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안전문제서 벗어나 새로운 단지로 재탄생"
교육청, 교육환경영향평가 통과로 사업 추진 탈력 받아
3930가구서 6827가구 대단지 '탈바꿈' 계획
이달 서울시 도계위 수권 소위서 '정비계획안' 논의
[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박원순 전 시장과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수십년째 멈췄던 재건축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소식에 입주민들이 너무 기뻐하고 있어요. 이번 달에 서울시가 정비구역 계획안을 통과시켜 줄 경우 새로운 단지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입주민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어요."(잠실주공 5단지 입주민 박은경(59))
"주변 단지들보다 재건축 사업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수십째 답보상태였어요. 지난해 서울시가 재건축 사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등을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었어요. 정부와 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심정비사업과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어요."(잠실주공 5단지 입주민 최혁(75))
"2003년부터 현재까지 총 19년간 사업 추진에 노려했던 조합과 구성원들에 노고가 이제야 빛을 보고 있어요. 간절하게 원했던 사업안 통과가 눈앞에 있다는 게 너무 기뻐요. 44년간 잘 버티고 있지만 철근이 외부로 노출돼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진 와중에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접해서 다행이에요"(잠실주공 5단지 입주민 박준철(57))
서울 도심 지역 중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도 재건축 알짜 단지로 불리는 잠심주공5단지는 아침에 눈 내리는 풍경처럼 단지에선 주민들의 설레임이 드러나는 듯했다. 어른들은 출근을 서두르고 있고, 아이들은 통학 버스를 기다리면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서울=뉴스핌]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전경. [사진=유명환 기자] |
◆ "외벽 페인트칠 벗겨지고 철근 튀어나와"
20일 오전 찾은 잠실주공5단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바쁘게 오가는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단지 입구에선 한 노파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눈이 이렇게나 많이 내리면 건물 안으로 물이 스며들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걱정어른 눈으로 단지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20년 전 이 단지에서 터를 잡은 김은숙(64)씨는 "교단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 인근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이곳으로 이주했다"며 "입주 당시에는 주변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단지로 당시만 해도 집을 내놓겠다는 사람보다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기억을 되새겼다.
이어 "지금은 외벽 페인트가 떨어지고 철근 등이 외부로 노출됐다"며 "주민들이 안전상의 문제를 시와 구청에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그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사업승인을 해줄 수 없다는 언론적인 말 뿐이었다"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이 단지는 1978년 준공된 3930가구, 30동의 대단지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주변 연탄아파트들과 달리 시범단지로 지정돼 고층으로 지어졌다. 현재 전용면적 112㎡~119㎡로 구성돼 있다.
입주민 최경환(68)씨는 "시대는 변화하고 있는 데 이 단지만 시간이 멈춘 것 같다"며 "젊은 신혼부부와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건축물 안전에 대해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이어 "복도식 단지이다 보니 외벽 페인트를 칠하려고 해도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보수 작업을 진행하기도 힘들다"며 "어른들은 좀 참으면 되지만 아이들의 경우 건강과 직결된 사안이라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뉴스핌]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내부 모습.[사진=유명환 기자] |
◆ "컨소시엄 꾸려졌지만..." 허가 구역 지정 지연에 해산
1997년부터 재건축 논의가 시작된 잠실주공5단지는 삼성물산과 GS건설, 현대산업개발이 컨소시엄을 이뤄진 시공사를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사업 허가가 나지 않으면서 컨소시엄은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올 해로 44년째를 맞이한 단지는 재건축 연한(30년)을 훌쩍 넘어섰다. 준공 연도가 짧은 잠실주공1~4단지는 재건축이 완료됐지만, 5단지는 2003년 추진위원회구성 이후 사업의 속도가 붙지 않았다.
이는 교육환경영향평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 단지는 지난 2017년 9월 결정된 정비계획 가이드라인에 따라 2018년부터 교육환경영향평가에 도전해 왔지만 3년 넘게 지연됐다.
단지 내 신천초등학교 부지 이전 및 기부채납을 놓고 교육청은 학교 규모를 현재 약 1만 4400㎡에서 1만 6000㎡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간 서울시는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로 교육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심의에서는 교육청 요구대로 학교 부지를 확대하기로 하면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사업이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였지만,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사업이 잠정 중단됐다.
입주민 정(48) 모씨는 "추진위 설립 이후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사업이 교육환경영향평가로 막혀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난해 교육청이 요구하는 학교 부지 확대를 받아들인 이후 사업의 속도가 붙고 있다"며 "조합과 입주민들의 양보와 절실함이 반영되면서 서울시가 재건축사업에 토대가 되는 안건을 상장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달 장비계획안 상정…"서울 전 지역 재건축 신호탄"
서울시는 이달 중 정비계획안을 결정하기 위한 도시계획위원회 수권 소위 심의를 열고 해당 안건을 통과시킬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서수권소위는 도계위에서 권한을 위임받아 정비계획안을 검토·결정하는 기구다.
그동안 서울시가 안건 상정 자체를 보류시키는 방식으로 사실상 사업을 진행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서울시가 안건 상정을 요청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시는 앞서 잠실주공5단지의 재건축 정상화 방침을 밝힌 상황이어서 이번 심의에서 정비계획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구체적인 심의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르면 이달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정비계획안이 통과되면 잠실주공5단지는 '오세훈표 재건축 정상화 1호' 사업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합은 재건축 사업을 통해 6827가구 대단지로 탈바꿈할 계획을 잡고 있다.
정비업계는 서울 재건축 사업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대규모 단지들이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업 허가가 나오지 않아서 지지부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잠실주공5단지의 정비계획안 통과를 시작으로 전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ymh753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