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재무 정보 공개 확대…경영 전략에도 ESG 반영
전문가 "교육·유예기간 필요"…단계적 도입 목소리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 공시 의무화와 평가지표 법제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면서 국내 자본시장과 상장기업의 경영 환경에 미칠 제도적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이 당선인은 대선 공약을 통해 ▲ESG 공시 및 평가지표의 법제화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의 ESG 투자 기준화 ▲기후·환경 관련 재무정보 공시(TCFD) 의무화 ▲ESG 통합평가지표 마련 및 법적 구속력 부여 ▲공공기관의 ESG 이행 평가 확대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ESG를 '자본시장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국내 기업 경영에 지속가능성 요소를 제도적으로 포함시키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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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제시한 ESG 정책은 금융당국의 기존 계획과도 맞닿아 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2026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이후 일정 기준을 갖춘 중견·중소기업까지 점차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이는 국내 ESG 공시 체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일환으로 현재 자율에 맡겨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법적 의무로 전환하는 제도적 기반이 된다.
국제적으로도 ESG 공시 의무화는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26년부터 역내외 기업에 지속가능성 공시(CSRD)를 의무화할 예정이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기후 리스크 정보 공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일본 역시 지난해부터 TCFD(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기반의 공시를 본격 시행하고 있다.
ESG 정보공시가 제도화되면 기업은 비재무 데이터를 수집·관리하고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경영 전략 수립과 리스크 관리 체계에도 ESG 요소가 통합돼야 하며, 그 결과는 평가기관 및 투자자에게 공개된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이미 ESG 경영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현재 코스피 대형주를 중심으로 ESG 대응은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정기 발간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는 등 구체적 ESG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부터 '지속가능성 위원회'를 이사회 산하에 설치했고, SK하이닉스는 과학기반 감축 목표(SBTi)에 가입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ESG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녹색채권 발행과 함께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반면 코스닥 상장기업들의 대응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한 코스닥 기업은 전체의 10%에 미치지 못한다. ESG 경영이 낯선 중소기업의 경우 내부 조직이나 인력 기반이 미비해 제도 도입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학계와 실무 전문가들은 단계적인 제도 도입과 맞춤형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아직 많은 기업들이 ESG 공시 체계나 데이터 축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며 "시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유예기간과 중소기업 대상 교육·컨설팅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SG 정책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실행 의지는 현장 행보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달, 인천 남동산단에 위치한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업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순환경제 기반의 녹색산업은 미래 경쟁력"이라며 "ESG 기준에 부합하는 산업에 대한 정책금융 및 공공조달 연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공약에는 폐배터리, 다회용기, 바이오플라스틱 등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 및 제도적 지원 방안도 포함돼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SG는 이제 투자자 보호와 기업 리스크 관리를 위한 글로벌 기준이 되고 있다"며 "공시 체계가 정비되면 해외 투자자들의 접근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nylee5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