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최연혁 교수가 1993년 이후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세계와 미국을 두고 상반된 언어로 충돌한 과정을 분석했다.
- 클린턴 시기 NAFTA 논쟁에서 대통령은 세계경제와 리더십을 말했지만 의회는 일자리·임금·지역사회 중심의 언어로 맞섰다.
- 르윈스키 사건 탄핵 정국에서 의회는 정책보다 대통령의 진실성과 도덕성, 민주주의와 헌법 해석을 둘러싼 분열된 정치언어를 드러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초강대국의 언어
소련의 해체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들의 자유화는 미국을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국제적 위치에 올려놓았다. 더 이상 미국과 맞설 군사적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경제력과 군사력, 기술혁신과 금융질서, 세계인재를 끌어들이는 교육과 과학기술, 국제질서유지가 모두 하나의 국가에 집중되었다.
당시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찰스 크라우트해머(Charles Krauthammer)는 「The Unipolar Moment」(1990)에서 이를 '단극의 순간(Unipolar Moment)'이라 불렀고, 윌리엄 C. 월포스(William C. Wohlforth)는 「The Stability of a Unipolar World」(1999)에서 '단극체제(Unipolar System)'라는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보다 먼저 세계는 미국 대통령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읽고 있었다.

1993년 1월 20일, 미국 제4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빌 클린턴의 취임사는 냉전의 승리를 자축하는 연설이 아니었다. 세계를 지배하게 된 미국을 선언하는 연설도 아니었다. 그는 자유가 가져온 새로운 책임을 제하고 있다.
"Today, a generation raised in the shadows of the Cold War assumes new responsibilities in a world warmed by the sunshine of freedom but threatened still by ancient hatreds and new plagues."
"오늘 냉전의 그늘 속에서 성장한 한 세대가 자유의 햇빛으로 따뜻해진 세계에서 새로운 책임을 맡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는 여전히 오래된 증오와 새로운 재앙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클린턴의 취임사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책임(responsibility)'이다. 클린턴은 미국의 힘을 설명하기보다 그 힘이 요구하는 의무를 제시한다. 냉전의 종식은 미국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시대의 시작이 아니라, 더 큰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시대의 시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미국이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이 더욱 분명해진다.
"The world itself is being remade by the forces of technology and information. A world economy, a world environment, a world AIDS crisis, a world arms race—these are no longer separate problems."
"세계 자체가 기술과 정보의 힘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경제, 하나의 지구환경, 세계적인 에이즈 위기, 세계적인 군비경쟁은 더 이상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경제(world economy)'라는 표현은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그 문장은 시장의 확대를 자랑하지 않는다. 기술과 정보가 국경을 바꾸고 있으며, 미국도 그 변화 속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세계를 향한 대통령의 언어에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오만은 없었다. 미국을 세계 위에 놓기보다 세계 속에 놓는 표현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의회가 사용한 언어를 보면, 대통령과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3년 가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의회에 제출되자 상원과 하원은 연일 격렬한 토론을 이어갔다. 클린턴은 자유무역이 미국과 북미 경제를 함께 성장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NAFTA means jobs. American jobs, and good-paying American jobs."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일자리를 의미합니다. 미국의 일자리이며, 임금이 높은 미국의 일자리입니다."
대통령은 자유무역을 세계경제와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움직이는 시대에 미국이 먼저 길을 열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하원 토론에서는 전혀 다른 단어들이 반복되었다.
1993년 11월 17일 하원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행법안(H.R. 3450)을 놓고 하루 종일 토론을 이어갔다. 이어 11월 20일 상원도 같은 법안을 심의하였다.
『Congressional Record』 제103대 의회(103rd Congress), 제1회기(1st Session)의 11월 17일부터 20일까지의 토론 기록을 살펴보면, 의원들의 발언은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반복했던 '세계(world)'보다 '지역사회(community)', '노동자(worker)', '공장(factory)', '임금(wages)', '가족(family)'이라는 단어에 훨씬 더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세계질서를 이야기하는 동안, 의회는 지역구의 경제와 유권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NAFTA를 둘러싼 논쟁은 대통령과 의회의 언어가 처음으로 뚜렷하게 갈라지기 시작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자유무역을 지지한 의원들은 미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한 의원들은 미국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희생을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7년 4월 16일 하원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 데이비드 보니어(David Bonior)는 NAFTA 시행 이후를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Today we know about the real-life effects of NAFTA. We have the trade data, we have the job data... We have personal real-life stories from thousands of people telling us what it has done to their jobs, their wages and the communities they live in."
"이제 우리는 NAFTA의 실제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무역 통계도 있고 고용 통계도 있습니다. 또한 수천 명의 미국인이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직접 말해주고 있습니다."
반면 자유무역을 지지한 의원들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과 세계경제에서의 경쟁력을 강조하며 자유무역이 미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논리로 맞섰다.
이러한 대립은 일부 의원의 견해가 아니었다. NAFTA 비준과 그 이후의 『Congressional Record』를 보면 하원과 상원을 막론하고 'leadership', 'global market', 'competitiveness'라는 언어와 'jobs', 'American workers', 'fair trade', 'communities'라는 언어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같은 협정을 두고도 한쪽은 세계를 이야기했고, 다른 한쪽은 노동자와 공장을 이야기 한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사용한 '세계경제'라는 언어는 의회에 들어오면서 '일자리', '임금', '지역사회', '미국 노동자'라는 언어로 분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 언어의 충돌은 NAFTA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후 중국과의 무역, 제조업 공동화, 이민, 의료보험, 국경 안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반복되었고, 결국 미국은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언어와 미국을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언어가 끊임없이 경쟁하는 정치로 들어서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클린턴의 취임사에서 제시된 '세계'와 '미국'은 의회 토론에 이르러 서로 다른 정치언어로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변화가 처음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대통령의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 성추문 스캔들을 둘러싼 통치정당성과 인격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르윈스키 사건과 탄핵, 정책에서 인격으로
1998년의 미국은 역설의 나라였다. 경제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실리콘 벨리에 자리잡은 정보기술 산업은 전례 없는 속도로 성장했고, 실업률은 수십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연방정부는 오랜 적자를 끝내고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는 냉전 이후 가장 안정된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클린턴 역시 이러한 성과를 자신 있게 국민 앞에 내세웠다. 그는 1998년 연두교서에서 짧지만 강한 한 문장으로 시대를 요약했다.
"The state of our Union is strong."
"우리 연방은 강합니다."
그 문장은 경제지표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었고, 세계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대통령은 그 성과를 국가의 자신감으로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뒤, 의회의 언어는 경제도 성장도 외교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국회의사당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더 이상 'economy'도 'prosperity'도 아니었다. 대신 'truth', 'perjury', 'oath', 'rule of law', 'public trust', 'Constitution'이 회의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정치의 중심이 정책에서 대통령 개인으로 이동한 것이다.
1998년 12월 18일부터 19일까지 하원은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다뤘다. 『Congressional Record』를 읽어 보면 의원들은 세금이나 복지, 무역이나 외교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통령이 위증을 했는가, 선서를 저버렸는가, 헌법이 요구하는 공직자의 책임을 위반했는가를 놓고 서로 다른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탄핵을 지지한 의원들은 먼저 법치주의를 내세웠다. 그들에게 핵심은 클린턴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이었다. 대통령이 누구인가보다 대통령도 헌법 아래 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반복해서 말하였다.
"No one, not even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is above the law. The Constitution does not create one standard for ordinary citizens and another for the Chief Executive. If we fail to uphold that principle today, we diminish the rule of law itself."
"미국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법 위에 설 수는 없습니다. 헌법은 일반 시민에게 적용되는 법과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법을 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훼손되는 것은 한 대통령이 아니라 법치주의 자체입니다."
그들의 연설은 경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실업률도 주식시장도 흑자재정도 중요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정책이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공직자가 법과 선서를 어겼다면 헌법은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탄핵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헌법적 의무였다.
그러나 탄핵에 반대한 의원들은 같은 헌법에서 전혀 다른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대통령 개인의 행위를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의 선택을 강조하였다.
대통령을 심판하는 가장 큰 권한은 의회가 아니라 국민에게 있으며, 탄핵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지 정당 간 정치투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The American people elected this President. Impeachment must never become a substitute for elections, nor a political weapon employed whenever Congress disagrees with the occupant of the White House. The Constitution demands restraint as well as accountability."
"미국 국민은 이 대통령을 선택했습니다. 탄핵은 선거를 대신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의회가 백악관의 주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하는 정치적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헌법은 책임뿐 아니라 절제도 요구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양측 모두 민주주의와 헌법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았고, 누구도 헌법의 권위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찬성 측은 민주주의를 '법 앞의 평등'으로 이해했고, 반대 측은 민주주의를 '국민이 부여한 정치적 정당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점에서 르윈스키 사건은 단순한 성추문이나 탄핵 사건을 넘어 미국 정치언어가 변곡점을 맞이한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클린턴 집권 초기 의회의 논쟁은 자유무역, 복지개혁, 재정균형처럼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경쟁이었다.
그러나 탄핵 국면에서는 정책보다 대통령 개인의 진실성과 도덕성, 그리고 통치할 자격이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상대의 정책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대가 공직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는 탄핵이라는 헌법 절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Congressional Record』에 남은 언어는 또 다른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의회는 더 이상 정책의 우열만을 다투지 않았다. 점차 상대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먼저 심판하는 언어로 이동하고 있었고, 그 변화는 이후 9·11과 이라크 전쟁, 오바마 시대를 거치며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