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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③의회 속기록으로 본 바이마르 민주주의 후퇴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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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재에서 다루는 1차 자료는 독일 의회 속기록이다. 분석의 기본 접근은 의회 담론을 코퍼스(corpus)로 보는 방식이다. 코퍼스란 일정한 원칙으로 수집된 텍스트 집합을 뜻한다. 정치언어학과 정치담론분석 분야에서 코퍼스는 중요한 자료 수집의 형태로 사용된다. 정치가 언어의 표출과 소통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언어의 반복 패턴은 정치의 구조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된다. 칠턴이 정치 담론을 권력, 정체성, 현실 구성의 메커니즘으로 분석해 온 연구 전통은 바로 이러한 관점의 확장 위에 있다(Chilton 2004). 바이마르 의회 속기록은 그 전통을 역사 연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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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로는 슈테노그라피셰 베리히테(Stenographische Berichte, 속기보고서)라고 부르는 이 기록은 본회의장에서 누가 언제 어떤 내용으로 발언했는지, 어떤 야유와 박수가 터졌는지, 발언 중단과 정정이 어떻게 일어났는지까지 상세하게 보여준다. 특히 괄호 속 표현, 예컨대 박수, 야유, 웃음, 고성, 항의, 발언 방해 같은 반응은 문장 자체만큼이나 의사당 내의 현장 분위기와 질서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연출해 낸다. 이러한 기록은 바이에른 주립도서관(Bayerische Staatsbibliothek) 디지털화 사업과 독일 의회 속기록 포털 라이히스타크프로토콜레(Reichstagsprotokolle)에서 체계적으로 접근 가능해졌고, 1867~1942년 구간의 방대한 분량이 디지털로 제공된다는 점 자체가 비교민주주의 연구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첫 장면은 1919년 2월 6일이다. 바이마르의 국민의회(Deutsche Nationalversammlung, 제헌의회) 제1회기 제1차 본회의, 장소는 베를린이 아니라 바이마르의 국립극장(Weimar, Deutsches Nationaltheater)이다. 제국 수도 베를린을 떠나야 했던 사실 자체가 이미 정치의 불안정성을 말해 준다. 그날 단상에 선 사람은 제국대통령이 된 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 SPD)다. 그는 전쟁 패배 직후의 사회를 하나로 묶는 언어를 선택한다. 기록은 개회, 의장단 구성, 선서, 절차의 확인을 이어가며, 연설은 분열의 상처를 봉합하려는 어조로 흐른다. 이 첫 본회의 속기록은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에 공개된 원문 스캔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설의 미학이 아니라 연설이 전제하고 있는 청중의 지위다. 민주주의 언어가 건강할 때, 정치인은 시민을 판단 가능한 주체로 취급한다. 이 지점은 저자가 개발한 Civic Persuasion Score 15, 즉 CPS-15가 측정하려는 핵심과 맞닿는다. CPS-15는 설득의 구조를 기술적으로만 보지 않고, 설득이 시민의 자율성과 숙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지를 묻는다. 같은 말재주라도 시민을 도구로 만들면 점수는 떨어지는 방식이다. DRHI 6, 즉 민주주의 수사 건강지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이 다원적 소속을 인정하는지, 갈등을 완화하는지, 법과 제도에 정당성을 기대는지, 진실과 증거를 존중하는지, 상실을 통합하고 화해의 기억을 만드는지, 시민을 판단의 동반자로 세우는지를 묻는다. 이 틀은 하버마스적 규범뿐 아니라, 언어가 현실을 구성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설(John Searle)의 언어행위론의 통찰과도 연결된다. 발언은 단지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고 위협하고 배제하며 제도를 사실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적 행위다(Searle 1969; Searle 1995).

바이마르의 비극은 1919년의 첫 장면이 곧바로 1931년의 마지막 장면으로 곤두박질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변화는 세 구간으로 나누어 보면 더 선명해진다. 첫째, 1918~1923년은 탄생과 혁명, 패전 책임, 폭력의 정치가 한꺼번에 충돌한 시기다. 둘째, 1924~1928년은 안정의 환상이 잠시 작동한 시기다. 셋째, 1929~1931년은 경제 붕괴와 함께 언어가 급격히 경직되고 공격화되는 시기다. 문제는 이 구분이 정치사적 구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회 언어는 이 구간을 따라 어휘의 중심축을 이동시킨다. 초기에는 헌법, 질서, 재건, 책임, 절차가 반복되다가, 후기로 갈수록 배신, 수치, 기생, 처단, 내부의 적 같은 단어가 토론의 중추로 올라온다.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이 말한 언어개념사(Begriffsgeschichte)의 개념으로 보면, 위기의 시대에는 단어가 단어 이상의 힘을 얻는다. 말은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사건의 지평을 규정하고, 가능해 보이는 선택지를 바꿔버린다(Koselleck 1979). 의회에서 특정 어휘가 일상화되는 순간, 정치가 허용하는 폭력의 범위도 넓어진다.

바이마르 의회 언어가 변질되는 과정을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민주주의가 막 태어난 직후의 제헌의회 속기록에서 발견된다. 아직 공화국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기, 토론 규범은 헌법보다 먼저 시험대에 올랐다.

바이마르 의회 [사진=Bundesarchiv, Wikimedia Commons]

1919년 2월 25일 오후, 바이마르에 모인 독일 국민의회(Deutsche Nationalversammlung)는 제15차 본회의를 열고 있었다. 회의 안건은 전쟁 책임 문제와 군의 명예, 그리고 혁명 이후 국가의 정당성이었다. 제국이 무너진 지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의회 안에는 패전의 상처와 혁명의 열기가 동시에 남아 있었다. 속기록에는 회의 초반부터 "불안정한 분위기"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이날 단상에 먼저 오른 이는 독일국민당(DNVP) 소속의 막스 배제케(Max Baesecke)였다. 그는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발언을 시작한다. 전쟁의 책임을 군 전체에 묻는 것은 역사적 부당함이며, 혁명의 언어로 제국의 명예를 지우려는 시도는 국가의 근간을 흔든다는 주장이다. 발언 초반, 속기록의 괄호는 짧다.

(동의의 표시.)

그러나 몇 문장이 지나면서 배제케의 어조는 서서히 변한다. 그는 더 이상 정책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누가 이 전쟁을 배신했는가. 누가 조국을 약화시켰는가. 이때부터 속기록의 괄호가 길어진다.

(야유.)

이 야유는 반론의 시작이 아니다. 발언의 자격 자체를 흔드는 소음이다. 배제케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혁명 세력을 가리켜 국가를 내부에서 붕괴시킨 집단으로 지칭한다. 말의 방향이 정책에서 인격으로, 판단에서 낙인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곧이어 독립사회민주당(USPD)의 알프레트 헹케(Alfred Henke)가 단상에 오른다. 그는 배제케의 발언을 "군국주의적 자기기만"이라고 규정하며 맞선다. 혁명은 배신이 아니라 불가피한 역사적 귀결이었고, 구체제의 책임을 회피하는 언어야말로 독일을 파멸로 이끈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문장 역시 점점 단정적으로 바뀐다. 상대의 논리를 해체하기보다 상대의 도덕적 위치를 공격한다.

(웃음. 야유.)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았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 토론의 규칙이 눈에 띄지 않게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두 연설자는 더 이상 서로를 설득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상대는 반박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배제해야 할 존재로 호명된다. 논증은 논증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의 자격을 문제 삼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이날 배제케가 선택한 논법의 핵심은 인신공격(ad hominem)이다. 인신공격은 상대의 주장 내용을 반박하는 대신, 주장자를 도덕적으로 불신할 만한 존재로 규정해 논증 자체를 무효화하는 방식이다. 논리학적으로는 논증의 결함을 겨냥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에 속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강력하다. 상대를 시민적 동료가 아니라 공동체 밖의 인물로 밀어내며, 청중이 더 이상 상대의 논증을 '듣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설의 언어행위론으로 말하면, 이 공격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지위를 재분류하는 선언적 행위다. 상대는 이제 토론의 파트너가 아니라 도덕적 피고가 된다(Searle 1969). 이 순간 의회는 숙의의 장에서 재판정의 분위기로 바뀐다.

인신공격은 거의 언제나 허수아비 공격(strawman)과 결합한다. 허수아비 공격은 상대가 실제로 주장한 내용을 정직하게 재현하지 않고, 더 쉽게 공격 가능한 약한 버전으로 바꾼 뒤 그 버전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이때 토론의 목적은 합의 가능한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 진영을 '원래부터 반국가적' 혹은 '본질적으로 배신적'이라는 도식에 가둬버리는 데 있다. 이 논법의 정치사적 의미는 이견을 정책 차이가 아니라 정체성의 결함으로 바꾼다는 점이다. 스키너가 강조한 것처럼 정치 언어는 단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행위를 수행한다(Skinner 1969). 허수아비 공격은 반대의견을 반대의견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행위다. 야당의 발언권은 제도적으로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당성을 상실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논점일탈(red herring)이다. 논점일탈은 질문의 핵심을 피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대화를 이동시켜 청중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방식이다. 의회에서 논점일탈은 단순히 토론을 지연시키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흐리게 하고, 정책의 타당성 평가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페어클러프가 말한 담론의 권력성은 바로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어떤 쟁점이 중심 의제로 유지되는가, 어떤 언어가 반복되며 공적 상식으로 굳는가가 권력의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Fairclough 1995). 논점일탈이 반복될수록 의회는 정책검증 기구가 아니라 감정 동원 무대가 된다.

그리고 바이마르의 위험한 전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위협의 논증(ad baculum)이다. 이는 '납득'이 아니라 '복종'을 목표로 하는 설득 방식이다. 논증이 결론을 정당화하는 대신,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이익이 온다는 공포를 근거로 삼는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성은 이유에 의해 지지받아야 하지만, 위협의 논증은 이유를 공포로 대체한다. 하버마스의 개념으로 보면, 이것은 소통행위가 전략행위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상대를 설득하는 대신 제압하려 하고, 공적 정당화의 규범은 붕괴한다(Habermas 1984). 정치사적으로 이 변화는 결정적이다. 이유의 경쟁이 사라진 자리에 폭력 가능성의 암시가 들어오면,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유지되어도 언어적 토대는 이미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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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가지 오류는 단지 논리학의 목록이 아니다. 바이마르에서는 이 오류들이 하나의 목적적 방향을 갖고 결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신공격은 상대를 공동체에서 밀어내고, 허수아비 공격은 이견을 배신으로 재구성하며, 논점일탈은 정책 평가의 기준을 흐리고, 위협의 논증은 공포를 정당성의 대체물로 만든다. 이 결합이 반복되면 무엇이 발생하는가. 첫째, 상대는 토론의 파트너가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된다. 둘째, 시민은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분노와 공포에 반응하는 군중으로 호출된다. 셋째, 의회는 합리적 정당화의 장이 아니라 적대적 동원의 현장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지적한 민주주의 후퇴의 징후인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동시에 붕괴한다(Levitsky and Ziblatt 2023). 그리고 그 붕괴는 법률 개정이나 계엄보다 먼저 의회의 호명 방식에서 시작된다.

이 변화는 괄호 속에서도 더 분명해진다. 속기록은 발언의 내용뿐 아니라 방해의 밀도와 반응의 폭력성을 기록한다. 초기에 괄호는 주로 박수, 동의, 질서 요청 같은 절차적 표식으로 기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괄호 안의 표현은 점차 고성과 조롱, 야유, 발언 중단 등 난장판의 기록으로 채워진다. 페어클러프(Norman Fairclough)의 비판적 담론분석이 강조하듯, 담론은 권력관계를 반영할 뿐 아니라 재생산한다(Fairclough 1992). 의회가 발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도 언어의 습관이 상대를 말할 자격 없는 존재로 만들기 시작하면 제도는 껍데기로 남는다. 스키너(Quentin Skinner)가 고전 텍스트 해석에서 강조한 맥락주의는 여기서 방법론적 지침이 된다. 같은 문장도 어떤 정치적 게임 속에서 어떤 의도로 발화되었는지를 보지 않으면 우리는 언어의 기능을 놓친다(Skinner 1969). 바이마르의 속기록은 바로 그 게임의 규칙이 바뀌는 순간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1929년의 의회 토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영 플랜(Young-Plan)이 무엇이었는지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이 계획은 단순한 재정 협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패전국 독일이 전쟁 이후의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떤 국가로 살아남을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시험대였다.

영 플랜은 1924년의 도스 플랜(Dawes-Plan)을 대체하기 위해 제안된 전쟁 배상 재조정안이었다. 도스 플랜이 미국 자본 유입을 통해 단기적 안정을 도모했다면, 영 플랜은 배상 총액과 지급 구조를 장기적으로 확정하려는 시도였다. 총액은 감축되었지만 지급 의무는 1980년대까지 이어지는 형태였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당시 연정 정부와 중도 세력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바로 정치적 상징으로 변했다. 우파 민족주의 세력에게 영 플랜은 경제적 타협이 아니라 패전의 영구화이자 국가 주권의 포기였다. 배상 문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와 굴욕의 문제로 재구성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회 언어는 정책 논쟁의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1929년 7월, 라이히스타크(Reichstag) 본회의. 안건은 영 플랜 비준 문제였다. 회의 초반부터 속기록에는 소음과 야유가 잦다는 표시가 반복된다. 이날 단상에 오른 인물 가운데 하나는 독일국민당(Deutschnationale Volkspartei, DNVP) 소속 의원으로, 알프레트 후겐베르크(Alfred Hugenberg)가 이끄는 민족주의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배상 조건의 세부 항목을 설명하지 않는다. 발언의 첫 문장에서 이미 방향을 제시한다. 영 플랜에 찬성하는 것은 외교적 현실주의가 아니라 독일 국가에 대한 배신이라는 규정이다. 이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속기록에는 반응이 기록된다.

(박수.)

이 박수는 같은 진영에서 터져 나온다. 그는 말을 이어가며 영 플랜에 동의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다. 국제 금융 자본과 결탁해 독일을 묶어 두려는 세력이라는 규정이다. 정책의 효과를 논하지 않고 동기를 단정하는 방식이다. 이 표현이 등장하자 반대편에서 즉각 반응이 나온다.

(야유.)

그러나 야유는 반박의 시작이 아니다. 발언을 끝까지 들을 필요가 없다는 집단적 신호에 가깝다. 후겐베르크 진영의 의원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타협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타협은 현실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를 약화시키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이 지점에서 속기록의 괄호는 길어진다.

(격렬한 야유. 웃음.)

곧이어 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 소속 의원이 반론을 위해 단상에 오른다. 그는 영 플랜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국제적 고립과 경제 붕괴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정이라고 설명하려 한다. 그는 실업률과 재정 수치를 언급하며 논증을 구성하려 한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여러 차례 끊긴다.

(야유.) (고성.)

그가 문장을 완성하려 할 때마다 소음이 커진다. 정책 설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반대편에서는 그의 논증을 반박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발언 동기를 문제 삼는다. 그는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엘리트라는 낙인이 던져진다. 질문은 던져지지만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판단은 내려져 있다.

이 시점에서 의회는 더 이상 정책을 설계하는 공간이 아니다. 영 플랜을 둘러싼 논쟁은 타협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토론이 아니라, 누가 애국자이고 누가 배신자인지를 가르는 의식에 가까워진다. 다원적 소속을 인정하던 언어는 빠르게 사라지고 갈등을 완화하려는 표현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법과 제도는 신뢰의 근거가 아니라 공격의 표적이 된다.

독일역사박물관(Deutsches Historisches Museum)과 바이에른 지역 역사 사전이 이 시기를 우파 민족주의 동원이 급격히 강화된 전환점으로 정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 플랜 자체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정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둘러싼 의회 언어는 민주주의의 설득 구조를 빠르게 침식시켰다. 증거와 조건부 판단 대신 확언과 조롱이 늘어났고, 반대자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배제의 대상으로 호명되었다.

이 변화는 전체주의가 갑자기 출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현실을 함께 판단하는 능력이 서서히 붕괴되는 과정이었다.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흐려지고 정치적 논쟁이 진위의 문제에서 충성의 문제로 이동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전체주의의 전제 조건으로 지적한 현실감각의 붕괴는 바로 이런 언어적 전환 속에서 진행된다(Arendt 1951).

1929년의 라이히스타크는 여전히 존재했다. 헌법도, 규칙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속기록에 남은 문장과 괄호를 따라가다 보면, 민주주의를 떠받치던 언어의 토대는 이미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영 플랜 논쟁은 그 전환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아돌프 히틀러. [사진=독일 연방 아카이브(Bundesarchiv)·위키미디어 공용]

독자들이 특히 궁금해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히틀러(Adolf Hitler)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 의회에서 의원으로서 본회의 단상에 서서 연설한 장면이 실제로 남아 있는가 하는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바이마르 의회 속기록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소란, 고성, 공격적 언어의 상당 부분은 나치당(NSDAP)과 공산당(KPD) 의원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히틀러 개인이 본회의 단상의 핵심 연설자로 등장한 흔적은 없다. 아니, 존재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932년 2월에야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그 이전에는 독일의회 선거 출마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후 나치당이 의회 내에서 대규모 의원단을 형성한 뒤에도 의회 내부의 언어적 공세와 전술적 충돌의 전면에는 히틀러가 아니라 다른 당 인물들이 나섰다는 점이 정치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Evans 2003; Mommsen 1996).

특히 연구자들이 주목해 온 인물은 괴벨스(Joseph Goebbels)와 프리크(Wilhelm Frick)다. 괴벨스의 경우, 그의 의회 전략은 단순한 개인적 선동이 아니라 나치당의 조직적 전술로 분석되어 왔다. 리처드 에번스(Richard J. Evans)는 나치당이 의회를 민주적 숙의의 장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체제의 무능과 분열을 과시하기 위한 무대로 활용했다고 분석한다(Evans 2003). 괴벨스가 1928년 무렵 "우리는 의회에 들어가 민주주의의 무기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점은 이후 여러 정치사·전체주의 연구에서 나치 의회 전략의 자기 진술로 반복 인용된다(Mommsen 1996; Kershaw 1998). 이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나치가 의회 발언을 정책 설득이 아니라 정당성 훼손과 체제 마비의 도구로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핵심 자료로 취급된다.

프리크의 역할은 보다 제도적 차원에서 분석된다. 디트리히 오를로프(Dietrich Orlow)와 한스 몸젠(Hans Mommsen)은 프리크를 나치당 내에서 의회 규칙과 행정 절차를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한 인물로 평가한다(Mommsen 1996; Orlow 1969). 프리크는 본회의 발언뿐 아니라 의사진행 발언, 규칙 해석을 둘러싼 이의 제기, 반복적 동의·반대 표명 등을 통해 회기 자체를 지연시키고 토론을 교착 상태로 몰아넣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소란이 아니라 의회의 기능적 신뢰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전략으로 작동했다. 최근의 비교민주주의 연구 역시 나치가 의회 절차를 의도적으로 과부하 상태로 만들어 민주적 결정 능력을 마비시키려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Müller 2016).

이와 같은 나치 의원들의 조직적 언어 전략은 의회 밖의 거리 폭력과 선전 정치와 결합해 더욱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 점에서 나치의 의회 언어는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선전·폭력·제도 교란이 결합된 복합 전략의 일부로 이해된다(Eatwell 2003). 연구자들은 이를 '내부로부터의 민주주의 잠식'으로 규정하며, 민주주의 제도를 전면 부정하기 이전에 먼저 그 작동 규범을 붕괴시키는 단계로 해석한다(Levitsky and Ziblatt 2023). 의회는 여전히 열렸고 발언은 계속되었지만, 그 언어는 점점 설득을 포기하고 조롱과 위협, 도덕적 배제의 문법으로 이동했다.

나치의 의회 전략은 특정 지도자의 연설 능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의원단 전체가 공유한 공격적 언어 사용과 의도적 충돌의 정치에 의해 구현되었다. 따라서 히틀러의 정치 언어를 평가할 때는 바이마르 의회 속기록에 남아 있는 발언만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그의 대중 연설과 선전 담론, 그리고 1933년 이후 정부 수반으로서 행사한 제도적 발언을 별도로 분석해야 한다. 이 구분은 단순한 방법론적 선택이 아니라 언어행위가 수행되는 제도적 위치에 따라 그 정치적 효과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에서 분석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어는 말해진 내용뿐 아니라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말하는가에 따라 정치 현실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더욱 명료해진다(Searle 1969).

그럼에도 히틀러의 그림자는 의회 속기록에 점점 더 짙게 드리운다. 역설적으로 그가 단상에 서지 않아도 그의 이름은 상대를 공격하는 호명으로, 위협의 배경음으로, 그리고 어떤 결정을 미루게 만드는 공포의 계기로 등장한다. 푸코(Michel Foucault)가 권력은 말해지는 내용뿐 아니라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자의 질서를 통해 작동한다고 했을 때(Foucault 1971), 바이마르의 의회는 바로 그 질서가 재배열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발언이 반박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순간, 토론의 공간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심장이 아니다.

이 연재에서 저자는 정량 연구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치를 앞세우지 않으려 한다. CPS-15와 DRHI는 결국 인간의 언어를 계량으로 번역하는 도구이지만, 그 번역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독자가 현장의 감각을 충분히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1918년부터 1923년까지의 구간에서 CPS-15와 DRHI가 흔들리는 핵심 원인은 혁명과 정치적 폭력의 후폭풍 속에서도 절차와 제도를 붙잡으려는 언어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의회 언어는 공격과 설명, 낙인과 정당화가 불안정하게 공존하는 상태였다.

1924년부터 1928년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제적 안정과 국제적 고립 완화 속에서 의회 언어는 일시적으로 안정을 회복한다. 발언은 다시 길어지고 토론은 정책 조정과 제도 개선으로 이동한다. 이 시기에는 CPS-15와 DRHI가 반등할 수 있는 언어적 조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회복은 구조적이라기보다 표면적이다. 이전 국면에서 도입된 공격의 어휘와 조롱의 문법은 사라지지 않은 채 잠복해 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29년 이후다. 세계대공황의 충격과 함께 공격의 어휘가 의회 토론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 시점에서 DRHI는 특히 급격히 하락하는 임계점에 도달한다. 설득의 질이 나빠진다는 것은 단순히 말이 거칠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더 이상 시민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언어가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붕괴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규범적 토대 역시 함께 훼손된다(Levitsky and Ziblatt 2023; Habermas 1984).

다음 칼럼에서는 이 전환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어떤 정치적 언어가 반복되었는지, 그리고 속기록의 괄호 안에 기록된 야유, 고성, 의사진행 방해와 같은 방식으로 토론을 어떻게 중단시키고 변질시켰는지를 가능한 한 현장에 가깝게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이어서 CPS-15와 DRHI의 항목에 하나씩 대조하며, 민주주의의 붕괴가 어떻게 말의 질 변화로 예고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시작된다. 법률이 바뀌기 전에, 내각이 무너지기 전에, 먼저 연설의 질이 변한다. 그 문장의 변색은 가장 먼저 의회 속기록에 역사적 증거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붕괴가 시작된 정확한 시점을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시리즈 마지막 부분에 참조문헌을 제공할 예정이지만, 각 부분별 자료도 먼저 제시하고자 한다. 학자, 대학원생, 연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도 활용했으면 한다.)

*참조문헌 (APA 7th 형식)

Arendt, H. (1951).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Harcourt, Brace & Company.
Chilton, P. (2004). Analysing political discourse: Theory and practice. Routledge.
Eatwell, R. (2003). Fascism: A history. Pimlico.
Evans, R. J. (2003). The coming of the Third Reich. Penguin Books.
Fairclough, N. (1992). Discourse and social change. Polity Press.
Fairclough, N. (1995). Critical discourse analysis: The critical study of language. Longman.
Habermas, J. (1976). Legitimation crisis (T. McCarthy, Trans.). Beacon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73)
Habermas, J. (1984).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ume 1: Reason and the rationalization of society (T. McCarthy, Trans.). Beacon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81)
Iyengar, S., & Westwood, S. J. (2015). Fear and loathing across party lines: New evidence on group polarization.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59(3), 690–707. https://doi.org/10.1111/ajps.12152
Kershaw, I. (1998). Hitler 1889–1936: Hubris. Penguin Books.
Koselleck, R. (1979). Futures past: On the semantics of historical time (K. Tribe, Trans.). MIT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79)
Levitsky, S., & Ziblatt, D. (2023). Tyranny of the minority: Why American democracy reached the breaking point. Crown.
Mommsen, H. (1996). The rise and fall of Weimar democracy.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Orlow, D. (1969). The history of the Nazi Party, 1919–1933.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Rosling, H., Rosling, O., & Rosling Rönnlund, A. (2018). Factfulness: Ten reasons we're wrong about the world—and why things are better than you think. Sceptre.
Searle, J. R. (1969). Speech acts: An essay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Searle, J. R. (1995). The 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Free Press.
Skinner, Q. (1969). Meaning and understanding in the history of ideas. History and Theory, 8(1), 3–53. https://doi.org/10.2307/2504188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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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장기금리 3% 목전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 장기금리가 3% 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추가 금리인상 관측이 확산하면서 국채 매도세가 이어진 영향이다. 31일 도쿄 채권시장에서 장기금리의 지표인 신규 발행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한때 2.950%까지 상승했다. 전 거래일보다 0.030%포인트 오른 수준으로, 1996년 9월 이후 약 30년 만의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시장에서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대표적 기준선인 3%까지는 불과 0.05%포인트를 남겨두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는 BOJ가 이르면 9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금리 상승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국채 매도를 늘리는 한편 신규 매수를 주저하면서 장기금리에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다시 부각된 것도 일본 국채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미 연방준비제도(FRB)의 케빈 워시 의장은 28일 잭슨홀 회의에서 기조적 인플레이션이 2% 목표를 웃도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추가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에 미국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 매수가 강해지면서 엔화는 달러당 160엔대까지 하락했다. 엔화 약세가 다시 강해지면서 BOJ의 추가 금리인상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과 일본이 엔화를 매수하는 공동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이후 시장에서는 엔저를 억제하기 위해 BOJ가 금리인상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었다. 시장이 반영하는 9월 금융정책결정회의의 금리인상 확률도 이미 8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BOJ 내부의 매파적 분위기도 시장의 금리인상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히미노 료조 부총재는 27일 금리인상과 관련해 "다음 회의를 포함해 매번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충분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9월 인상을 명시적으로 예고하지는 않았지만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은 셈이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에 따른 국채 공급 증가 우려도 장기금리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재정지출 확대를 위해 국채 발행이 늘어날 경우 시장에서 국채를 소화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재정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면서 장기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가 심리적 저항선인 3%를 넘어설지에 쏠리고 있다. BOJ의 추가 긴축 기대와 엔화 약세, 적극재정에 따른 재정 우려가 동시에 이어질 경우 장기금리의 상승 압력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사진=블룸버그] goldendog@newspim.com 2026-08-3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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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달구는 8가지 화두 이 기사는 8월 31일 오전 08시08분 '해외 주식 투자의 도우미' GAM(Global Asset Management)에 출고된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GAM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9000여 해외 종목의 프리미엄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공지능(AI) 번역을 바탕으로 전문 기자들의 검증과 분석을 거쳐 생산된 콘텐츠입니다. 원문은 8월28일 블룸버그통신 기사(Carry Trades to Treasury Twists: A Guide to the Hot Debates on Wall Street)입니다.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잇달아 시선을 끄는 정책 결정을 내리면서 투자자들은 올여름 한산한 시기를 누리지 못했다. 베선트 장관이 이끄는 재무부는 엔화 강세를 유도하고 장기 차입비용을 억제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투자자들은 중동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도 여전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거래 기법에 눈을 돌리는 한편 당국이 반영해야 할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거래 기법과 이론이 뒤섞여 제시되고 있다. 이에 트레이딩 데스크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는 주제들의 배경과 현재 상황, 향후 전망을 짚어본다. 본드 스티프너(Bond Steepener) 미국 국채 수익률 곡선의 장기물 금리는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가운데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인공지능(AI)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이 늘면서 국채와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며 올해 상승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할지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도 장기채 보유에 대한 우려를 키운 요인으로 작용했다. 30년물 국채 수익률이 2007년 이후 처음으로 해당 수준까지 오르면서 월가에서는 장기물 국채 가치가 단기물 대비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화됐다. 이런 현상은 커브 스티프닝(curve steepening)으로 불린다. 재무부가 8월 10년물부터 30년물까지의 국채에 대한 재매입(바이백) 규모를 최소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음에도 이런 전망은 유지되고 있다. 해당 발표 이후 장기물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지만 골드만삭스그룹(GS)과 웰스파고(WFC)의 금리 전략가들은 장기 수익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통화로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한 뒤 이를 훨씬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국가의 통화로 전환하는 고위험 거래를 의미한다. 신흥국 8개 통화 기준 블룸버그 누적 외환 캐리트레이드 지수 분기별 추이 [자료=블룸버그통신] 이 거래는 신흥국 금리가 주요국 대비 높고 신흥국 통화가 달러, 유로, 엔 등 주로 차입에 활용되는 통화 대비 안정적이거나 강세를 보일 때 활발해진다. 이 거래는 7개 분기 연속으로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해 2008년 이후 가장 긴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2024년 여름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했을 당시처럼 이 거래는 빠르게 반전될 수 있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는 달러 가치 하락 우려로 투자자들이 달러를 매도하고 금이나 비트코인처럼 공급량이 제한된 자산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뜻한다. 이 용어는 잉글랜드의 헨리 8세나 로마 황제 네로처럼 금화와 은화에 구리 등 값싼 금속을 섞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린, 이른바 화폐 개악(debasement)을 단행했던 역사적 사례에서 비롯됐다. 현대적 의미에서는 미국의 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선 데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달러 구매력이 잠식될 것이라는 우려로 투자자들이 달러를 경계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미국 정책 당국이 의도적으로든 실수로든 달러 약세를 유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구심도 한몫하고 있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에 대한 논의는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미국 정부 셧다운 가능성 등을 계기로 확산됐다. 이후 2026년 중반 베선트 장관이 엔화와 미국 장기 국채를 지지하기 위한 시장 개입을 승인하면서 월가에서 다시 논쟁으로 떠올랐다. 미국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 계획 발표 전후 블룸버그 달러스팟 지수 추이 [자료=블룸버그통신] 다만 달러 약세가 나타날 때마다 이를 모두 디베이스먼트로 해석할 수는 없다. 전세계 투자자들이 여전히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전면적인 이탈이 나타나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탈달러화(De-Dollarization) 디베이스먼트가 달러 가치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는 개념이라면 탈달러화는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는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을 축소하거나 기업이 달러가 아닌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거나 전세계 투자자들이 자금을 미국 밖 시장으로 이동시키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약 70%에서 최근 60% 미만으로 상당폭 낮아졌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장기적으로 달러 익스포저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가운데 유로화와 위안화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꼽히면서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탈달러화 논의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본격화됐다. 미국이 러시아 자산을 동결하고 달러 기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면서 미국이 자국의 금융 시스템과 통화를 무기화할 수 있는 능력에 관심이 쏠렸다. 다만 미국 증시는 여전히 전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채권시장 규모도 세계 최대다. 달러의 우위는 시장의 깊이와 미국 경제 규모, 그리고 이를 진정으로 대체할 만한 통화가 없다는 점에 뒷받침되고 있다.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 금융억압은 1973년 스탠퍼드대 경제학자 로널드 매키넌과 에드워드 쇼가 만든 용어로 정부가 저축을 국채나 특정 우대 차입자에게 유도해 차입비용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뜻한다. 이런 정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됐다. 자본 통제, 금리 상한제, 금융기관의 국채 보유 의무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채권 보유자들의 수익률을 낮춤으로써 정부는 과중한 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실제로 연준은 2차 세계대전 기간과 종전 이후 단기 국채 수익률에 상한을 뒀다. 이 조치는 1951년 재무부-연준 협정 체결로 종료됐다. 억만장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를 비롯한 일부 투자자들은 베선트 장관의 국채 재매입을 정부 차입비용을 억누르기 위한 금융억압의 한 형태로 평가하고 있다. 관련된 개념으로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가 있다. 이는 부채 규모가 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억제 대신 정부의 저비용 차입 지원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자극될 수 있다. 트위스트(The Twist) 베선트 장관의 재매입 전략이 실질적으로 장기채를 단기채로 대체하는 효과를 낸다면 이는 연준이 수십 년간 여러 차례 시행해온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의 재무부 버전에 해당한다. 연준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중앙은행 포트폴리오 내 단기 국채를 장기 국채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통해 장기 차입비용을 낮추고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목표였다. 베선트 장관은 자신이 트레저리 트위스트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략을 통해 단기 국채(T-Bill) 비중을 25%까지 끌어올리고 수익률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이체방크(DB)의 조지 사라벨로스 외환리서치 글로벌 총괄은 재매입 계획 발표 이후 "오퍼레이션 트위스트가 시작됐다"며 "재무부는 시장에서 듀레이션을 제거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면 단기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사실상 "연성 금융억압"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를 베선트 풋(Bessent Put)이라고 부른다. 풋옵션은 매수자가 정해진 가격에 특정 자산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 경우 시장에 대규모 매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트레이더들이 인지하고 있어 이에 맞서는 거래를 꺼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정책 및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집권 기간 투자자들이 결국 셀 아메리카(Sell America)로 향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 배경으로는 관세 정책,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 재임 당시 연준을 겨냥한 압박, 그린란드 병합 언급으로 인한 전통적 동맹 관계 훼손 등이 꼽힌다. 국가부채 증가와 같은 근본적인 취약 요인도 이런 흐름에 더해지고 있다. 30년물 국채 수익률은 8월 거의 2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수는 지난해 약 8% 하락했다. 다만 해외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미국 증시도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발전에 힘입어 잇달아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수익률곡선통제(Yield Curve Control) 장기채 재매입 규모를 늘리려는 재무부의 조치는 시장 원리에 따라 금리 수준이 결정되도록 두지 않고 당국이 차입비용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려는 정책과 이미 비교되고 있다. 미국·일본·독일·영국 10년물 국채 금리 추이 [자료=블룸버그통신] RBC블루베이를 비롯한 일부 투자자들은 국채 수익률이 통제 범위를 벗어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할지, 그리고 이것이 결국 연준에 금리 억제를 위한 압박으로 작용할지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연준은 이런 압박에 맞서 독립성을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워시 의장이 오랫동안 자산 매입 활용과 재정·통화 정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에 의문을 제기해온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연준의 협조 없이는 베선트 장관이 이끄는 재무부가 차입비용을 실질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시행한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의 엇갈린 성과는 반면교사로 꼽힌다. 당시 일본은행은 10년물 국채 수익률 방어에 나섰지만 그 결과 엔화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bernard0202@newspim.com 2026-08-3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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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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