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사회 사건·사고

속보

더보기

[판문점선언 1년] ⑩ '北 포격의 상처' 연평도...평화의 상징 변신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인청항에서 2시간 거리, 대한민국 최북단 연평도
1·2차 연평해전·연평도 포격 등 아픔 서린 곳
최초의 '민간인 폭격'...주민들에겐 여전히 아픈 기억
주민들,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평화 분위기 속 안전한 연평도 염원

[편집자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들었던 지난해 1차 남북정상회담을 기억하시나요.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 정상이 첫 발걸음을 뗐던 순간이었습니다. 남북 정상은 회담의 결과물인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그간의 전쟁위험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한반도 평화의 봄’을 위한 여정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뉴스핌>은 4.27 판문점선언 채택 1주년을 맞아 1년 동안의 성과와 또 아직 남아있는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지난 25일 오전 9시. 대한민국 최북단 연평도를 향한 배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출항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안개가 낀 궂은 날씨임에도 다행히 배는 망망대해를 향해 순항했다.

“배가 못 뜰까 많이들 걱정하는데, 풍랑주의보나 안개주의보만 없으면 괜찮아요. 비가 와도 문제없어요.”

승객들의 탑승을 도와주던 베테랑 승무원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날은 안개가 끼긴 했지만 바람이 강하지 않은 날씨였다.

[서울=뉴스핌] 안재용 기자 = 25일 오후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에 도착한 여객선. 2019.04.25

배는 곧 길게 펼쳐진 인천대교를 가로질렀다. 희뿌연 안개 탓에 주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흰 구름이 배를 감싸 안은 듯한 착각도 들었다.

그렇게 1시간 50분이 지난 오전 10시 50분쯤 소연평도를 거쳐 11시 10분쯤 목적지인 대연평도에 도달했다. 인천항을 떠난 지 2시간 10여분 만이다.

◆ 남북 분단의 아픔이 담긴 연평도

북한 영토와 불과 3km 떨어진 연평도는 남과 북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이곳 해역에서는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 1·2차 연평해전이 일어났다. 2차 연평해전에서는 정장인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상사 및 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이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서울=뉴스핌] 안재용 기자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평화공원에 조성된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동판. 2019.04.25

지금으로부터 불과 9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에는 북한군이 민가와 군부대를 향해 170여발의 해안포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했다. 빗발치는 북한군의 포탄 속에서도 연평도를 사수하던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연평도 곳곳에는 조국을 위해 순국한 이들의 흔적이 깃들어있다. 대표적인 곳이 연평도 남단에 위치한 평화공원이다.

이날 오후 찾은 평화공원 입구에는 실제 우리 군에서 사용했던 전차와 헬리콥터 등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았다. 안쪽으로 가면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전사자들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과 서정우 하사·문광욱 일병의 전사자위령탑이 방문객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궂은 날씨에 이곳을 찾는 발길은 뜸했지만, 이들은 언제나 이 자리에서 이렇듯 연평도와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었다.

◆ 아직도 생생한 그 날의 악몽 ‘연평도 포격’

연평도 포격사건은 1953년 휴전협정 이래 북한군이 대한민국 영토에 타격을 가해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이다.

9년여가 흐른 지금, 피해를 입은 연평도 마을은 대부분 복구 돼 당시 참혹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연평면사무소 근처에 조성된 안보교육장은 예외였다. 이곳은 당시 북한의 포격을 받은 민가를 그대로 보존해 지난 2012년 만들어졌다.

[서울=뉴스핌] 안재용 기자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위치한 안보체험관. 2010년 11월 북한의 포격으로 훼손된 민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2019.04.25

종잇장처럼 찢어진 지붕, 무너져 내린 벽, 벽 곳곳에 남아 있는 포탄 파편의 흔적 등 형체도 알 수 없이 부서진 가옥의 모습에서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살던 집과 터전은 시간이 지나며 복구됐지만, 연평도 주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엊그제 일을 회상하듯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3대째 연평도에 살며 아내와 함께 피자집을 운영하던 정창권(66)씨는 그날 육지에서 찾아온 지인들을 만나러 부둣가에 나와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울리더니 마을 이곳저곳에 포탄이 떨어지고 불타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군에서 포격 훈련을 한다는 안내가 있었던 탓에 정씨는 그때까지도 우리 군의 오발탄이겠거니 생각했단다.

“우리 집 쪽에도 연기가 치솟아 급히 집으로 돌아와보니 아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밖에 서 있었어요. 방으로 들어가 보니 포탄이 저희 침실로 떨어져 있었어요. 아내가 거실에 있었기에 다행이지, 만약 침실에 있었으면...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아내는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2년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1985년 연평도로 시집 온 김모(55)씨는 그날 집 마당에서 겨울나기를 위한 김장이 한창이었다. 그러던 중 노란 배추 위로 검은색 파편이 튀었다. 만져보니 단단한 쇳조각이었다. 이내 북쪽으로부터 날아오는 포탄이 눈에 보였다. 위기를 직감한 김씨는 정신없이 대피소로 향했다.

“너무 무서워 주민들이 다 귀를 막고 대피소에 웅크려 있었어요.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벽에 붙어있어야 안전하다고 소리를 치더군요. 그 소리를 듣고 주민들이 모두 벽에 붙어있었어요. 포격 소리가 잠잠해지고 대피소 문을 잠시 열었는데 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심해 다시 문을 닫았던 기억이 나요.”

[서울=뉴스핌] 안재용 기자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평화공원에 세워진 연평도 포격 전사자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전사자위령탑. 2019.04.25

◆ 한반도의 ‘화약고’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지난해 4월 27일 남북 정상은 판문점에서 만나 ‘판문점선언’을 채택하고 함께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 2조 1항에서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이 내용은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채택된 평양공동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거쳐 구체화됐다. 

양 측 군대는 11월 1일 0시를 기해 서로를 겨누던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ㆍ포신에 덮개를 설치하고, 포문을 폐쇄했다.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던 연평도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서울=뉴스핌] 안재용 기자 =25일 오후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망향전망대에 설치된 쌍안경. 2019.04.25

북한의 도발에 항상 마음 졸이던 연평도 주민들도 한시름을 놓았다. 이들의 꿈은 소박하다. 자신의 삶의 터전인 연평도에서 지금처럼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20년째 연평도에서 꽃게를 잡고 있다는 어업인 신성희(61)씨는 “사람들에게 연평도에 산다고 하면 다들 거기 위험한 곳 아니냐, 다른 곳에서 살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그럴 때면 항상 마음이 아프죠”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신씨는 “연평도는 내가 살아온 곳이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에요. 부디 남과 북이 싸우지 말고 우리 꽃게 잡는 어업인들, 연평도 주민들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했다.

6·25 전쟁으로 고향인 황해도를 떠나 연평도에 정착한 실향민 조선옥(87)씨의 소원은 남북이 통일돼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는 것이다.

조씨는 “고향이 그리울 때면 망향전망대에 가서 고향 땅을 보고 와요. 남북이 통일되면 연평도에서 출발해 고향을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iamkym@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김영범, 이제 판잔러 잡으러 간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수영에 또 하나의 '수영 대박'이 아닐까. 불과 1년 전 세계선수권 탈의실에서 중국 수영의 상징 판잔러에게 키링을 받고 기뻐하던 소년이 이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거리 샛별' 김영범(20·강원특별자치도청)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김영범은 21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에서 21초66의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이로써 전날 자유형 100m에서 판잔러와 접전 끝에 0.04초 차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렀던 한을 풀고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이번 금메달은 이번 대회 대한민국 경영 대표팀이 획득한 첫 금메달이기도 하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예선부터 기세가 매섭틀렸다. 김영범은 이날 오전 열린 예선에서 21초71을 기록해 3년 전 항저우 대회에서 지유찬(대구광역시청)이 세웠던 종전 대회 기록(21초72)을 0.01초 앞당겼다. 이어 불과 몇 시간 뒤 펼쳐진 결선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0.05초 줄이며 정점에 올랐다. 2006년생으로 한국 남자 계영 대표팀의 막내인 김영범은 전날 자유형 100m 결선에서 반환점을 1위(22초81)로 돌며 세계 정상급 스타 판잔러를 위협했다. 비록 막판 추격을 허용해 47초65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으나 세계적인 강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루 만에 아쉬움을 털어낸 그는 50m 결선에서 누구에게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김영범의 가파른 성장은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대담한 승부욕에서 비롯된다. 195㎝, 체중 90㎏에 발 크기 300㎜, 윙스팬 216㎝에 달하는 축복받은 피지컬은 폭발적인 스피드가 요구되는 단거리 종목에서 강력한 무기다. 큰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을 장착한 그는 '단거리 박태환'의 탄생을 알리며 한국 수영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1 17:49
사진
앤서니 홉킨스 음반 영국차트 1위 [서울=뉴스핌] 김용석 선임기자 = "제 삶 전체가 하나의 꿈입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로 널리 알려진 배우 앤서니 홉킨스(88)가 작곡가로 낸 첫 데카 클래식스 음반 'Life Is A Dream'으로 발매 1주 만에 영국 오피셜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라이프 이즈 어 드림' 녹음 현장의 앤서니 홉킨스. [사진= 유니버설뮤직] 홉킨스는 "평생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명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비르투오소 솔리스트인 첼리스트 그레고리오 니에토 및 클래식 피아니스트 세르히오 티엠포와 협업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었다"고 밝혔다. 음반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런던 알렉산드라 팰리스에서 녹음됐다. 그래미상 수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바흐 합창단과 윈체스터 대성당 소년 합창단도 참여했다. 홉킨스의 자작곡 12곡이 실렸으며 연주 시간은 1시간 7분이다. 앨범 제목에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담겼다. 홉킨스는 "이 앨범의 제목은 Life Is A Dream으로, 삶에 바치는 러브레터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긴 작별로 본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와 작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록곡은 웨일스와 가족의 기억에서 나왔다. '마르감'은 그가 태어난 포트탈봇의 지명에서 따왔고, '나의 조국'은 제빵사였던 아버지와 웨일스에 대한 헌사다. '스텔라 아리아'는 아내를, '타라'는 조카를 위한 곡이다. 홉킨스는 어린 시절과 부모, 웨일스에 대한 기억이 작품에 영감을 줬다며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고 말했다. 2012년 앨범 '컴포저'에 실렸던 '마르감', '1947 모음곡', '앤드 더 왈츠 고즈 온'도 이번에 새로 녹음돼 다시 수록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홉킨스는 "모든 것이 예상치 못했지만 하나로 모였다"고 했다. 바턴은 2006년 영화 '슬립스트림' 음악 작업 이후 홉킨스와 협업해 왔고, 이번 음반에서도 여러 곡의 관현악 편곡을 함께 맡았다. 홉킨스는 두다멜에 대해 "우아하고 정밀한 지휘봉으로 각각의 음에 깊고 지워지지 않는 의미를 부여했다"라며 감사를 전했다. 음반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금관 중심의 팡파르에서 우아한 왈츠까지 폭넓다고 평하며 홉킨스의 화성 감각을 높이 샀다. 로라 몽크스 데카 사장은 차트 1위 소식에 "작곡가로서의 재능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은 일"이라며 축하했다. 홉킨스는 베네수엘라 국민 지원을 위해 CD와 바이닐 판매액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다. 창작 과정에 대해 홉킨스는 "제 마음의 구조는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이것이 제 영감의 근원이다"고 말했다. 다음 계획으로는 "요즘 즉흥적으로 새 곡들을 만들고 있고, 그 곡들을 이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 영화음악을 작곡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앤서니 홉킨스의 앨범 'Life is a dream(라이프 이즈 어 드림)' 커버. [사진=유니버설 뮤직] 홉킨스는 1937년 12월 31일 웨일스 포트탈봇 마르감에서 제빵사 리처드 아서 홉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립웨일스음악연극대학을 1957년 졸업하고 왕립연극학교에서 연기를 배웠으며, 1965년 로런스 올리비에의 초청으로 영국 국립극단에 합류했다. 1987년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았고 1993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992년 제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들의 침묵'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21년 제93회 시상식에서는 '더 파더'로 같은 상을 다시 받아 83세의 나이로 이 부문 역대 최고령 수상자가 됐다. 영국 아카데미(BAFTA) 4회, 에미상 2회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작곡가로서의 이력도 길다. 1964년 쓴 왈츠 '앤드 더 왈츠 고즈 온'은 2011년 네덜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가 앨범으로 내놨고, 이 앨범은 2012년 클래식 브릿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홉킨스는 2008년 바턴과 공동 작곡한 '마스크 오브 타임'과 '스키조이드 살사'가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초연됐다. 2012년 1월에는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 마이클 실 지휘로 클래식FM과 함께 첫 작곡 음반 '컴포저'를 냈다. fineview@newspim.com 2026-09-22 00:01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