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2001년 9월 11일 미국은 알카에다의 대규모 테러를 당해 분열된 정치를 뒤로하고 초당적으로 단결했었다.
-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안보와 위협’을 말하는 대통령과 ‘증거와 정당성’을 요구하는 의회가 갈라지며 미국 정치언어의 균열이 다시 심화됐었다.
- 오바마의 ‘Yes We Can’이 통합을 약속했지만, 의회에서 ‘You lie!’가 외쳐지며 상호 불신의 언어가 부상하고 민주주의의 공통 언어는 약화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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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분열 이후 다시 하나로
클린턴 탄핵으로 정치는 대통령 개인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둘러싼 극심한 대립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치가 내부의 갈등에 몰두하는 사이, 세계는 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았지만,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의 군사적 존재와 세계적 영향력에 반감을 품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조직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와 2000년 미 해군 구축함 USS Cole 공격은 알카에다가 미국을 상대로 공격 수위를 높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경고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 사회는 이를 주로 해외 주재 미국 시설에 대한 테러로 인식하였으며,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규모 공격이 임박했다는 위기의식은 아직 널리 공유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경고는 2001년 9월 11일 현실이 되었다.

민간 여객기 네 대가 납치되었고, 두 대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한 대는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에 충돌하였다. 또 다른 한 대는 승객들의 저항 끝에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추락했다. 몇 시간 만에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했고, 미국은 진주만 공습 이후 처음으로 본토가 대규모 공격을 받는 충격을 경험하였다.
그날 무너진 것은 빌딩만이 아니었다. 냉전 이후 경제와 세계화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미국의 정치언어도 순식간에 안보와 생존의 언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가 공격을 받은 직후 민주당과 공화당은 거의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다. 『Congressional Record』 제107대 의회 제1회기 긴급회의 기록을 보면, 회의장을 가장 많이 채운 단어는 'freedom', 'nation', 'terrorism', 'unity', 'security', 'America'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도덕성과 탄핵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충돌했던 의원들은 이제 정당보다 국가를 먼저 이야기하였다. 상대를 향한 비난은 사라졌고, 미국이라는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언어가 의회를 지배하였다.
9월 20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조지 W. 부시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 연설하였다.

"Every nation, in every region, now has a decision to make. Either you are with us, or you are with the terrorists."
"모든 국가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테러리스트와 함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의회도 대통령의 언어에 거의 즉각 반응했다. 2001년 9월 14일 상·하원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무력사용권한법(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AUMF)」을 통과시켜, 9·11 테러를 계획·지원하거나 은닉한 세력에 대해 대통령이 군사력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해 주었다.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과 의회의 언어는 다시 하나로 수렴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책의 차이보다 국가의 생존과 국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언어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일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유지되었던 초당적 합의가 2002년 이라크 무력사용결의(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Against Iraq Resolution of 2002)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공통된 언어는 유지되었지만, 적의 범위와 전쟁의 목적, 그리고 어디까지 군사력을 행사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해석은 점차 갈라졌고, 의회는 다시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 : 단극체제에 대한 첫 번째 도전
2002년 가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추진하면서 의회의 언어는 다시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테러가 이미 발생한 뒤의 대응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협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위험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 의원들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그 위협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었는지, 국제사회의 동의를 충분히 얻었는지, 그리고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이 정말 모두 소진되었는지를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Congressional Record』 제107대 의회 제2회기(2002년 10월)를 보면, 찬성과 반대는 단순히 전쟁에 대한 찬반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었다.
전쟁을 지지한 공화당 의원들은 'national security', 'threat', 'Saddam Hussein', 'weapons of mass destruction'을 반복하며, 현실화되기 전에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예방적 군사행동을 주장하였다. 그들에게 미국은 자국의 안보는 물론 국제사회의 안전과 유엔 결의를 실현하기 위해 먼저 행동할 책임이 있는 국가였다.
2002년 10월 미국 의회는 「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Against Iraq Resolution of 2002(2002년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승인 결의안)」을 심의했다. 불과 1년 전인 9·11 직후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테러와의 전쟁 앞에서 일치된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라크를 둘러싼 토론 때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Congressional Record』에 남아 있는 상·하원 토론을 보면, 공화당 의원들의 연설은 'security', 'threat', 'Saddam Hussein', 'weapons of mass destruction'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민주당 의원들의 연설은 'United Nations', 'inspections', 'evidence', 'diplomacy'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같은 결의안을 논의하면서도 한쪽은 '위협'을 말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증거와 국제적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 미국 의회의 논쟁언어가 충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논쟁을 국민 앞에서 더욱 분명한 언어로 정리하고 있다. 2003년 3월 17일, 이라크 군사작전을 앞둔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The security of the world requires disarming Saddam Hussein now."
"세계의 안보를 위해서는 지금 사담 후세인의 무장을 해제해야 합니다."
이 한 문장은 부시 행정부의 세계관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안보는 더 이상 미국 영토 안에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었고, 세계의 안보 역시 미국의 선제적 행동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었다.
클린턴이 미국의 패권을 자유무역과 경제통합, 그리고 세계경제를 이끄는 책임의 언어로 설명했다면, 부시는 같은 패권을 안보와 예방적 군사행동의 언어로 다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두 대통령 언어의 밑바탕에는 하나의 공통된 전제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질서를 이끄는 국가이며, 대통령은 그 질서의 방향을 결정할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의회는 대통령과는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2002년 10월 상원 본회의에서 로버트 C. 버드(Robert C. Byrd, 민주당·웨스트버지니아) 의원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결정하기에 앞서 민주주의 국가가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를 강조하였다. 그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Before we unleash what Thomas Jefferson called the 'dogs of war,' I want to know, have we exhausted every avenue of peace? Have we truly pursued peace?"
"토머스 제퍼슨이 말한 '전쟁의 사냥개'를 풀어놓기 전에, 나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모든 길을 정말 다 시도했습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했습니까?"

버드는 사담 후세인을 변호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유엔 무기사찰은 충분히 이루어졌는가. 외교적 노력은 모두 소진되었는가. 국제사회의 협력은 충분히 확보되었는가.
『Congressional Record』에 남아 있는 토론을 보면 반대 의원들은 'United Nations', 'inspections', 'evidence', 'diplomacy'를 반복하며, 위협 자체보다 군사행동을 정당화할 증거와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미래의 위험을 강조할 때, 의회는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근거와 국제적 정당성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언어는 새로운 균열을 드러낸다. 냉전 직후 의회가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논의했다면, 이제는 '미국은 어떤 정당성과 어떤 절차를 거쳐 세계를 이끌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강대국의 책임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설명하는 언어는 달라졌다. 대통령은 패권의 책임을 말했고, 의회는 패권의 정당성을 물었다. 이 작은 언어의 이동은 이후 미국 민주주의를 흔들게 될 더 큰 변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정책의 균열은 언어의 균열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민주주의의 후퇴 역시 바로 그 언어의 변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세계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언어와, 헌법적 절차와 국제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의회의 언어는 다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의회는 무력사용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을 단행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대량살상무기가 결국 발견되지 않으면서 2002년 의회에서 제기되었던 질문들은 점차 의회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라크 전쟁은 단순한 군사작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의 단극적 리더십이 국제사회뿐 아니라 미국 의회 내부에서도 처음으로 구조적인 의심을 받기 시작한 사건이었으며, 9·11 직후 하나로 모였던 정치언어가 다시 분열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Yes We Can 이후의 언어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하나의 문장이 이끌었다.
"Yes We Can."
"그래, 우리는 할 수 있다."
이 짧은 구호는 단순한 선거 슬로건이 아니었다.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넘어, 이라크 전쟁과 금융위기로 흔들린 미국이 다시 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 'Yes We Can'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흑인과 백인, 국내와 세계를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하려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오바마가 말한 we는 특정 정당이 아니라 미국 전체였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믿는 세계를 향한 호소이기도 했다.
2009년 1월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이러한 약속을 국제질서의 언어로 확장하려 했다. 그는 미국의 리더십을 군사력뿐 아니라 신뢰와 협력 위에서 회복하고자 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도덕적 권위를 손상시켰고,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식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고 있었다. 오바마가 회복하려 했던 것은 경제나 외교정책 이전에 미국의 국제적 신뢰와 리더십이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미국의 새로운 지도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Our power alone cannot protect us, nor does it entitle us to do as we please."
"우리의 힘만으로는 우리를 지킬 수 없으며, 그 힘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 한 문장은 탈냉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이 사용한 패권의 언어를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클린턴은 미국의 힘을 책임(responsibility)으로 설명했고, 부시는 안보(security)로 설명했다. 오바마는 여기에 신뢰(trust)와 협력(cooperation)이라는 언어를 더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질서를 이끄는 국가였지만, 그 질서는 더 이상 군사력만으로 유지될 수 없으며 국제사회의 신뢰와 동의를 통해 지속되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언어가 다시 세계를 향할수록 의회의 언어는 더욱 빠르게 미국 내부로 향하고 있었다.

2009년 미국 의회는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Congressional Record』 제111대 의회 제1회기 토론을 살펴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어는 더 이상 alliance, international, trade, security가 아니었다.
대신 government, government takeover, freedom, taxpayer, deficit, choice, mandate 라는 표현이 토론을 지배했다. 세계질서를 논하던 의회는 이제 연방정부의 권한, 개인의 자유, 세금 부담과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국내 정치의 언어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이는 정책의 변화라기보다 정치언어의 변화라 할 수 있다. 냉전이 끝난 직후 의회는 세계경제와 미국의 국제적 책임을 함께 논의했다.
그러나 오바마 시대에 이르러 의회는 대통령이 제시하는 세계적 비전보다 국내의 이념적 대립을 설명하는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를 회복하려 할수록, 의회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응답했다. 같은 나라의 정치였지만, 대통령과 의회는 점점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2009년 9월 9일 의회 합동회의에서 상징적인 장면으로 폭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 개혁을 설명하던 도중, 공화당의 조 윌슨(Joe Wilson, 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You lie!"
"거짓말입니다!"
미국 의회의 오랜 전통에서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공개적으로 끊고 "거짓말"이라고 외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었다. 하원은 이후 윌슨 의원을 공식적으로 질책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이미 더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다. 논쟁의 대상이 정책에서 화자의 신뢰로 이동한 것이다. 상대의 주장에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 자체를 믿지 않는 정치가 의회 한복판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장면은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미국을 열광시켰던 "Yes We Can."은 공동의 가능성을 믿자는 언어였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의회에서 울려 퍼진 "You lie!"는 상대의 언어 자체를 부정하는 선언이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는 제도이지만, 서로의 말을 들을 최소한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 신뢰가 무너질 때 토론은 설득이 아니라 낙인으로 변한다.
1993년 클린턴이 의회 앞에서 세계경제를 이야기했을 때 여야는 같은 세계를 바라보며 방법을 다투었다. 2009년 오바마 시대의 의회는 같은 현실조차 서로 다른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세계와 협력을 말했고, 의회는 정부와 자유를 말했다. 대통령은 신뢰를 회복하려 했지만, 의회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다. 'Yes We Can'이 약속했던 공동의 언어는 'You lie!'라는 불신의 언어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바마 시대가 남긴 가장 큰 역설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세계의 신뢰를 회복하려 했지만, 정작 미국 민주주의는 내부에서 공통의 정치언어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그 언어의 균열은 이후 티파티 운동과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더욱 깊어졌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근본적인 도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