체방크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 중앙은행은 2주 전부터 데이터센터 대출에 대해 공식적인 검토에 나섰다. AI의 미래에 대한 일반적인 베팅이 과도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보스톤 연방준비은행은 이른바 '꼬리 리스크'를 경고했다. 모든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가 데이터센터에 대출하고 있어 AI가 붕괴되면 동시다발적인 파산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다.
UBS는 보고서를 내고 AI 관련 프라이빗 크레딧 대출이 2025년 초 기준 12개월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모간 스탠리는 2028년까지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1조5000억달러의 자금 중 절반 이상이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을 통해 공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자산유동화증권(ABS)이 급증하는 상황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상황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가는 "새로운 유형의 부채 구조라는 표현이 2008년 금융위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