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發 경기 우려 있지만 '신중한' 대응 불가피
[서울=뉴스핌] 문형민 선임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참 곤혹스럽다. 당장 내일(27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회의가 열리나 시장이 기대하는대로 인하하기도, 현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좀 더 엄밀하게 얘기하면 기준금리를 내려야하는 상황이라는 데 공감대가 있지만 내릴 수 없는 이유에 발목을 잡혔다.
기준금리를 내려야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알듯이 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모임, 이동을 제한해야하니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까지도 차질을 빚고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부품이 들어오지 않으니 공장을 멈춰야하는 것. 소비자들과 기업인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동향지수(CSI)와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가장 먼저 급락했다. 심리지표에 이어 줄줄이 나오는 여러 경제지표들이 이런 우울한 흐름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앞서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창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4월29일 국내 첫 사스 추정환자가 발생하자 5월13일에 한은은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4.25%에서 4.00%로 내렸다. 5월20일 메르스 첫 확진환자가 나오자 6월11일에 1.50%에서 1.25%로 낮췄다. 두 차례 모두 경제에 끼친 악영향이 지표로 확인되기 전에 한은은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부정적 영향을 완화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렇지만 2020년2월에 이르러서는 이 때와 같은 과감한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은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몇 장 남지 않았다. 현재의 기준금리 1.25%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한 번에 25bp씩 내린다면 0%까지 5장의 카드가 있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마이너스 또는 0%까지 금리를 낮출 수는 없다. 자본 유출을 감안해 이른바 '실효 하한'을 생각해야한다. 대략 0.75%나 1.00%가 낮출 수 있는 기준금리의 마지노선이다. 결국 한은이 가진 카드는 한두장, 인심 써서 석장 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금리야 경기가 좋아지고, 물가가 올라가면 올릴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냉정히 한국 경제 상황을 살펴보면 금리를 높여 잡아야할만큼 물가가 오르지도 않고, 경기가 과열되지도 않는다. 인구구조를 비롯해 주력산업과 소비패턴 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은 이를 '수축사회'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기준금리 인하라는 통화정책은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한은이 주저하는 이유다. 일각에선 통화정책 효과가 있느냐고까지 얘기한다. 금리가 높고 돈이 없어서 투자할 자금을 빌리지 못하는 때는 아니다. 가뜩이나 카드가 몇 장 남지 않았는데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정책을 선제적으로 쓰긴 어렵다.
오히려 넘치는 유동성, 초저금리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해야한다. 이런 걱정 중 하나가 부동산 가격이다. 수많은 규제 정책으로 묶어놓은 부동산 가격을 금리 인하로 다시 들썩이게 할 이유가 한은에게는 없다. 아마도 27일 금통위 후 이주열 총재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악화를 막기 위해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며 본인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거다.
hyung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