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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인물탐구④] '또철수'에서 '강철수'로 바뀐 안철수..."내가 정답이다"

기사입력 : 2017년03월22일 13:32

최종수정 : 2017년03월22일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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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양보, 한 번의 굳은 결심…연일 '자강론' 강조
"이번 대선은 안철수 대 문재인, 자신 있다" 의지·단호함 ↑
초선의원 중심 실무형 캠프…자문그룹 '매머드'급

[뉴스핌=장봄이 기자]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 초심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욱더 간절해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19일 대선출마 선언식.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 사뭇 달랐다. 한층 커지고 단호해졌다. 두 번째 대권도전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재수는 아니다. 예전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새로운 정치” “미래 대통령”을 강조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여태 그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는 얘기로, 그만큼 정치적 빚도 적다. 그가 지난 대선에서 '새정치'를 전면에 내세웠을 때, 국민들이 그를 일약 유력 대권주자로 받아들인 배경 중 하나다. 

길지 않은 정치여정이지만, 그가 가진 한계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측근들이 적잖게 그를 떠났다. 지나치게 신중하다 못해 신경질적으로 비쳐지는 자세도 입길에 오른다. “누구보다 소통을 잘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말에 100%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로임팩트스퀘어에서 '대신할 수 없는 미래, 안철수'를 슬로건으로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선택의 순간: 두 번의 양보, 한 번의 굳은 결심

그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선거, 2012년 대선에서 연이어 후보자리를 양보하면서 ‘또철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20%대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로서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이에 대해 안 전 대표는 “저로선 (단순 양보가 아닌) 굉장히 큰 결단이었다”며 “정치인들에게 설명 책임이 필요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철수'는 이번 장미대선에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핵심은 ‘자강론’이다. 지난 4·13총선에서 창당을 결정하고, 제3당으로서 입지를 굳힌 후 “연대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양보나 중도포기 없이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어느덧 별명이 '강철수' '독철수'로 바뀌었다. 

그는 각종 연대설 의혹에 대해 “합리적이고 개혁 의지가 많으니 그런 뜻에서 어쩌면 우리 당과 가깝다고 여러 당에서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다”면서 “연대론이 뜨면 그 얘기만 뜨고 정책이나 콘텐츠는 묻힌다. 정말 국가를 위해 없어져야 한다”고 강하게 일축했다.

삶과 정치여정: 의사에서 개발자, CEO…'안철수 현상' 정치입문 

의사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최고경영자(CEO), 정치인까지... 그의 삶은 쉼없는 도전의 과정이다. 스스로 말하듯 어린 시절에 공부를 아주 못했다. 그는 “한글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익혔는데 대신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서 책 읽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거의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회고했다. 중학교 때까지 평생 읽은 책의 절반 정도를 읽었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5년 안철수연구소(안랩)을 설립하면서 세상 이목을 집중시키는 인물로 우뚝 섰다. 의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했다. CEO로서 공익에 기여하면서 사업에도 성공하는 리더십을 직접 보여줬다. 안 전 대표가 당시 안랩을 인수하겠다는 미국 맥아피 제안을 거절한 사례는 유명하다. 그는 “직원들이 해고되고 국민들은 무료 백신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돈보다 공익이 중요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청춘콘서트로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단숨에 대선 후보로 거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안철수 신드롬은 잦아들었지만 국민들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안 전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양당체제를 끝내면서 부쩍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는 “지금까지 정당역사상 이렇게 3당 체제가 만들어진 게 몇 번 되지 않는다”면서 “이를 통해 제 정치적 돌파력, 성과, 리더십, 능력 모두 다 증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좌우명: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안 전 대표는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간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책임을 다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다짐한다.

저서에서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항상 세 가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의미가 있는 일인가, 열정을 지속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인생의 전환기마다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에 얼마나 보탬이 될 수 있을까’를 판단기준으로 삼고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 측근 의원은 “자신의 말에 항상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공약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보여주기식 수치가 아닌 현실적인 수치인지 직접 따져보고 결정한다”고 귀띔했다. 

안철수의 말말말: “이번 선거는 안철수 대 문재인, 양강구도다”

그는 지난해 말 탄핵국면에서부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의 양자대결을 확신했고 거기서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해왔다. 이유도 확실하다. “승리를 생각해도, 개혁을 생각해도, 통합을 생각해도, 미래를 생각해도, 호남을 생각해도 저 안철수가 정답이다.”

“다른 후보와 연대하기 싫다. 고대가 좋다.”

사뭇 진지한 이미지의 안 전 대표는 최근 예능프로에 출연해 ‘아재 개그’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연대론 질문에 “연대론 질문에는 연대가 아니라 고대라고 계속 답해왔다”고 말해 웃음을 만들었다. 또 지난 최순실 청문회에서 ‘쓰까요정’으로 떠오른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의 말투를 따라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설 지나 대선 출마 포기할 것”

안스트라다무스(안철수+노스트라다무스). 안 전 대표의 새로운 별명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지난달 1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 전 "설 지나서 출마를 포기하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고 적중했다. 이에 대해 그는 "정치인들 예상이 틀리는 이유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과 흐름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의 사람들: 실무형 캠프…전문가 그룹은 대규모

안철수 캠프인 ‘국민캠프’는 실무형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때보다 인원은 줄어 단출하지만 핵심은 모두 구성했다는 평가다. 우선 국민의당 초선 의원들이 대거 캠프에 들어왔다. 경선선거본부장은 최경환 의원이 맡았다. 캠프는 4본부 체제로 미래기획본부장 이용주, 국민소통본부장 이용호, 국민참여본부장 최경환(겸임)·송기석, 국민정책본부장 윤영일 의원이 활동한다.

정책실장은 채이배, 특보단장은 김중로 의원이 각각 활동한다. 안 전 대표 측근인 신용현 오세정 의원도 캠프에 합류했다.

지난 대선에 안 전 대표를 도왔던 이들도 함께하고 있다. 김경록 국민의당 대변인은 캠프 수석대변인을 맡았고 박인복 국민소통실장, 박왕규 상황실장, 정기남 정무특보, 김도식 전 보좌관, 서종화 전 서울시의원 등이 있다. 핵심 참모인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은 조만간 캠프에서 주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최상용 이사장·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외교),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 조영달 서울대 교수(교육), 김근식 경남대 교수(통일) 등이 정책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3일 매머드급 전문가 자문그룹을 소개하기도 했다. 자문그룹인 ‘전문가광장’은 800여명으로 구성됐으며 표학길 서울대 명예교수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공동대표는 김만수 예비역 공군 준장(국방), 김태일 노동정치연대포럼 대표(노동),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교육), 이혜주 중앙대 명예교수(문화예술), 조세환 한양대 교수(국토환경), 천근아 연세대 의대교수(여성청소년) 등이다.

<안철수 약력>

1962년 경남 밀양 출생/ 1980년 부산고 졸업/ 1986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88년 국내 최초 컴퓨터 백신 개발/ 1990년 단국대 의대 의예과 학과장/ 1995년 안철수연구소 창립/ 2005년 안랩 이사회 의장, 포스코 사외이사, 미국 유학/ 2008년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2011년 안철수 청춘콘서트,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2012년 18대 대선 출마 후 자진사퇴/ 2013·2016년 19·20대 국회의원/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2016년 국민의당 공동대표

 

[뉴스핌 Newspim] 장봄이 기자 (bom22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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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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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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