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지 벌써 10년. 스마트폰을 하느라 새끼손가락이 휘어지고, 거북목 증후군은 물론,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위험한 사람들을 지적하며 '스몸비(smart phone+zombie)'란 단어가 탄생한 지도 오래다. 어느새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졌다. '골렘'은 이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연극 '골렘'은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정식 초청한 영국 극단 1927의 작품으로, 소심한 주인공 '로버트'가 어느날 말하는 점토인형 '골렘'을 갖게 되면서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서양에서 전해져 오는 영혼 없이 움직이는 인형 '골렘' 신화를 바탕으로 디지털기기에 길들여진 현대 사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주인공 로버트는 백업이라는 지루한 일과 왕따 친구들과 모여 만든 록밴드 외에는 별다른 일 없는 단순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자신의 명령만 듣는 '골렘'이라는 점토인형을 갖게 되면서 변화한다. 회사일을 시키다 집안일을 시키고, 더 나아가 연애까지 골렘이 맡는 영역은 더욱 넓어진다. 특히 골렘은 '업데이트'를 통해 진화하고 로버트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이로 인해 로버트는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흐름에 발 맞추지 않으면 뒤쳐지고 말거에요" 골렘의 설득에 의해 로버트는 나이 많은 여자친구를 버렸고, 오랜 친구와 했던 록밴드를 떠났으며, 새로운 신발과 옷으로 바꿨다. 로버트는 승진하고 새로운 2명의 여자친구를 만나고 예전보다 세련되어 졌지만, 사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로버트는 편리함, 트렌드를 좇아 디지털기기의 노예가 되고 있는 현대사회인의 전형이다. 내가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지배당하고 있는 모순을 꼬집는다.
내용만 보면 다소 어두울 것 같지만 극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와 드럼은 자동적으로 몸을 들썩이게 만들고,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애니메이션은 현실을 벗어나 판타지 속에 있는 듯하다. 배우들 역시 훨씬 과장되고 만화적인 움직임으로 그 느낌을 더한다. 애니메이션 자체에도 곳곳에 유머가 숨어있어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기존의 연극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움으로 중무장했다. 라이브 음악과 커다란 스크린에 펼쳐지는 화려한 애니메이션, 거기에 맞춰 익살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들까지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다. 대부분 연극 무대에서 보조의 역할로 스크린이 활용되던 것과 달리, '골렘'에서는 스크린이 절대적인 것도 특징이다.
커다란 스크린 중간에 창문과 문을 만들어 더욱 현실감을 더한 것은 물론, 작은 스크린이 가로로, 세로로, 2개 혹은 4개씩 추가되고 빠지면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무대라는 한계를 벗어나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배우들은 정해진 자리 아래 애니메이션에 맞춰 정교한 연기를 펼친다. 거리를 지나가지만 제자리걸음을 걷는 식으로 말이다.
극단 1927의 공동 창단자이자 애니메이터인 폴 배릿(Paul Barrit)이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애니메이션을 수작업했으며, '골렘' 인형은 직접 클레이로 인형을 만든 뒤 디지털화했다. 그는 작품에 대해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기술을 어떻게 생산, 소비, 통제하는 가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설명했다.진화하는 기술로 인해 지배받는 사회, 디지털기기로 인한 각종 문제제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극단 1927의 '골렘'은 가볍고 유쾌하게, 그리고 색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문제를 상기시킨다. 오는 19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