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뉴스핌] 이형섭 기자 = 9년간 항공사 사무장으로 수천 명의 승객을 맞이했던 젊은 여성은 어느 날 대학원 연구실에서 '데이터의 힘'을 발견하며 전혀 다른 길 위에 섰다. 그리고 다시 스타트업 현장에서 정책 변화의 냉혹함을 몸소 겪으며 결국 정치라는 무대에 서기로 결심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원주 출신 김민혜씨다.
"정책이 바뀌면 현장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그걸 제가 몸으로 겪었습니다.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정치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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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스핌] 이형섭 기자 = 김민혜씨. 2025.09.02 onemoregive@newspim.com |
김민혜씨의 첫 사회는 에어차이나 객실승무원이었다. 9년간 전 세계 하늘을 누비며 쌓은 경험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의 본질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우연히 접한 빅데이터 연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논문을 쓰면서 데이터가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교수님의 추천으로 들어선 빅데이터 세계가 제게 두 번째 직업을 열어준 셈이죠."
이후 그는 IT 기반 스타트업 레드테이블에서 5년 넘게 근무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관광과 의료를 결합한 글로벌 서비스를 기획·운영하며, 공공 지자체 및 정부 부처와 협력하는 여러 프로젝트도 주도했다.
◆ "정책은 곧 현장이다" 정치 입문의 이유
그러나 스타트업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권 교체와 함께 뒤바뀌는 정책이 모든 사업 환경을 건드렸다.
"문재인 정부 시절 1년 동안 준비한 사업이 정권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전면 백지화되는 걸 보았습니다. 말도 안 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이었죠. 현장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였다. 국가 R&D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렸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정부 R&D 프로젝트를 통해 인건비 및 운영자금을 충당했던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그의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구직에서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보고서를 쓰던 그는 갑작스러운 인력 구조조정 속에 '영업 1선'으로 뛰어야 했다.
"한 달 동안 100개 매장을 직접 개척했습니다. 발로 뛰지 않으면 회사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의료관광 서비스 '메디컬 트래블 코리아'를 런칭하면서 회사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과정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정책은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곧 민생이고, 현장이다.
◆ "데이터와 기술로 민주주의를 혁신할 수 있다"
정치 입문을 결심한 김민혜씨는 이번에 민주당 당내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한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당내 민주주의 강화다.
그는 민주당 공식 홈페이지의 당원 소통 공간 '블루웨이브'를 예로 든다. "현재 블루웨이브는 서버 속도가 느려 의견 개진 자체가 쉽지 않고, 지도부가 실시간으로 살필 구조도 아닙니다. 이래서는 평당원의 목소리가 당 운영에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그의 해법은 명확하다.
블루웨이브 시스템을 고도화해 누구나 쉽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빈도, 중요도, 주요 키워드를 추출, 당 지도부가 이를 즉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도부는 늘 바쁩니다. 그럼에도 당원 의견을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면, 평당원의 민주적 참여가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 "정치는 결국 삶을 바꾸는 일"
김민혜씨는 지명직 중심으로 돌아가던 기존 당 구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치 경험이 오래된 분들의 판단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활동해 오던 평범한 국민들의 목소리도 당 운영에 반영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구조가 마련되어야 민주당도 혁신과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항공기 객실에서, 데이터 연구실에서, 그리고 스타트업 최전선에서 그는 늘 '사람'을 상대하며 답을 찾아왔다. 그가 경험한 것은 책상에서 공부한 이론이 아니라, 살벌한 현장의 목소리다.
그 경험이 정치로 이어진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는 누구보다 세밀하게 정책의 파급력을 알고, 그 현미경 같은 시선으로 '민생 정치'를 말한다.
"현장의 부조리를 바꾸기 위해 정치에 나섰습니다."
짧지만 단호한 그녀의 대답은 국회와 정당의 공허한 언어들 속에서 진부하지 않은 울림을 남긴다.
onemoregiv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