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소득세·상증세로 갈라진 두 후보 세제공약
감세로 경제 살린다는 김문수, 보수경제관 전면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증세 신호 보낸 이재명의 철학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제21대 대선 후보 간 극명하게 갈리는 공약 중 하나는 세제다. 김문수 후보는 감세를, 이재명 후보는 증세를 주장하며 입장이 갈렸다.
경기 둔화와 양극화, 고령화까지 겹친 지금 세제공약은 후보의 경제철학과 국정 방향을 드러내는 '바로미터'로 해석된다.
◆ 감세 vs 공정…김문수·이재명 두 후보의 법인세 철학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대표적인 감세론자다. 그는 경제 활력을 회복하려면 기업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며,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20%로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25%까지 올랐던 법인세율을 다시 낮추려는 흐름을 되살리겠다는 의미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 법인세율을 22%로 낮춘 바 있는데, 김 후보는 이 흐름을 잇되 한 단계 더 과감한 인하를 제안한 것이다.
김 후보는 또 법인세 과표 구간을 단순화하고, 신성장·첨단산업·지방투자 기업에 대해 과감한 세액공제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감세의 수혜를 특정 기업군에 집중시키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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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감세를 기업 투자와 고용 창출의 동인으로 바라본다. 과거 보수 진영이 즐겨 쓰던 '낙수효과' 프레임을 다시 꺼내든 셈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는 우려도 따른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이미 주요 OECD 국가보다 높은 편이지만, 동시에 법인세 실효세율은 낮다는 지적도 많다.
세율만 인하할 경우 대기업이 주로 수혜를 입고, 중소기업·자영업자 등은 혜택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법인세 공약에서 세율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공정경제 실현'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며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방지, 자본거래 감시 강화, 기술탈취 근절 등 기업 내부 거래 감시에 방점을 뒀다.
이는 조세회피를 줄여 실질적인 과세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실효세율'을 높이겠다는 접근이다.
이 후보의 공약집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아 경제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시장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문장이 반복된다.
또 그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은 줄이되,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의 과세 회피는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태도다. 이를 위해 디지털세, 이익공유제, 플랫폼 수수료 상한제 등 간접 과세 구조 개편 도구들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세율을 건드리지 않고 과세 기반을 넓히는 방식은 단기적 세수 증가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기업으로서는 과세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는 위험도 따른다.
특히 기업 내부에 대한 규제와 감시는 자칫 '정책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중산층 감세부터 기회 보장, 누진 강화까지…갈라진 입장
김문수 후보는 소득세 정책을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분야'로 꼽는다. 그는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중산층의 세 부담을 완화해야 소비와 내수가 살아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제도는 물가가 상승하면 소득세 과표 기준도 그에 맞게 자동 조정되도록 해 사실상 세금 인상 효과를 막는 장치다. 현재 구조에서는 명목소득이 조금만 늘어도 상위 과표 구간으로 넘어가며 '소득 인플레이션 과세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김 후보의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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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뉴스핌] 최지환 기자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2일 오후 경기 광명시 철산로데오거리에서 열린 "내일은 더 밝을" 광명시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5.05.22 choipix16@newspim.com |
또 근로소득공제·인적공제 확대, 비과세 항목 확대 등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배당소득 분리과세, 장기주식보유에 대한 세제 혜택까지 포함해 중산층과 투자자 모두의 세 부담을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김 후보는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세금에 짓눌려선 안 된다는 기조를 띄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조세정책은 '더 적게 걷고, 시장이 움직이게 하자'는 자유주의 경제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공식 공약에서 소득세율 인상이나 감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공약 전반을 살펴보면 중산층 이하에 대한 금융 지원과 공공재정 확대,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공정 과세 요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기본적으로 조세의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소득세에 대해서도 소득에 비례한 과세, 즉 누진세 강화 방향을 기조로 유지하고 있다. 과거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이러한 세금 철학을 반복한 바 있다.
특히 이 후보는 10대 공약에서 '청년미래적금'을 통해 청년층의 자산형성을 돕고 소상공인 대환대출, 상병수당 확대, 폐업지원 현실화 등 재정 지출 공약을 다수 포함했다. 이는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에 대한 조세 기반 확충 없이는 실현이 어려운 구조다.
또 공약집에서는 '세금을 거둘 때는 공정하게, 쓸 때는 더 공정하게'라는 문구가 언급된다. 이는 조세부담률 자체보다 조세구조의 정당성을 앞세우는 전략이며, 향후 집권 시 고소득자 대상 세율 조정 또는 공제 축소 방식의 조용한 증세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선거 전략상 직접적인 '증세' 표현은 지양하고 있으며, 소득세 구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조세 정의 프레임을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김문수 "과도한 징벌" vs 이재명 "자산 불평등 해소"
김문수 후보는 상속·증여세를 '과도한 징벌'이라고 본다. 그는 상속세 개편을 주요 감세 공약으로 삼아, 현행 상속세 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피상속인의 총자산 기준으로 과세하는 현행 구조를, 수증인이 받은 자산 기준으로 개별 과세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특히 부부간 상속은 전면 면제하고, 가업승계에 대해서는 상속세 납부유예 제도 확대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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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인천 계양역 앞에서 유세를 마치고 두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5.05.21 yooksa@newspim.com |
그는 또 상속세와 증여세의 실효세율이 낮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복잡성과 심리적 부담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상속세 자체보다, 그 존재가 '미래 설계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세의 수혜가 고소득층에 집중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선 "중산층에게도 상속세는 실질적 장벽"이라며 공정한 경쟁을 위해선 상속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상속세와 증여세에 대해 공식적인 감세나 증세 방침을 제시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공약 전반에는 '편법 차단', '지배구조 개혁', '자산 불평등 해소'라는 철학이 뚜렷하게 녹아 있다.
그는 공정경제 공약에서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방지, 자본거래 감시 강화, 기술탈취 근절 등을 제시하며 부의 집중과 세습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다수 포함시켰다. 상속세 자체를 바꾸지 않더라도 과세 기반을 넓히고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증여세와 관련해선 명시적 언급은 없지만, 공약집에 '자본거래를 통한 사익 편취 차단', '세법과 회계법의 연계 강화' 등의 표현이 반복된다.
이는 직접적인 세율 인상이 아니더라도, 과세 회피를 막고 세금 정의를 구현하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
특히 부의 세습을 방지하고, 조세회피를 차단하는 장치로 상속·증여세의 역할을 '공정사회 설계의 핵심 도구'로 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다만 이재명 후보도 선거 국면에서 '증세' 표현을 피하고 있다. 대신 조세 정책의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성 확보를 중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각 후보가 바라보는 세금은 숫자가 아니다. 누가 내고, 어디에 쓰이며,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에 따라 세금은 '국가 철학'이 된다. 감세냐 증세냐를 넘어, 유권자가 공감할 수 있는 조세의 방향성과 정의감이 이번 대선의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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