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빈집 재생 우수사례 '포레스트제이·질그랭이 센터' 방문
민간이 옛 외양간 재생…관광객 찾는 마을 대표 카페로 전환
정부 지원으로 옛 건물 리모델링…유엔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
송미령 장관 "농촌 빈집, 문제 사안 아닌 새로운 기회 공간으로"
[제주도=뉴스핌] 김기랑 기자 = 제주 농촌 지역에 방치돼 있던 빈집들이 정부와 민간의 노력에 힘입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의 옛 외양간은 리모델링을 거쳐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카페이자 숙박공간으로 변신했고, 제주시 세화리의 오래된 건물은 일과 휴양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워케이션 센터로 탈바꿈했다.
이는 버려졌던 공간을 재활용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도시 재생 효과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들로 손꼽힌다. 정부는 이러한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 내년부터 관련 예산을 크게 확대하는 한편, '농어촌 빈집 정비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제도적 기반도 강화할 방침이다.
◆ 낡은 외양간이 감성 카페로…"오래된 공간이 주는 매력"
지난 3일 오후 4시, 제주공항에서부터 남쪽으로 약 40분을 달려 서귀포시 안덕면에 소재한 작은 마을 화순리를 찾았다. 마을 내에서도 깊숙이 들어가 한적한 길가를 따라가다 보면 의외의 공간에 홀로 서 있는 건물을 마주할 수 있다. 민간이 빈집을 재생한 성공적인 모델로 손꼽히는 '포레스트제이카우셰드' 카페다.
포레스트제이카우셰드는 본관·별관으로 나뉘는 카페 건물과 숙박공간, 작은 감귤밭 등을 갖고 있다. '카우셰드(cowshed)'라는 이름답게 당초 외양간이었던 공간을 카페 별관으로 리모델링하고, 과거에 창고와 숙소로 사용되다가 빈집으로 방치 중이던 공간들은 카페 본관으로 변모시켰다. 현재는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 사이 이름난 카페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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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제이카우셰드 카페 전경 [사진=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2025.09.06 rang@newspim.com |
방수연 포레스트제이카우셰드 대표는 빈집으로 방치되던 이 공간을 오랜 시간 발품을 들여 찾아낸 뒤, 어떻게 되살려낼지를 직접 구상하고 실현해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흰 도화지처럼 준비된 부지에 신축 건물들을 세우는 게 시간·재정적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인 선택이었겠지만, 그는 보다 품이 들더라도 빈집들을 고쳐 사용하는 것을 택했다. 이 공간으로 들어오려면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대문조차 옛 모습 그대로 남겨뒀다.
이에 대해 방 대표는 "땅을 알아보면서 제일 마지막으로 본 곳이 여기였는데, 저 대문을 들어오는 순간 딱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무조건 살려서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며 "원래 이곳에서 노부부가 귤 농사를 하면서 사셨는데, 외양간도 할아버님이 직접 지으셨다고 들었다. 이게 저에게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카페는 감귤밭 등을 포함해 총 800평 규모로, 본관과 별관 모두 '제주'스러운 감성으로 꾸며졌다. 낡은 외양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되 그 위에 현대적인 감성을 덧입히면서 투박함과 세련됨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창가에 앉아 오래된 돌담과 감귤밭을 바라보고 있으면, 과거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오늘까지 이어지는 한 조각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두고 시간을 보내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빈집 재생의 의미를 몸소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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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제이카우셰드 카페 전경 [사진=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2025.09.06 rang@newspim.com |
이처럼 방 대표는 무엇보다 옛것이 주는 시간의 무게를 강조했다. 그는 "신축으로 만들거나 기촌 건축물을 따라하는 것보다 버려진 공간을 되살리는 데 장점이 있다"며 "이끼나 넝쿨, 녹슨 흔적 등은 하루아침에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래된 공간만이 지닌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쓰는 게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부가 빈집을 단순히 철거 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자산으로 바라보며 재생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민간의 창의적인 재생 아이디어가 정책적 지원과 결합될 때, 빈집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함께 현장을 방문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빈집은 활용하기에 따라 문제적인 사안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주는 자원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며 "민간이 빈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가꿔나갈 수 있도록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나머지는 민간이 할 수 있도록 판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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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이 3일 포레스트제이카우셰드에서 방수연 대표(왼쪽)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2025.09.06 rang@newspim.com |
◆ 주민 협동조합이 살려낸 옛 예식장…전 세계 주목 사례로
지난 4일에는 제주에서 빈집을 재생한 또 하나의 성공적인 현장을 찾았다. 이날 오전 11시에 도착한 제주 동쪽 끝 마을 세화리. 전국 당근 생산량의 65%를 책임지는 농촌이자, 일제강점기 해녀 항일운동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이 마을 한복판에 버려진 건물이 주민들의 힘으로 새롭게 살아난 사례인 '세화 질그랭이 워케이션 센터'가 있다.
이 건물은 한때 예식장과 피로연장으로 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쓰임새를 잃어 결국 폐허가 된 채 문을 닫았다. 하지만 2015년 농식품부의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계기로 주민들이 힘을 모으면서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주민 477명이 협동조합을 꾸려 자본과 아이디어를 함께 모으자, 마을의 골칫덩이는 모두가 즐겁게 방문할 수 있는 거점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2층은 카페로, 3층은 공유 오피스 형태의 워케이션 사무실로, 4층은 숙박 공간으로 각각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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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 질그랭이 워케이션 센터 전경 [사진=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2025.09.06 rang@newspim.com |
양군모 세화마을협동조합 PD는 "농식품부의 사업에 선정된 이후, 주민들이 모여 마을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얘기하면서 공동체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며 "주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마을 사업을 만들자는 게 출발점이었다. 주민 모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도록 했고, 지금도 협동조합은 문턱 없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조합원은 500여명으로 늘었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꾸준히 흑자를 내면서 연 매출 5억~6억원에 순이익 1억5000만원을 창출하는 법인으로 자리잡았다.
센터는 단순히 일할 공간을 넘어 체류형 프로그램과 로컬 소비 확산의 거점으로도 기능한다. 현재 구좌 당근을 활용한 착즙 체험과 해녀들과 함께하는 바다 체험, 오름 웰니스 투어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기업 차원에서 워케이션으로 방문하는 직장인들은 마을 식당과 숙박시설 등을 통해 주간 기준 1000만원 가량의 소비를 지역에 남기고 있다. 특히 LG전자와 현대중공업 등 4곳은 매년 수백명 규모로 방문하는 단골 기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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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 질그랭이 워케이션 센터 전경 [사진=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2025.09.06 rang@newspim.com |
무엇보다 주민 주도의 실험이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질그랭이 센터는 농식품부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정책 우수사례'와 행정안전부의 '로컬 브랜딩 우수사례'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유엔 관광청이 선정한 '최우수 관광마을'로 이름을 올렸다. 단순히 빈집을 재활용한 성공담에 그치지 않고, 주민 참여와 정부 지원이 맞물리며 세계가 주목하는 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농촌 재생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양 PD는 "농식품부와 행안부 등에서도 인정을 받았지만, 가장 큰 성과는 유엔 관광청으로부터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된 것"이라며 "이 소식을 들은 70대 어르신들이 '평생 보잘것없다고만 생각했던 세화가 전 세계 관심을 받게 됐다'며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농식품부의 사업이 마중물이 돼 세계에까지 인정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 '철거'에서 '활용'으로…"민간이 고쳐쓰는 사례 확산할 것"
정부도 농촌 빈집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행정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의 빈집은 13만4000호, 이 가운데 농어촌 빈집은 7만8000호로 집계됐다. 이 중 62%에 해당하는 4만8000호는 리모델링을 통해 활용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38%인 3만호는 철거가 불가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매년 약 8000호를 철거해 왔지만, 새 정부는 단순 철거에서 벗어나 활용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민간이 참여하는 귀농귀촌 플랫폼 '그린대로' 빈집 은행이 공식 출범했다. 부동산 플랫폼과 연계해 거래 가능한 빈집을 등록·중개하는 방식으로, 개시 직후 전국에서 70건이 등록됐다. 현재 19개 시·군이 참여하고 있으며, 138명의 지역 공인중개사가 연결돼 빈집 활용을 돕고 있다. 정부는 이런 플랫폼을 통해 귀농·귀촌 희망자와 청년 창업자 등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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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빈집은행 추진 체계도 [자료=농림축산식품부] 2025.04.23 plum@newspim.com |
아울러 정부는 빈집을 주거 공간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워케이션 센터와 마을 도서관, 문화 공간 등 다양한 재생 모델로 개발 중이다. 전남 강진·경북 청도·경남 남해 등에서는 빈집을 활용한 마을 호텔과 공유 오피스, 창업 공간 등의 사업이 이미 추진되고 있다. 재원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20%를 분담하고 나머지는 정부·지자체·민간이 함께 투자하는 방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제도와 예산 지원도 강화한다. 농식품부는 타 부처들에도 나눠져 있는 빈집 정비 사업을 전담 부처로서 일원화해 추진하는 한편, 예산 규모를 올해 15억원에서 내년 123억원으로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여기에 '농어촌 빈집 정비 특별법' 제정을 연내 추진해 정비 사업 특례와 지원기구 설치, 전국 통합 정보 제공 체계 마련 등을 법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농촌재생 거점마을' 시범 사업이 본격화된다. 전북 김제·고창과 경남 밀양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전국 111개 시·군에 농촌재생 거점마을을 조성해 창업·관광·체류형 프로그램을 확산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농촌 빈집을 단순한 문제 주택이 아니라 지역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 공간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송 장관은 "7만8000채에 달하는 농촌 빈집 가운데 철거가 불가피한 곳은 정비하되, 민간이 자발적으로 고쳐 쓰는 사례는 적극 확산해야 한다"며 "제주도의 사례처럼 민간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빈집을 재생하는 모습을 널리 알려, 농촌 빈집이 문제 주택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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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