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마켓

속보

더보기

[뱅커스토리] "이기고 있는 게임도 느슨하게 뛰면 역전"

기사입력 : 2017년10월08일 10:00

최종수정 : 2017년10월10일 08:42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문수경 우리은행 봉천중앙지점 지점장
국내 최초 운동선수 출신 여성 은행지점장
"고객 앞에 떳떳하기 위해 스스로 떳떳해야 한다"

[뉴스핌=허정인 기자]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안경 너머 눈동자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문수경 우리은행 봉천중앙지점 지점장은 한분 한분 모든 고객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지점장이 된 비결을 묻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할 것을.

문수경 우리은행 봉천중앙지점장 <사진=뉴스핌>

◆ 성공한 은행원 되기까지 "고객을 가족 삼아 버텼다"

그는 농구선수였다. 1982년 선수로 상업은행에 입행해 6년 남짓 활동하다가 1989년 행원으로 전업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약 30년 시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은행의 꽃’ 지점장이 됐다. 국내 최초로 운동선수 출신 여성 지점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수 출신’이란 꼬리표가 참 싫었다고 했다. 여자 은행원이 커피 타던 시절, 특히 운동을 하다 창구에 앉은 그를 은근히 ‘봐주는’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 때문에 남들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다.

다른 은행과 거래하던 프로야구 이종범 선수를 우리은행 고객으로 유치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문 지점장은 이 선수의 아버지인 이계화 씨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이 선수의 아버지가 은행을 찾을 때마다 급여 이체뿐 아니라 적금 만기일 등을 기록하고 만기가 돌아온 통장이 있으면 그와 함께 타 은행을 찾는 열정을 보였다. 정성에 감동한 이 선수의 아버지는 문 지점장을 믿고 모든 여수신을 우리은행(당시 한빛은행)으로 옮겼다. 이 같은 성과가 쌓이고 쌓여 전업 3년 만에 '자랑스러운 한빛인 상'을 받았다.

특유의 친절함 덕에 주로 어르신 손님이 많았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문 계장’만 찾았다. 인사 발령을 받고 지점을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낯익은 얼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팡이에 몸을 지탱한 할아버지는 “은행 갔더니 문 계장이 지점 옮겼다고 해서 여기로 왔어”라고 했다.

문 지점장은 “생각나는 고객으로 누구를 감히 꼽겠나. 고객이 있었기 때문에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리더로...후배들과 코트 위를 달린다

그는 지난해 12월 지점장으로 승진하고 나서 꼬박 두 달을 앓았다. 치과에 갔더니 잇몸에 고름이 찼다고 치아를 뽑자고 했다. 부임하고 보니 그의 눈에 할 일이 너무 많이 보였던 것. 지점장보다 선배의 길을 택했다. 해야 할 일을 새로 세팅하고 직접 현장을 돌며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지점장 아래서 직원들은 초고속으로 업무 숙련도를 높일 수 있었다.

소형 아파트와 상가를 끼고 있는 봉천중앙지점의 입지 조건을 고려해 지점 전략도 다시 세웠다. 고객 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한 번 찾은 고객이 두 번, 세 번 찾도록 했다. 전 직원 디테일 영업의 생활화를 통해 고객 맞춤형 상품을 어떤 상황에서도 추천할 수 있도록 훈련했다.

문 지점장의 노력은 매번 결과로 나타난다. 올해 상반기 그룹 12개 지점 가운데 4등을 했다. 그는 “우리 지점 구성원 모두가 고생해서 만든 결과다. 선배이기 때문에 후배를 이끌어 준 것이고, 그렇게 해야 조직과 지점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문수경 우리은행 봉천중앙지점장 <사진=뉴스핌>

◆ "후회 없이 떳떳하게 아웃코트 하는 게 목표"

그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떳떳’이다. 고객 앞에 떳떳하기 위해 스스로 떳떳해야 하고,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하루도 쉼 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단 한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토록 떼고 싶어 했던 운동선수 특유의 기운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앞으로의 목표 역시 간단명료하다. 지점장을 ‘잘’ 마무리하는 것. “현재로서는 떳떳하고 후회 없이 아웃코트 하는 게 목표다. 그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설령 이기고 있는 게임이라도 느슨하게 뛰다 보면 역전되는 게 인생이다. 정신력으로 끝까지 똘똘 뭉쳐야 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의 이색 스토리가 알려졌다. 서울신탁은행 소속 농구선수로 활약하다 행원으로 전업, 금융노동조합연맹 간부를 거쳐 장관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문수경 지점장은 근래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

문 지점장은 또 한 번 손사래를 친다. “선배들이 길을 닦아 놓아 나도 덩달아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은행에서는 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지점장이 되면서 후배들에게 용기를 준 것 같아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뉴스핌 Newspim] 허정인 기자 (jeongin@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광복군, 일본군 무장해제 "항복사실 모르느냐?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의(戰意)가 없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관단총을 모두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도 만일을 위해서 각각 산개하면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몸을 날렸다. 아. 그때 그 바람 냄새, 그 공기의 열기, 아른대는 포플러의 아지랑이, 그리고는 아무것도 순간적이었지만 보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우리 주변엔 돌격 태세에 착검한 일본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워커 구두 밑의 여의도 모래가 발을 구르게 했다. 코끼리 콧대 같은 고무관을 제독총에 연결한 험상궂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일본군이 차차 비행기를 중심으로 원거리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그리던 조국 땅을 밟고 처음 맞은 분위기였다. 동지들은 눈빛을 무섭게 빛내면서 사주경계를 했다. 그러나 아직 기관단총을 거머쥐지는 아니했다. 여의도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조여들어 왔다. 뿐만 아니었다. 타고 온 C46형 수송기로부터 한 50여m 떨어진 곳의 격납고 앞에는 실히 1개 중대나 되는 군인들이 일본도를 뽑아 든 한 장교에게 인솔되어 정렬해 있었다. 그 앞에는 고급장교인 듯한 자들이 한 줄 또 섰고, 장군 몇 명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월 18일 한낮의 그 뜨거운 여의도 열기가 우리를 더욱 긴장시켰다. 격납고 뒤에까지 무장한 군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중형전차의 기관포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광복군.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비행장 아스팔트 위엔 한여름의 복사열이 그 위기의 긴장처럼 이글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기막힌 침묵이 십여 분이나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동도 취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일본군 고급 장교들이 늘어선 쪽으로 한걸음 씩 움직였다. 각자 산개, 조심하라! 누군가가 이렇게 나직하게 말했다. 서해 연안으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 때 누군가가 유서를 쓰던 일이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상기되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우리가 다가서자 의외로 포위망을 풀 듯이 비켜섰다. 우리는 아직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그대로였다. 일본군이 길을 열어주자, 그들도 일본군 육군 중장을 선두로 한 장교단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조선주차군사령관 죠오쯔끼(上月良夫)였다. 쬬오쯔기는 그의 참모장 이하라 소장과 나남 사단장과 참모들을 뒤로 거느렸다. 우리도 좌우로 벌려 섰다. 쬬오쯔기가 「나니시니 이라시따노?(무슨 일로 왔소?)」말문을 열었다. 퍽 야무지게 보였다. 우리는 말 대신 영등포 상공에서 뿌리다 남긴 선전 전단을 내밀어 주었다. 우리의 임무가 일본어와 우리말로 적힌 전단이었다. 거긴 또 우리가 이렇게 들어오게 된 사연도 적혀있었다. 우리는 한 장씩 그 전단을 다른 일본군 장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쬬오쯔끼는 이를 받아 읽고, "일본은 정전만 한 상태이니 일단 돌아갔다가 휴전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재입국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위협했다. 자기네 병사들이 꽤 흥분되어 있으니,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그 신변 보호에 안전책임을 지기가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에 이범석 장군이 "네 놈들의 천황이 이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사실을 모르느냐? 이제부터는 동경의 지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 옥신각신 말이 몇 번 건너 왔다 갔다. 갑자기 쬬오쯔끼는 한 일본군 대령에게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경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 마중을 나와 있던 참이란 말을 하고는 물러가 버렸다" 이범석 장군은 일본군 측에 "조선 총독을 만나 담판 짓겠다'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일본군 무장해제 임무를 띠고 국내로 들어 온 '광복군 국내정진군'은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채 다음 날 8월 19일 14:30분 여의도 기지를 이륙하여 중국으로 돌아갔다. 광복군은 미군정이 시작되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29 08:00
사진
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