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율 기자 = 탈진보까지 아울러 압도적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권 행보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지내던 이동훈 대변인이 선임된지 불과 열흘 만에 사퇴하고, 이른바 '윤석열 X파일' 의혹이 여권도 아닌 야권에서 폭로되면서 각종 공방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X파일에는 윤 전 총장의 처가 의혹 등 약점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진위 여부와 파일의 실체는 확인 되지 않았다. 유력 대선 주자에게 따라붙는 의혹 제기와 정치 공작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많다. 진짜 난항은 윤 전 총장의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 있다.
총장직 사퇴 이후 수개월 째 '전언정치'를 이어온 윤 전 총장은 여의도를 뒤집은 자신의 의혹 앞에서까지 대변인의 입을 빌렸다. 그마저도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검사 시절 보여줬던 거침 없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대변인과 메시지를 놓고 혼선을 보인 건 그의 리더십마저 의심케 했다. 이 대변인은 지난 18일 라디오 방송에서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을 기정사실화했으나 윤 전 총장은 곧바로 "입당 문제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결론낼 것"이라는 상반된 메시지를 내놨다.
자신이 임명한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했던 말을 불과 1시간 30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열흘 만에 대변인을 내치는 인선 실력이라는 비판(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과 함께 내부 소통능력에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 대변인이 윤 전 총장의 의중보다 과하게 메시지를 전달했을 수 있다. 정치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첫 단추를 꿰는 거취 문제에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윤 전 총장이 자기가 할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윤 전 총장의 공보방에 메시지가 올라올 때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임금님 교지가 도착했다"는 조롱 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오곤 한다. '윤석열 총장 워딩'이라는 형식의 일방적인 '말씀' 전달이 흡사 조선시대 "임금의 교지를 받들라"는 권위적인 태도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윤 전 총장이 절대적으로 입을 닫고 있는 건 또 아니다. 특정 기자와의 전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직접 한다. 같은 질문을 던지는 현장 기자들은 뒤로 하고 특정 언론을 취사선택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정보는 내가 준다"는 검찰식 마인드 그대로다.
김성회 대변인은 "검찰은 2000명의 한정된 취재원이 계속 승진해 가는 구조고 취재원이 검사 하나밖에 없으니 그들이 갑질을 할 수 있는데 여의도는 아니다 싶으면 버리고 다른 사람 기사 쓰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한 기자들이랑 술 한잔하면서 슬쩍슬쩍 흘려준 기사로 재미 보시던 윤석열씨, 어떻습니까. 여의도 들어오시는 소감이"라며 윤 전 총장의 일방적인 소통방식을 꼬집었다.
'간석열', '윤차차(행보를 물어보니 차차 알게될 것이라고 답한 데서 얻어진 별명)'로 희화화되고 있는 윤 전 총장이 진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직접 본인의 목소리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여야 대선 주자 중에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고 남에게 전하라고 시키는 사람이 누가 있냐"며 "정치는 검찰 수사가 아니다. 기밀 유지를 해야 하는 수사와 달리 정치는 자신의 비전과 계획을 분명하게 말하고 검증받아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이 9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자신의 생각조차 자기 입으로 밝히지 못하고 국민의 질문을 피하는 '차차 대선주자'라니 국민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은 '30대·0선'으로 여의도 정가에 돌풍을 일으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소통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대표 취임 전부터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데 능했던 이 대표는 취임 후에도 국민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정치를 생활 속으로 끌어왔다"는 긍정 평가를 받고 있다. 굳이 언론을 통하지 않더라도 윤 전 총장이 국민에 직접 메시지를 전달할 창구는 널렸단 얘기다.
윤 전 총장 측은 이르면 오는 27일 정치 선언을 한 뒤 민심 투어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이 생각하는 민심 투어에 대해 "영향력 있는 분들 만나 다양한 목소리 듣겠다. 시장 다니며 오뎅 먹는 것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윤 전 총장이 말하는 '큰 정치'가 비단 시장에 다니며 오뎅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윤 전 총장이 '큰 정치'를 위한 장고를 거듭하는 사이 국민은 그를 둘러싼 측근발 메시지로 상당한 피로감에 쌓여있다.
야권의 대안 카드로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윤 전 총장은 본인이 내세운 시대정신 '공정'을 논하기 위해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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