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RBI 개입 미약, 수출 경기 위해 루피 약세 용인 의도로 보여"
[방콕=뉴스핌] 홍우리 특파원 = 인도 루피의 약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90루피선을 넘어 달러당 91루피를 넘나드는 중이다. 인도 중앙은행(RBI)이 수출 경기 활성화를 위해 루피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달러 대비 루피 가치는 올해 약 6% 절하된 상태다. 11월에만 0.8% 하락한 데 이어 이달 현재까지 1.8% 추가 하락했다.
16일 거래 한때 루피 환율이 달러당 91.0837루피까지 치솟자(가치 하락) RBI가 나섰다.
17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은행 관계자들은 RBI가 이날 외환 시장에 달러를 대규모 매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힘입어 루피 환율이 RBI 개입 전 달러당 91루피 부근에서 거래 한때 89.75루피까지 하락했다가 (현지 시간) 오후 1시 50분 기준 90.28루피에 거래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RBI의 개입으로 루피 환율이 달러당 91루피 아래로 낮아졌지만 시장은 루피의 추가 약세를 점치고 있다. 루피가 올해 주요 통화 중 최악의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코탁증권의 통화 및 상품 연구 책임자인 아니냐 바네르지는 인도 매체 이코노믹 타임스(ET)와의 인터뷰에서 "인도 루피가 올해에도 세계 25~26대 통화 중 가장 약한 통화로 남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역시 "미국의 관세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통화는 인도 루피"라며 "인도와 미국 간 무역 협상 타결을 기다리는 투자자들이 인도에서 자금을 빼낼 가능성이 있어 (루피의) 추가 하락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올해 인도 증시에서 약 180억 달러(약 26조 6310억 원)를 회수했고, 채권 시장에서의 자금 유출도 이달 더욱 가속화했다.
미국의 50% 관세가 수출업체들의 달러 유입을 위협하는 반면, 견조한 수입은 달러 수요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시키고 있다며, 루피 약세가 빠르게 반전될 가능성은 낮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외국인 자본 유출과 루피 약세를 부추기는 주요 원인은 인도와 미국 간의 지지부진한 무역 협상이다. 협상 타결이 지연되면서 고율 관세가 장기화할 수 있고, 이것이 인도 수출 및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투자 자문 회사인 JB 드랙스 호노레의 아시아 거시 전략가인 비벡 라지팔은 "미국과의 수개월에 걸친 무역 협상이 아직까지 합의나 관세 인하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시장의 인내심이 전반적으로 바닥나고 있는 것 같다"며 "인도 자산에 투자하기에 좋은 진입 시점일 수 있으나 우선 시장이 관세가 일시적 조치일 뿐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바네르지는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 대한 국내 여론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무역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에 따른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과 글로벌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루피 하락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관심은 RBI에 모아지고 있다. 17일 달러 매도에 나섰지만, 예전만큼 환율 방어 의지가 강력하지 않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통화 가치 하락은 수출품의 달러 가격을 낮춘다. 때문에 미국의 고율 관세 충격을 완화해 수출 경기를 살리고자 RBI가 루피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네르지는 "RBI가 개입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며 "아마도 RBI는 수출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환율을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도의 지난달 대미 수출이 급반등했다. 50% 관세가 한 달 내내 부과된 첫 달인 9월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9% 감소했고, 10월에도 8.58% 감소했다. 그러나 루피 약세가 본격화했던 11월의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61% 급증하며 인도 전체 수출 증가율(19%)을 앞질렀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50% 관세는 매우 높은 것이라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루피 가치가 더욱 하락해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며 산제이 말호트라 RBI 총재가 지난 15일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루피 가치의 추가 하락에 대한 전망을 강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뭄바이 DBS 은행의 재무 담당자 애쉬시 바이디아는 "현재 핵심 문제는 심리적 요인이다. 루피에는 이미 많은 부정적 요인이 반영돼 있다"며 루피 환율이 달러당 90~92루피의 큰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hongwoori8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