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단계 파이프라인 기술수출 병행 전망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연간 기술수출 규모가 2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성과를 냈다. 글로벌 빅파마를 상대로 한 대형 계약이 잇따르며 국내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이 입증된 가운데 새해에도 기술수출 바톤을 이어받을 기업에 관심이 모인다.
1일 업계에 따르면 2025년 1월~12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 규모는 총 20조8350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치였던 2021년 13조3720억원을 넘어서는 수치다. 에이비엘바이오와 알테오젠 등 일부 바이오 기업들이 플랫폼 기술을 앞세워 조 단위의 기술수출을 이끈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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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엘바이오는 자체 개발한 뇌혈관 장벽(BBB) 셔틀 플랫폼 '그랩바디-B'를 기반으로 글로벌 빅파마와 지난해 두 건의 대형 계약을 성사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와 4조1000억원 규모에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일라이릴리와 3조7487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정맥주사(IV)를 피하주사(SC)로 바꾸는 제형 전환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알테오젠 또한 아스트라제네카의 자회사인 메드이뮨과 1조9553억원의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새해에도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수출 잇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플랫폼 기술력을 검증받은 곳들의 기술수출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테오젠은 최근 글로벌 제약사와 SC 제형 전환 기술 'ALT-B4' 관련 옵션 계약을 체결하며 추가 기술수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정 시점 이후 본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인 만큼 연내 후속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다수의 기술수출 실적을 보유한 에이비엘바이오도 추가 기술수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평가다. 회사의 그랩바디-B 플랫폼은 약물이 뇌혈관장벽(BBB)을 효과적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분자 전달 기술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해당 플랫폼은 중추신경계(CNS) 질환을 넘어 근육·비만 등 타 영역으로의 확장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기술수출 기대감을 높인다. 지난해 11월 릴리와의 기술이전 계약에서 릴리로부터 22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받았고,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이에 대해 "릴리의 지분 투자 목적은 근육 딜리버리 확장성에 중요한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랩바디-B 기반 신약 후보물질들의 임상 데이터가 쌓이며 플랫폼 확장성이 입증될 경우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향후 짧은간섭리보핵산(siRNA),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리오타이드(ASO) 등 다른 타깃에 대한 기술수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후 주가가 공모가 대비 4배 이상 상승하며 주목을 받은 알지노믹스 또한 차기 기술수출 주자로 꼽힌다. 리보핵산(RNA) 편집·교정 기술을 보유한 이 기업은 지난해 일라이 릴리와 1조9000원 규모의 RNA 플랫폼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며 기술 경쟁력을 한 차례 입증했다.
올해는 플랫폼 기술을 넘어 주요 파이프라인의 기술수출 소식이 들려올 것으로 기대된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 중인 'RZ-003'는 전임상 단계로 현재 글로벌 제약사와 물질이전계약(MTA)을 맺고 기술수출을 추진 중이다.
독자적인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한 리가켐바이오 역시 차기 기술수출 기대주로 꼽힌다. 항체 기술도입을 병행하며 다양한 타깃의 ADC 개발 라인업을 구축한 만큼, 기술수출 가능성이 있는 후보군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투지바이오와 인벤티지랩은 아직 조 단위의 기술수출 실적은 없지만, 플랫폼 경쟁력을 토대로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개발 협력과 파트너링 논의가 진전되면서 기술수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지투지바이오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플랫폼 '이노램프' 기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적응증의 약물 제형 개선 및 지속형 치료제 개발을 추진 중이다. 2023년 베링거인게일과의 협력 등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인벤티지랩은 장기지속형 주사제 기술을 기반으로 탈모치료제 등 자체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핵심 기술인 'IVL-DrugFluidic'은 생분해성 고분자와 약물을 미립구 형태로 제조해 체내에서 약물이 안정적으로 방출되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이를 토대로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개발 및 기술수출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도 MASH 신약 후보물질 'DD01'을 개발 중인 디앤디파마텍과, 기존 에이즈 치료제의 내성 문제를 극복한 차세대 항바이러스제 'STP0404(피르미테그라비르)'를 개발하고 있는 에스티팜도 차기 기술수출 주자로 거론된다.
면역항암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지아이이노베이션과 이뮨온시아, 경구용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치료제 임상 1상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한 일동제약도 기술수출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 중 하나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새해에는 플랫폼과 함께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을 중심으로 한 기술수출이 병행되는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며 "최근에는 ADC를 비롯해 빅파마들이 접근하는 모달리티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어 기술수출 시장도 점차 넓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어 "다만 이같은 흐름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를 이끌 혁신 기술 기반의 벤처들이 계속 등장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리스크를 감내하는 초기 투자와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이뤄져야 하고, 해외 자본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syki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