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 해외에서 만난 우리 역사 이야기 ② 도쿄
[편집자주] 일본은 지난해만 해도 우리나라 여행객이 714만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여행지다. 하지만 관광객이 서로 오가는 것에 비하면 독도,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소녀상 등의 문제로 역사적인 한·일 양국관계는 갈 길이 멀다.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서비스 등으로 일본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한국여행객이라면 일본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광복절을 기념해 뉴스핌과 서경덕 교수가 함께 한국인여행객이 꼭 들러야 할 해외 역사여행지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서울=뉴스핌] 김유정 여행전문기자 = 일본 도쿄는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않는 해외 브랜드를 비롯해 일본 로컬 브랜드의 제품이나 레스토랑, 카페 등이 자리해 한국인여행객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힙한 분위기의 여행지는 물론 100년이 넘는 오래된 가게가 공존해 도쿄만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여행객이 많다. 도쿄의 매력에 빠져 한번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방문하는 여행객이 다수를 차지한다.
도쿄의 상징 도쿄 타워는 여행객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도쿄=뉴스핌] 김유정 여행전문기자 = youz@newspim.com |
하지만 도쿄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수도인 만큼 대한제국 수탈의 중심지기도 했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여전히 도쿄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매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배해 물의를 빚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도 도쿄에 있으며 우리의 광복절인 8월15일에 그곳에서 8.15 패전 기념식을 열기도 한다. 분명 도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매력으로 가득찬 도시임은 부정할 수 없다. 도쿄 여행 중 잠시 짬을 내 독립운동의 현장을 방문해보자.
◆ 영친왕 저택
영친왕 저택 [사진=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 |
현재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호텔은 1980년대부터 2011년까지는 아카사카 프린스라고 불렸다. 2011년 철거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하기까지 일본 경제, 정치 중심에 있던 호텔이다. 이 호텔의 이름에 포함된 ‘프린스’란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을 의미한다고 전해진다. 영친왕은 이토 히로부미가 유학이라는 명목하에 일본으로 강제로 데려갔다. 이 저택은 영친왕이 일본에서 머물던 거처로 일본 궁내성의 키타무라코조, 콘도 요오키치가 서양식으로 설계했다.
영친왕이 머물던 저택은 현재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의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로 탈바꿈했다. 영친왕은 의민태자로 덕혜옹주의 이복 오빠기 때문에 영화 ‘덕혜옹주‘에도 등장하는 건물이다.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는 1930년에 세워진 후 1955년 프린스 호텔 구관으로 개축, 현재는 라 메종 기오이 레스토랑으로 운영된다. 호텔 홈페이지에는 영친왕이 머물렀다는 내용이 전혀 표시되지 않은 것은 물론 영친왕이 머물던 곳을 레스토랑 및 연회장으로 운영한다는 점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 신간회 도쿄지회 창립지
신간회 도쿄지회 창립지 스코트홀 [사진=독립기념관] |
1927년 5월 7일 전진한, 임태호 등은 와세다 대학 스코트홀에서 신간회 도쿄지회를 창립했다. 1929년 당시 회원이 253명에 달하였다. 신간회는 조선 총독 폭압 정치반대투쟁을 비롯해 학살된 동포추도회, 국치일기념 항의투쟁 등을 진행했다. 1928년 8월 29일 국치일에는 도쿄의 신주쿠에서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등과 함께 ‘전민족적 대중투쟁을 통하여 신간회를 확립하자. 조선총독을 타도하자. 조선민족해방 만세’ 등의 전단을 살포, 대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신간회는 도쿄 이외에도 오사카와 교토, 나고야에도 지회를 설치하여 활동했다. 신간회 도쿄지회가 창립된 와세다대학 스코트홀은 1918년 와세다 봉사단의 스코트 부인이 남편을 기념하기 위해 기증한 건물로 웨리스 설계사무소의 설계와 감리로 건축된 곳이다. 도쿄 대공습 때 지붕 일부가 파괴된 것을 수리해서 현재 교회건물 및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지만 우리 측에서 와세다 대학과 협의해 기념비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도 있다.
◆ 이봉창 의사 투탄 의거지 및 순국지
형사자위령탑 [사진=독립기념관] |
도쿄도 치요다구 경시청 앞은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이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한 의거를 일으킨 곳이다. 도쿄 교외에 있는 요요기 연병장에서 지행된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궁으로 들어가는 일본왕 히로히토를 향해 사쿠라다몬 밖의 경시청 청사 앞에서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히로히토를 폭사시키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궁내 대신이 탄 마차 옆에서 폭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 식민통치의 부당성과 한국의 독립을 전 세계에 외친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일본의 권위를 국제적으로 훼손하기에 충분했으며 한국독립운동을 고무시키는데 도움이 됐다.
당시 이봉창의사가 폭탄을 투척했던 곳은 현재 왕궁 사쿠라다몬과 일본 경시청 건물 사이의 6차선 도로로 추정된다. 또 이 사건 때문에 이봉창의사가 순국한 이치가야 형무소의 옛 터는 주택단지로 변했다. 당시 사형장 터로 보이는 요초마치놀이터 내 한구석에는 1964년 일본 변호사연합회에서 세운 '형사자위령탑(刑死者慰靈塔)’이라는 비석만이 남아있다. 이 교도소는 이봉창 의사만이 아니라 김지석, 박 열 의사 등이 수형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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