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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인건 국립극장장 "전통·현대 어우러진 공연 축제, 만들 것"

기사입력 : 2023년07월25일 07:34

최종수정 : 2023년07월25일 07:41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박인건 국립극장 극장장이 취임 4개월 차를 맞아 콘텐츠와 서비스를 보강해 관객들에게 늘 열려있는 극장이란 지향점을 밝혔다. 국립극장만의 전통과 현대성이 어우러진 정체성을 담은 새로운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은 포부도 전했다.

박인건 극장장은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공석이 꽤 길었던 국립극장장 직에 공모하고 임명되기까지 과정을 얘기했다. 안팎으로 기대감이 컸던 만큼 어깨도 무겁다.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부터 30년 넘게 예술경영에 매진해온 만큼, 국립극장이 콘텐츠와 정체성을 담은 공연 그 자체의 발전을 먼저 도모할 계획이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박인건 국립극장장이 21일 오후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서 종합 민영 뉴스통신사 뉴스핌 양진영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2023.07.21 leemario@newspim.com

"극장장 공석이 길었으니 '잘해야 할텐데' 하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외부에서도 기대가 있고요. 그만큼 무슨 일이 있을까 긴장도 되죠. 와보니 밖에서 관객 입장으로 볼 때와 CEO로 볼 때 차이가 있긴 해요. 진정한 제작극장은 산하 예술단체가 있어야 하고 무대 세트, 소품까지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니 분위기도 좋고 지원도 아끼지 않죠. 자기 극장이 있으니 또 좋고요. 제작하기에 가장 환경 좋고 유일하게 무대 장치실, 작화실, 소품실, 의상실 등을 갖춰서 소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데가 우리 국립극장이란 게 자랑스러워요."

국립극장 산하 예술단체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매 해 레퍼토리 시즌제를 발표하며 벌써 12년째 양질의 공연을 올려 업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특별히 올해는 국립극장의 본격적인 발전이 시작된 남산 이전 50주년이 되는 해다. 23~24 국립극장 레퍼토리에는 그 포부를 엿볼 수 있는 무대 '세종의 노래'를 중심으로 다양한 단체와 협업해 무한으로 뻗어가는 국립극장의 확장성을 내보일 예정이다. 연출가 손진책, 작곡가 박범훈, 안무가 국수호가 의기투합했다. 세종대왕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을 바탕으로 한 300명 여의 인원이 참여한 초대형 무대가 될 전망이다.

"이번 시즌 전속단체 단장 겸 예술감독들에겐 좋은 작품과 더불어 과거보다 공연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 달라 당부했어요. 그럴 수 있는 분위기를 갖출 것이고 지방과 해외 모두 10~15% 공연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요. 남산 이전 50주년 맞아 과거부터 국립극장에 애정이 있으셨던 박범훈 선생을 비롯해 국보적인 존재들을 모셨어요. 세종대왕의 메시지를 담아 나라의 분열을 넘어 화합으로 가자, 이분법을 벗어나자고 노래하는 작품이 처음 빛을 보게 돼요. 아주 기대가 크고 좋은 작품이 될 거예요."

또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은 각국의 무용단체들의 공연들도 이번 시즌에 포함됐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국제현대무용제(MODAFE) 2개 공연예술축제의 일환인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2(NDT 2), 샤요 국립무용극장, 호페쉬 쉑터 컴퍼니의 무용 공연을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봄, 가을철에 남산을 찾는 시민들이 자연스레 국립극장의 콘텐츠에 관심을 갖도록, 광장에서 여는 이벤트와 행사도 대폭 보강할 계획이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박인건 국립극장장이 21일 오후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서 종합 민영 뉴스통신사 뉴스핌 양진영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2023.07.21 leemario@newspim.com

"국제현대무용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함께 공연을 하는 게 아주 운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고무적인 상황이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현대 무용단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 생각합니다. 봄, 가을에 남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은데 한 달에 한번 하던 야외 행사를 매주 토요일마다 개최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다들 뜻을 모아서 공연 자체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관객과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확장성을 갖추려 하죠. 유기농 농산물 마켓인 '아트 인 마르쉐' 외에도 화분, 책, 국악과 어울리는 탈춤 같은 전통적 요소를 갖고 공연과 행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곧 업무협약을 하겠지만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아트마켓을 국립극장 야외에서 할 수 있게 추진할 예정이에요."

특히 3개 전속단체들 가운데서도 국립창극단은 '트로이의 여인들' '리어' '정년이' 등 레퍼토리 창작 공연이 자리를 잡으면서 공연 팬들 사이 널리 사랑받는 단체로 거듭났다. 김준수, 유태평양 같은 스타 소리꾼의 배출도 창극단의 성과다. 박 극장장은 대내외적으로 주목받는 창극단의 더욱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했다.

"앞으로도 발전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창극단의 스타 김준수, 유태평양도 있지만 '팬텀싱어4'에 출연한 김수인의 팬덤이 또 형성됐어요. 앞으로도 제 2, 3의 스타들이 나오면서 뮤지컬에서 스타마케팅이 가능했듯 창극에서도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죠. 재밌는 건 어느 날은 커피차도 들어오는 풍경을 본다는 거예요. 지방에 요청이 있어서 공연 가면 비가 오는데도 세종까지 팬들이 찾아와주세요. 더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점은 관객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우리 소리로 풀어낸 걸 흥미로워한다는 데에 집중해야죠. 우리만의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는 걸 계속하는 동시에, 해외로 가는 건 외국 사람들이 아는 서양 고전이나 그쪽의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게 좋아요. 두 가지의 밸런스를 맞춰 나가야죠."

국립창극단은 이번 시즌 신작 '만신: 페이퍼 샤먼'을 내년 공개한다. 창극단 자체의 역량도 뛰어나지만, 박칼린 감독이 연출을 맡아 새로운 에너지를 더할 계획이다. 문체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 ·공립 극장의 한계를 외부 인사 영입, 외부 단체 협업으로 지렛대 삼아 공연의 퀄리티를 올리고 싶은 극장장의 포부도 있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박인건 국립극장장이 21일 오후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서 종합 민영 뉴스통신사 뉴스핌 양진영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2023.07.21 leemario@newspim.com

"'만신'에 참여하는 박칼린 감독이 재주도 있고 연출 및 극본에 참여를 하는데 기대가 됩니다. 창극단에 새로운 단장 겸 예술 감독이 공연예술계에서 활동도 많이 했고 인정받으신 분이죠. 유 단장의 리더십을 믿고 창극단 단원들이 상당히 인기에 공연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열심히 해서 틀림없이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신작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귀에 익숙하지도 않고 해외 무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그래도 우리가 세계무대로 나간다면 곧 세계적인 대가의 연출, 디자이너, 무대 스테이지 연출가들과 협업을 할 수도 있어요. 이미 제안도 왔었고요. 스케줄이 안 나와 고민하고 있지만 좋은 분, 단체와 함께 제작비도 분담해서 스터디를 하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어요."

국립무용단 역시 올해 '온춤', 내년 '사자(死者)의 서(書)' 등 새로운 창작 전통무용들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국립무용단에 걸맞는 전통 작품들을 원하는 원로들의 의견도 있지만,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무용을 한다는 것이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이자 색깔이다.

"어른들은 순수한 한국적인 무용에 대한 요구가 있고, 밸런스에 대한 의견도 있죠. 사실 전적으로 예술 감독의 몫이라 제가 말하긴 어려워요. 단장의 권한과 책임이 있는 거죠. 세계적인 현대무용의 흐름도 있는데 그런 추세를 따르기도 해야 하고요. 무용단도 미국 워싱턴, 캐나다 오타와 초청 공연도 하고요. 해외에 알리는 것도 좋지만 국립 단체로서 국내 먼 지역이나 어려운 극장이라도 가는 게 우리 역할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지방이든 해외든 활발히 공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고, 에너지 넘치는 무용단 만들기 위해 단원 충원 문제도 고려 중이에요. 문체부도 설득하고 여기저기 부탁하고 있는 상황이죠."

BTS로 시작된 글로벌 한류 열풍 속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트로이의 여인들'이 초청되는 등 K컬처에 대한 글로벌 관심도 상당하다. 박인건 극장장은 이 같은 관심을 체감한다면서도, "한국 것이니까 보는 게 아니라 재밌어서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BTS 영향도 있겠지만 한국의 무대예술이나 순수예술 위상이 과거보다 정말 높아진 건 사실이죠. 그만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어느 나라는 아무 단체나 와도 한국 열풍 때문에 다 좋아한다고 하면 극장장으로서 기분은 좋아요. 그럼에도 '우리 거라 무조건 봐라' 보다는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도 한국 거라 좋은 게 아니라 재밌고 훌륭한 작품력으로 승부를 봐야죠. 독일과 이태리에선 한국 성악가가 없으면 오페라가 안 올라간다고 해요. 국악은 전통과 재창조를 통해 비틀어 보여주는 예술 공연이죠. '태양의 서커스'가 그런 것처럼 과감한 비틀기와 고민이 있어야 세계적인 작품으로 성장할 수 있겠죠. 창극단 작품 하나에 5-6억 든다고 하면 당장 뮤지컬 쪽에서도 콧방귀도 안 뀔 거예요. 상업적일 땐 철저하게 투자가 이루어지는데, 그게 잘 안된다면 외부 단체와 협업을 통해 지렛대로 이용하는 방법을 구상 중입니다. 어떤 협업 제안도 검토할 수 있죠."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박인건 국립극장장이 21일 오후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서 종합 민영 뉴스통신사 뉴스핌 양진영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2023.07.21 leemario@newspim.com

국립극장에서는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 국립무용단의 '안무가 프로젝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 프로젝트' 등 예술가 창작 고취 프로그램을 다수 마련했다. 더불어 곧 국립극장이 인수받아 운영하게 될 파주 무대예술지원센터에서는 무대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새로운 역할을 도맡게 될 전망이다.

"여기 와서 놀란 게 보이지 않고, 생색도 못내면서 죽어라고 하고 있는 게 무대 인력 양성소예요. 무대예술전문인 자격검증 시험을 관리하는데 이번에도 2000명이 넘게 시험을 봐요. 파주에 예술단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대 창고 공간을 300억 넘게 들여서 지었는데 앞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는 거죠. 그곳에서 무대에 있는 인력을 지원하고 양성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무대 세트장에서 일하는 많은 스태프들, 그런 인력을 양성하는데 우리가 공헌을 하고 있지만 좋은 일을 너무 소극적으로 하지 않았나 해요. 파주가 멀긴 하지만 교육이 필요하면 멀리도 오죠. 또 무대 의상들이 거기 있다면 전시도 가능할 거예요. 전문가들, 지망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육, 양성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극장장은 국립극장의 대표 공간 해오름극장의 공연 횟수 증가와 더불어 극장 내부 개방, 광장 이벤트 및 개방 등 관객 친화적 극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실천할 계획이다.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극장이 되는 발걸음과 더불어, 박 극장장의 개인적인 바람도 있다. 바로 '교향악축제'의 뒤를 잇는 그의 대표 축제를 국립극장에 꽃피우는 일이다.

"공연장의 업종은 서비스업이에요. 일단 극장에 왔을 때 편의시설, 서비스가 좋아서 다시 오고 싶다면 접근성이 좋아지는 거예요. 9월에 오픈할 해오름극장 2층 북 카페에 시민들이 와서 쾌적한 공간을 즐기고 예술가들에게도 땡큐 카드나 꽃 한 송이라도 하나 건네서 기억에 남는 극장 경험을 줄 수 있도록 해야죠. 임기 3년간 국립극장 조금 좋아졌다고 하고 수치로 보여줄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겁니다. 물론 예술은 수치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 퀄리티는 당연히 필요하겠죠. 욕심이 더 있다면 교향악축제가 자리 잡은 것처럼 여기서도 전통과 현대성이 어우러져 사랑받는 페스티벌 하나 만든다면 참 좋겠어요. 다만 혼자 힘들면 다른 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내년 레퍼토리는 다 나왔으니 내후년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경희대학교 기악과(바이올린), 동 대학원 음악교육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부장으로 재직, '교향악축제' 등 공연 기획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경기아트센터 사장, KBS교향악단 사장,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이사 등 예술경영에 30년 이상을 몸 담아왔으며 올 3월 국립극장 극장장을 맡았다. 

jyy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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