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뉴욕 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는 '공산주의자'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눈높이에서 그러하다. 트럼프는 '왕(King)'이다. 그의 독선적 행보에 화난 반(反) 트럼프 진영의 시각에서 그러하다.
두 단어(공산주의자, 왕) 모두 민주공화정을 표방하는 미국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작금의 양분된 미국 사회(정치 지형)를 대변한다. 그 산물이기도 한 연방정부 셧다운은 40일째를 맞았다. 최장 기록이다. 여야는 조만간 대치국면을 끝내고 합의에 이를 테지만, 추세적으로 미국의 셧다운 빈도는 높아지고 진통의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역시 워싱턴 정가의 분열상을 반영한다.
지난주 맘다니가 뉴욕 한복판에서 승리를 자축하던 무렵 트럼프의 마가(MAGA) 진영은 극우 인사 닉 푸엔테스와 헤리티지 재단을 둘러싼 내홍으로 시끄러웠다. 미국 언론은 27세 청년 푸엔테스를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유대인 음모론에 심취한, 그리고 여성 혐오로 가득 찬 백인우월주의자"로 설명한다.
공화당 내에서도 별종 취급받던 푸엔테스는 한동안 온라인 세상에서 퇴출당했다가 최근 터커 칼슨(폭스뉴스 앵커를 지낸 친 트럼프 인사)의 팟캐스트에 출연하며 부활했다. 여성과 유대인, 흑인을 향한 그의 입담은 여전히 거칠었고, 마가 진영 내 호불호도 극명하게 나뉘었다.
논란의 불똥은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으로 옮겨붙었다. 푸엔테스의 부활을 도운 칼슨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자 헤리티지의 케빈 로버츠 회장이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즉각 재단 내부가 분노로 들끓었다. 지난 5일 로버츠 회장이 주재한 직원들과 대화에서는 어디 그런 인물들을 감싸고 도느냐는 비난과 로버츠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로버츠는 푸엔테스와 그를 도운 칼슨의 '문제성'을 인정하면서도 "2025년 현재, 그 악한 사람(푸엔테스)에게도 수백만의 청중이 있다. 그 청중 일부라도 우리 편으로 끌어오려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내년 중간 선거를 생각하면 '빅 텐트' 안에 품어야 할 인사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런 발상에 보수 성향 맨해튼연구소의 일리야 샤피로 선임연구원은 분노했다. 이제는 미국 보수가 극우 유튜버들과 "결별할 시점이 왔다"고 일갈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공화당)도 "노골적인 반유대주의이자 인종차별주의자에게 (칼슨이) 그런 무대를 제공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말했다.
보수 저변을 늘리고 싶었다는 로버츠 회장의 해명을 비웃듯 해리티지와 연을 끊겠다는 선언은 유대계 보수층과 반유대계 성향의 젊은 극우층(푸엔테스 지지층) 모두에서 잇따랐다.
전통적인 민주당 정서에서는 맘다니 역시 "너무 왼쪽으로 치우친" 이단아에 가깝다. 뉴욕시장 선거 초반 민주당 지도부가 좌파 포퓰리즘을 경계하며 맘다니 지지를 꺼렸던 이유다.
사실 지금의 맘다니를 만든 것은 팔할이 트럼프의 공(功)이다. 우주가 신묘한 기운으로 균형점을 찾아가듯 인간사도 한 쪽의 극은 다른 한쪽의 극을 부르며 묘한 균형을 이룬다.
미국 정치가 정(正)과 반(反)의 진자운동을 되풀이하다 한 단계 도약하는 합(合)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던지는 물음이자, 숙제다. 이는 내년 미국 중간선거의 중대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 극단의 해소와 교집합(중도)의 복원 여부.
이 물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은 기술진화의 과도기적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사회 구성원 다수의 '직감'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는 때때로 대량 실직의 고통을 수반한다. 인류는 결국 이를 극복하고 더 생산적으로 진화했지만, 과도기의 고통이 길어질 때면 잔혹한 방식(내전 혹은 외부 전쟁)을 서슴지 않았다. 불행히도,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정치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상처가 극한으로 벌어진 다음이었던 경우가 허다하다 - 뒤늦은 반성과 함께.
누구보다 노벨 평화상을 갈구하면서도 국방부를 전쟁부로 개명한 트럼프식 아이러니가 달갑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전쟁부가 수행할 전쟁이 어떤 성격의 전쟁인지는 내년 가을 중간선거를 전후로 좀 더 드러날 수 있다.
한국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 10월20일자 보고서에서 "트럼프의 전쟁부는 외부 전쟁보다는 내부로부터의 혼란과 분열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력 재편(국내 치안과 국경 경비)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바 있다. 1789년 전쟁부가 탄생했을 당시의 주요 임무 역시 미국 독립 직후의 '내전 위험 억지'였다.
설사 미국 내부 혼란을 겨냥한 포석이라 해도 그 행마가 미칠 파장은 지구적이기 쉽다. 패권국의 내부 문제는 종종 외부 세계로 분출되거나, 외부 세계를 통해 해소되곤 했다.
osy7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