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전 총재는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일본 경제와 통화 질서의 미래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진단하면서도, 구조적 변화 가능성에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디플레이션 시대는 끝났다"
구로다 전 총재는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변화로 '디플레이션 탈출'을 꼽았다.
일본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약 15년간 장기 디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그러나 2013년 이후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시행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결정적 전환점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였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오랫동안 고착돼 있던 '디플레 마인드'가 무너졌고, 임금 상승이 본격화됐다. 2024년 춘계 임금 교섭(춘투)에서는 30여 년 만에 5%대 임금 인상이 이뤄졌고, 이후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일본 경제는 현재 ▲1%대 성장률 ▲2~3%대 물가 상승 ▲2%대 중반 실업률이라는 비교적 이상적인 조합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실업률은 완전고용 기준(약 3%)보다 낮은 수준으로, 구조적 인력 부족 상태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구로다는 이를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 회복"이라고 정의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정책 대응 방식도 바꾸고 있다. 디플레이션 시기에는 대규모 금융 완화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과도한 정책 개입이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로다는 현재 일본 경제를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 평가하며, 재정 확대나 감세 정책은 오히려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금리 정책에 대해서는 점진적 정상화를 강조했다. 급격한 긴축이 아니라, 경제의 성장률과 물가 흐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단계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 "달러 체제는 유지되지만...균열 가능성도"
국제 통화 질서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사실상 '달러 본위 체제'이며, 단기간 내 변화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미국 경제 규모와 금융시장 깊이, 그리고 거래 편의성 측면에서 달러를 대체할 통화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특히 위안화에 대해서는 자본 규제가 존재하는 한 국제 기축통화로 자리 잡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변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핵심 변수로 꼽히는 것이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 CBDC다. CBDC가 도입되면 국가 간 결제 비용이 낮아지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굳이 달러를 중개 통화로 사용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유럽이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 중인 디지털 유로가 확산될 경우, 국제 결제에서 유로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달러가 완전히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분산되는 형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엔화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일본 내에서는 디지털 통화 도입 필요성이 크지 않고,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도 크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제 거래에서 엔화를 사용할 유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로다는 엔화의 국제화는 여전히 제한적이며, 달러 중심 구조 속에서 보조적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 "적정 환율은 120~130엔"...과도한 엔저 경계
최근 외환시장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확한 견해를 제시했다. 현재 1달러=150~160엔 수준의 엔저는 과도하며, 적정 수준은 120~130엔대라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약 1조4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충분한 시장 개입 여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국채 형태의 자산 역시 실제로는 유동성이 높아 필요 시 활용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구로다의 시각을 종합하면, 향후 통화 질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달러 중심 체제는 당분간 유지 ▲그러나 CBDC 등 기술 변화로 역할은 점진적으로 분산 ▲엔화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goldendo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