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원고 승→2심 각하
대법 "처방약 조제 기회 공정하게 배분해야"
"이익 침해는 신설·기존 약국 위치·규모 등 종합적 고려해 판단"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병의원과 같은 건물 바로 옆 호실에 문을 연 약국에 대해 해당 병의원 인근의 기존 약사들이 개설 취소 소송을 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1일 약사 A씨 등이 B약국의 개설 등록을 취소해달라며 영등포구보건소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사건을 각하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 |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이번 사건은 C의원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의 건물 같은 층에 B약국이 개설 허가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C의원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A씨 등은 B약국 개설이 약사법에 위반된다며, B약국 개설 등록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 승소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은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해 약국을 개설하는 경우 개설등록을 받지 아니한다는 약사법 제20조 제5항 제3호에 위반돼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B약국이 개설됨으로써 원고들 약국의 매출 중 이 사건 의원 처방전에 기초한 매출이 크게 감소했을 것이므로, A씨 등에게 원고적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은 1심과 달리 A씨 등에게 개설 등록 처분의 취소를 구할 원고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사건을 각하했다. 각하는 사건이 소송을 제기할 적법성이 없거나 소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법원이 본안 판단 없이 재판을 종료하는 것을 뜻한다.
재판부는 A씨 등의 약국과 B약국이 각각 다른 건물에 위치하고 A씨 등의 약국 인근에 다른 약국도 존재하는 점, 원고들 약국의 주된 매출이 C의원의 처방전에 대한 조제약 판매에 기초한다고 볼 수 없는 점, B약국 개설로 인해 A씨 등의 매출 중 C의원 처방전에 기초한 부분의 감소가 유의미하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점 등을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른 약사에 대한 신규 약국개설등록처분으로 인해 조제 기회를 전부 또는 일부 상실하게 된 기존 약국개설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며 A씨 등의 원고적격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약사법 제20조 제5항은 제2·3·4호는 인근 약국개설자의 경제적 기반을 보호하고자 하는 규정"이라며 "따라서 '의료기관의 처방약 조제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받을 기존 약국개설자의 이익'은 약국개설등록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해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신규 약국개설등록처분으로 인해 의료기관의 처방약 조제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받을 기존 약국개설자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지는 개별 의료기관을 기준으로 신설 약국 및 기존 약국의 위치·규모·운영형태, 의료기관과 각 약국 사이의 거리·접근 방법, 인근의 약국 분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만약 기존 약국개설자가 운영하는 약국이 신규 약국개설등록처분 당시를 전후해 기준이 되는 개별 의료기관이 발행한 처방전에 따라 의약품을 조제한 적이 있다면, 그 약국은 신규 약국개설등록처분으로 인해 해당 의료기관이 발행한 처방전에 대한 조제 기회가 감소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이 경우 기존 약국개설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처분의 취소를 구할 원고적격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