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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콜로라도 트래버스 이어 트레일블레이저로 경영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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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산 신차 출시로 전월 대비 회복세 접어들어
"출시 앞둔 '트레일블레이저', 내수 수출 같이 책임질 것"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콜로라도, 트래버스에 이어 트레일블레이저를 한국지엠이 구원투수로 내세운다.  

콜로라도, 트래버스는 하반기부터 수입되며 '최악의 부진'에 빠진 한국지엠의 숨통을 틔워줬다. 한국지엠은 내년 1분기 중  국내에서 개발, 생산하는 SUV '트레일블레이저'를 출시해 경영 정상화를 앞당기겠다는 계획이다.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북미모델 [사진 = 쉐보레] 2019.11.21 oneway@newspim.com

20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신차 부재와 판매 부진, 노사분규까지 겹쳐 올해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지엠의 내수 판매는 올들어 11월까지 6만7651대로 지난해 8만2000대 보다 18.4% 줄었다. 이는 수입차 벤츠의 판매량 6만9000대 보다도 적다. 

노사 갈등도 계속됐다. 지난 지난 7월부터 열차례가 넘는 교섭을 진행했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 기간 노조는 몇 차례의 부분파업을 벌였다. 이후 노조가 최종 결렬을 선언하고 더이상의 파업과 협상을 하지 않겠다며 협상을 차기 집행부로 넘겼다.

한국지엠의 올해 부진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신차 출시가 없으면 판매가 줄고 생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노사가 합의를 해 생산량을 늘리고 신차 투자 여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하반기에 투입된 수입산 신차 '콜로라도'와 '트래버스'가 그나마 한국지엠의 실적을 올려줬다. 

콜로라도와 트래버스가 본격적으로 판매 집계에 포함된 11월 판매대수는 7323대로 지난달 대비 56.5%나 증가했다. 콜로라도의 판매량이 늘고 있어 내년까지도 기대를 걸어볼 수 있게 됐다.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쉐보레 트래버스 1호차 전달식 [사진 = 한국지엠] 2019.11.15 oneway@newspim.com

신차 출시로 막바지 힘을 내고 있는 한국지엠은 내년 경영 정상화에도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우선 SUV '트레일블레이저'가 내년 1분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담해 내년 부평공장에서 생산 및 판매가 계획돼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한국지엠이 경영 정상화 방침을 수립한 후 처음 국내 출시 및 생산에 돌입하는 모델이라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트레일블레이저가 출시되면 한국지엠은 트랙스-트레일블레이저-이쿼녹스-트래버스에 이르는 SUV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SUV 수요가 높은 국내 뿐만 아니라 수출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돼 경영 정상화를 이끌 핵심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현재 국내 소비자뿐만 아니라 북미를 중심으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또 창원공장에서 생산될 'CUV' 신차도 오는 2022년 출시를 목표로 준비중에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지금까지 군산공장 정리 등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왔음에도 이제는 내부 정리가 이뤄졌다"면서 "부평공장에서 생산을 앞둔 트레일블레이저를 기점으로 정상화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트레일블레이저와 2022년 창원에서 생산될 CUV 등 회생 계획을 순차적으로 이뤄나가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긍정적인 신호라면서도 노사 갈등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차 출시로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것과 더불어서 안정적인 생산이 중요한 요소"라면서 "지난 1년간 부분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사태가 내년에도 재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onew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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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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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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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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