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복 확대 MSC·종합물류 머스크 결별로 경쟁 심화
화주중심 미국, 과도한 담합 철퇴…침체 확대 우려
해수부, 국토부 종합물류 견제 지적도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해운시황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 해상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3년여 만에 1000선이 붕괴되며 연일 급락하고 있다. 발주돼 있는 선박이 올 하반기부터 선사에 인도되면 선복(선박 적재 용량)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어서 해운업황 침체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세계 최대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인 2M의 2025년 해체 선언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HMM이 선복을 크게 늘리는 MSC 방식이 아니라 머스크처럼 사업 다각화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정체된 HMM 매각에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분기 실적 코로나 이후 첫 감소…해운동맹 재편·미국 선사규제 강화 '불확실성'
14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연결 기준 작년 4분기 HMM 영업이익은 1조2588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6985억원) 대비 53%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9조9455억원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빛을 바랬다.
분기 기준으로 보면 코로나 이후 2년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장기 침체 끝에 2020년 2분기 흑자전환한 이후 10개 분기 연속 성장하던 영업이익이 11개 분기 만에 처음 꺾였다.
해운운임이 급락하면서 2년 넘게 이어지던 HMM의 성장세가 멈춘 것이다. 국제 해상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SCFI는 작년 1월 평균 5067에서 작년 12월 평균 1129로 1년새 5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들어서도 연일 하락세를 이어가며 지난 10일 기준 995.16을 기록하며 2020년 6월 19일(988.82) 이후 약 2년 8개월 만에 1000선이 무너졌다. SCFI 1000은 해운업계에서 통상 손익분기점(BEP)로 판단돼 여기에 못미치면 적자 우려가 커진다.
문제는 운임 추가 하락 요인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우선 글로벌 해운업계의 과잉경쟁이 재현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 세계 해운시장의 40%를 점유한 해운동맹 2M이 최근 해체를 선언하며 해운동맹 재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글로벌 1, 2위 선사이자 2M을 결성한 MSC, 머스크의 사업 확장 방식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예견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세계 1위로 뛰어오른 MSC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프랑스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MSC 선복은 이미 466만8226TEU(6m 컨테이너 1개)를 기록하고 있고 발주잔량은 181만12TEU에 달한다. 선복을 늘리는 방식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머스크의 선복을 추월한 뒤 격차를 계속 벌리고 있다. 반면 머스크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종합물류에 뛰어들었다.
머스크가 다른 동맹에 가입하면 글로벌 해운동맹은 3개에서 4개로 재편된다.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는 가운데 운임 경쟁이 가속화할 수 있다.
2M 해체는 미국의 해운법 개정과도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선사 규제를 강화한 '오스라(OSRA) 2022' 법안은 장기고정계약(SC) 위반, 컨테이너터미널 반출 지연에 따른 체화료(선박회사가 양하지의 터미널에서 무료 장치기간 내에 컨테이너화물을 인도해 가지 않은 수화인에게 부과하는 추가비용) 부과의 적절성 여부 등을 따지고 있다. 스팟(단기) 운임이 고공행진 하는 기간 동안 SC 물량을 받지 않고 스팟 물량으로 선복을 채우는 방식으로 선사들이 화주들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지적이다.
체화료의 경우 컨테이너 반출 지연이 불가피했다는 판단이다. 코로나 여파로 미국 서안을 중심으로 노조 파업, 육상운송 공급부족 등이 겹친 상황을 선사들이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해운동맹의 과도한 담합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HMM 컨테이너선 [사진=HMM] |
◆ 산업재편 속 채권단 관리, 운신폭 제한…해수부-국토부 HMM 놓고 '기싸움' 지적도
미국의 선사 규제 강화는 자국 기업이 대부분 화주인 것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선사는 미국회사가 없기 때문에 높은 해운운임 등으로 수출을 못하고 있는 자국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을 무한정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는게 미국 판단이다. 경쟁법이 태동한 미국에서 화주 이익을 침해하는 공동행위에 대해 앞으로도 강력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글로벌 경쟁이 다시 심화하고 있지만 HMM은 아직 채권단 관리에 묶여 있다. 해운산업 재편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미래전략 수립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HMM은 작년 7월 중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2026년까지 15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벌크 비중을 늘리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미래전략사업에 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구상도 거의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HMM이 종합물류에 소극적인 이유로 해양수산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HMM이 물류사업을 확장하면 국토교통부 등 다른 부처의 관리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해수부가 독자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최근 HMM 매각 컨설팅 자문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민영화에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겸임교수는 "해운업황 침체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HMM은 머스크 방식의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며 "운임이 이미 떨어진 상황에서 매각 적기를 놓쳤지만 합병 시너지 등을 고려할 때 국내 주요 종합물류기업이 속한 LX그룹 등에 매각되면 윈윈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unsa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