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미국 경제의 70%를 떠받치는 소비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소비 경기가 급속 냉각할 것이라는 비관론보다 소프트패치(일시적 둔화)에 가깝다는 의견이 아직은 우세해 보이나, 안심할 수 없다.
미국 가계의 대출 연체율은 소비자들의 재무상태가 녹록치 않다고 말한다. 기업들의 채용계획은 후퇴하고 있는 반면 해고 발표는 늘고 있다. 하락하는 구인율은 실업률이 빠르게 튀어오를 위험을 내포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세환급이 예정돼 있지만 빚이 많고 고용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소비를 자극하기보다 부채상환과 저축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도사린다.
1. 소비와 가계 재무상태
전일(10일) 공개된 미국의 12월 소매판매는 시장 예상에 크게 못 미쳤다. 전월비 0.4% 늘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보합(0%)에 그쳤다. 전체 소매판매에서 자동차와 휘발유 건축자재 판매 등을 제외한 핵심 소매판매는 0.4% 늘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한 달 전보다 0.1% 감소했다. 13개 소매 항목 중 8개 항목에서 판매가 감소했고, 건자재와 스포츠용품 판매만 늘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11월 앞당겨 분출했던 연말쇼핑(11월 소매판매의 전월비 증가율은 0.6%였다)의 기저효과, 바깥 활동에 방해가 됐던 날씨, 그리고 단골 메뉴인 트럼프발 관세의 비용 전가 등이 12월 소비 부진의 배경으로 제시됐지만 2024년 이후 가라앉기 시작한 소비심리(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가 마침내 실물지표로 확인되고 있다는 우려섞인 분석도 나온다.
노스라이트 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인 크리스 자카렐리는 "소비 지출이 마침내 심리(소비심리)를 따라잡았는데, 좋은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수개월 가계는 물가상승 우려에도 계속 지출을 늘렸지만, 최근 소매지표는 소비자들이 더 이상 지출을 쉼 없이 늘리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미국 소비의 피로감은 가계의 재무상태와 불가분이다. 뉴욕연방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가계 연체율은 직전 분기보다 0.3%포인트 상승한 4.8%를 기록, 2017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았다. 가계 저축률의 경우 지난해 11월 3.5%까지 떨어져 3년 만의 최저치를 나타냈다. 줄어든 저축과 늘어난 연체는 분에 넘치는 지출 이후 가계의 '각성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혹은 도래할 것임을 시사한다.

2. 구인율의 경고음
그럼에도 소비가 급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는 고용시장의 최근 둔화가 경기침체 신호와는 거리감이 있다는 인식, 단기적으로는 1분기 중 트럼프의 '크고 아름다운' 감세로 세환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자리한다.
작년말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트럼프의 감세정책으로 2026년 세 환급액은 총 1000억~1500억달러, 가구당 1000~2000달러 사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2026년은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에) 매우 좋은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노동시장이 계속 회복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러한 일회성 현금(세환급액)이 소비 반등의 마중물 역할을 하면 다행이나, 작년 4분기 이후 고용지표는 불안해지고 있다. 팬시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올리버 앨런 이코노미스트는 "실질 소득 증가율이 최근 현저히 둔화되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노동 시장 둔화 탓"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월치(2025년 12월) 미국의 실업률은 4.4%로 한달전의 4.5%에서 소폭 내려왔다. 실업률은 2023년 4월의 3.4%에서 점진적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크게 위험한 레벨은 아니다. 다만 후행지표인 고용은 순식간에 표정을 달리할 수 있는데, 여러 보조지표들 역시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중이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이사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베버리지 곡선은 구인율이 일정 레벨 위에서는 실업률이 높아지지 않는 경직성을 보이다가 특정 레벨을 뚫고 내리면 실업률이 빠르게 상승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월러가 제시한 인계철선은 구인율 4.5% 선이다. 즉 미국의 구인율이 4.5%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면 실업률의 상승 속도가 가팔라질 위험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베버리지 곡선 상의 현저한 우하향 국면에 진입하는 순간이다.
지난 5일 노동부가 공개한 미국의 12월 구인율은 한달 전보다 0.3%포인트 하락한 3.6%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3월보다 낮은 수치로, 월러 이사가 강조한 임계점(4.5%)을 제법 많이 뚫고 내려왔다.
그나마 12월 해고율(1.1%)은 여전히 낮게 유지돼 일정 부분 안도감을 줬지만 민간의 별도 통계는 전혀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고 경고음을 울렸다.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의 통계에 따르면 새해 첫달(1월) 미국 기업이 발표한 해고 계획은 전년동기비 118% 늘어 10만8435건에 달했다. 1월 기준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많은 해고가 발표됐다.
전일(10일) 노동부가 발표한 미국의 작년 4분기 고용비용지수(ECI) 역시 전기비 0.75%에 그쳐 2021년 2분기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고용시장이 그다지 뜨겁지 않아 임금과 복지 비용을 크게 올려주지 않아도 됐다는 이야기다. 채권 시장 참여자들은 둔화하는 고용비용 증가율을 미국의 물가상승률 둔화, 특히 서비스 물가상승률의 둔화 가능성과 연결짓는다.

3. 연준의 금리정책은
가계 소비를 떠받치는 것은 구매력의 항상성이며 이는 안정된 고용을 근간으로 한다. 고용 경색이 본격화하는 순간에는 분에 넘치게 지출한 가계의 각성과 반성의 시간 또한 빨라지기 마련이다. 예상에 많이 못 미친 소매판매 지표로 현지시간 11일 노동부가 발표하는 1월 고용지표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로이터의 사전 조사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의 비농업 부문 취업자가 1월 중 7만명 증가했을 것으로, 실업률은 4.4%를 유지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생산성 증가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노동공급이 둔화하고 있어 향후 몇달 동안은 신규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일자리 창출의 속도가 느려진 이면에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정책에 따른 노동공급 감소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실업률은 당분간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해싯은 실업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월간 일자리 증가 속도는 전임 조바이든 대통령 시절보다 상당히 낮아다고 덧붙였다.
1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단기금리 시장의 옵션 트레이더들은 1월 고용지표 발표를 앞두고 연내 연준이 기준금리를 2~3차례 인하할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물론 1월 소비지표에 이어 고용지표도 예상에 못 미치고, 나아가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여기에 맞춰 고도를 낮춘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각료들의 금리를 내리라는 압박은 더 커질 게 자명하다.
또한 이런 전개라면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공급 주도(생산능력 확대) 성장 정책이 물가를 진정시키기(1990년대 신경제 또는 디지털경제라 불렸던 장기 호항 속 낮은 인플레이션) 전에 '수요 파괴'에 의한 물가 둔화가 선행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관측이 자산시장 내 고개를 들 수 있다. 간밤 미국 국채 금리는 거의 모든 구간에 걸쳐 떨어져, 수익률 곡선 전반이 하향 이동했다.
osy7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