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 경선, 이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충성경쟁
거수기 땐 민심과 멀어져...윤 정권과 다를바 없어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3선 박찬대 의원(인천 연수갑)과 수석최고위원을 지낸 4선 정청래 의원(서울 마포을)의 대표 경선은 찐명 경쟁의 장이다. 당의 비전과 청사진보다는 누가 더 이재명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냐가 주요 화두다. '명심은 박 의원'에 있다는 설과 '정청래가 이재명'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두 사람의 출마 회견은 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 경쟁의 장이었다. 박 의원은 "지금까지는 이재명이 박찬대의 곁을 지켜줬지만 이제부터는 박찬대가 이재명의 곁을 지켜줘야 한다고 마음먹었다"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정 의원의 A4 용지 5쪽 분량 출마 선언문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저는 정치의 방향과 속도가 맞는 동지이자 베스트 프렌드"라며 이 대통령 이름을 33번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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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 박찬대 의원. 2025.06.22 ycy1486@newspim.com |
이런 두 사람의 충성 경쟁에 여당이 거수기 정당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개헌 말고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167명의 의원을 거느린 거대 여당이 명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당은 자칫 민심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명 핵심이다. 지난해 친명계의 전폭적인 지지로 사실상 추대 형식으로 원내대표로 선출된 박 의원은 계엄·탄핵 정국에서 당시 이재명 대표와 호흡을 맞췄고 이 대통령이 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에 출마했을 때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아 6·3 대선을 이끌었다. 정 의원 역시 2022년 수석최고위원에 선출돼 이재명 대표와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회견 화두도 이 대통령이었다. 박 의원은 "당·정·대 관계를 원팀 수준으로 강화하고, 정치공세 차단부터 입법 및 정책 시행 전반에 걸친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력으로 하나하나 성과를 내겠다"며 "이재명 정부의 성공에 당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의 인연도 부각했다. 박 의원은 이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춘 점을 강조하며 "이미 검증된 이재명-박찬대 '원팀'이 앞으로도 원팀으로 과제를 완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안에 검찰, 사법, 언론 3대 개혁 모두 입법 성과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2022년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캠프의 수석대변인이었다. '이재명의 입'으로 여러분을 만났던 그때부터 대선 패배, 단식, 구속 위기, 테러 등 이재명의 위기는 곧 박찬대의 위기였고 국회의원과 당 대표 출마, 연임 등 이재명의 도전은 곧 박찬대의 도전이었다"고 했다.
그는 "제가 원내대표로 실천하는 개혁 국회를 이끈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늘 곁에는 이재명이라는 큰 나무가 든든히 서 있었다"며 "지금까지는 이재명이 박찬대의 곁을 지켜줬지만 이제부터는 박찬대가 이재명의 곁을 지켜줘야 한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정 의원은 "3년 전 이재명 대통령-정청래 당 대표를 꿈꿨으나, 그 꿈을 미루고 이재명은 당 대표로, 정청래는 최고위원으로 무도한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과 맞서 싸워야 했다"며 "저는 윤석열 정권의 야당 탄압·정적 제거, 이재명 죽이기에 맞서 맨 앞에서 싸웠고 12·3 계엄 내란 사태에 맞서 국민과 함께 최선봉에서 싸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민주당 당대표로 이 대통령과 한 몸처럼 행동하겠다"며 "이 대통령의 운명이 곧 정청래의 운명이다. 이재명이 정청래이고, 정청래가 이재명"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내란 종식, 정권 교체, 민주정부 수립이었고 정권은 교체돼 이재명 민주정부가 수립됐다"며 "이제 남은 시대적 과제는 조속한 내란 종식과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누구보다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동지이자 베스트 프렌드인 자신이 최고의 당정 관계로 정부와 호흡을 맞추겠다"며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고 했다.
왕수박 논란도 찐명 경쟁의 산물이다. 최근 민주당 지지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 의원이 2018년 발언한 영상이 공유되며 '왕수박' 논란이 빚어졌다. 영상에서 정 의원은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이재명 지사가 이야기를 하면 항상 분란이 일어난다"면서 "이 지사가 그냥 싫다"고 했다.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뒤 친문 전해철 의원과 웃는 사진도 공유하며 "정 의원의 실체" "정 의원이 '수박'이라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이에 정 의원은 22일 자신의 SNS에 유튜브 채널 '이동형 TV' 이이제이에 출연한 장면을 공유하며 "일부 강성 지지자로부터 '왕수박'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 장면"이라며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이어 "(2023년 9월 21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뒤 전해철 의원과 웃는 사진이 있다. 정청래가 이럴 수 있냐'더라"면서 "그때 (의총장으로) 들어가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웃은 장면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정 의원은 "그때는 어떻게 하면 가결을 막을까 싶어, 담당한 전 전 의원에게 도와달라고 하며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했다"며 "나는 겉은 물론이고 속도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충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전당대회는 8월 2일이다. 선거인단 반영 비율은 대의원 15%, 권리당원 55%, 일반 국민 30%다. 민주당 대표의 임기는 2년이지만, 이번은 이 대통령이 지난 4월 대표에서 물러나 치르는 보궐선거이기 때문에 남은 임기(1년) 동안만 대표직을 맡는다.
친명인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대표가 된다. 대표 경선은 이 대통령에 대한 치열한 충성 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당정대 원팀은 중요하다. 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유기적인 협력을 하는 것은 여권의 성공을 위해 필수지만 이런 충성 경쟁은 자칫 거대 여당이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재명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막강하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지적을 받은 총선 공천을 통해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이재명당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장악한 최강의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당정의 건강한 협력 관계가 아니라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하면 민심과는 멀어질 수 있다. 민심 대신 대통령의 심기를 먼저 살피는 비정상적인 당정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이 척결 대상으로 삼았던 윤석열 정권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며 거수기 노릇을 했던 과거 여당으로 회귀해서는 곤란하다. 민심이 모든 의사 결정의 토대가 되는 건강한 협력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leej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