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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셀럽에 길을 묻다] ② 황영조 감독 "마라톤은 저에게 불구덩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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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1편에서 이어짐) -장환수 기자: 한국 기록을 처음 세우고, 물론 나중에 한 번 더 세우시지만 바르셀로나로 바로 가지 않습니까. 거기서도 보면 일본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지 않습니까. 일본 선수가 2등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손기정 선생님이 1930년대에 최초로 30분 벽을 깨고 일장기를 달고 뛰었지만 대한민국 사람들한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거 하고 우리 황 감독님하고 일맥상통하거나 평행이론 같은 게 존재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손기정과 황영조의 평행이론

황영조 감독: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 금메달을 딸 때도 2등 선수가 일본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도 모리시타 선수가 은메달을 땄고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때도 하야타 선수가 은메달을 땄습니다. 이름을 다 기억하죠. 레이스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그런데 이제 바르셀로나 올림픽 같은 경우에는 손기정 선생님께서 바르셀로나 몬주익 경기장에 와서 직접 라이브로 생전에 보셨죠. 당시 손기정 선생님께서 늘 우리 후배 마라토너들한테 이야기한 게 내가 죽기 전에 우리 대한민국 선수가 금메달 따는 모습을 보는 게 내 인생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였잖아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시기였을 때 손기정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고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고,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딸 수밖에 없는 참 슬프고 아픈 금메달이죠. 기억하고 쉽지 않은 우리의 역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을 제가 56년 만에, 그것도 아프리카 선수가 아닌 일본 선수와 10km를 경쟁하면서 따냈거든요. 제가 질 수도 있는 게임이었어요. 저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몬주익 언덕에서 진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선수만큼은 꼭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뛰었고,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손기정 선수하고 저하고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면 당시 시상대에 올라간 선수가 1등은 한국이고, 2등은 일본, 3등은 독일이었습니다. 손기정 선수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일본 선수가 3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회 날짜도 8월 9일로 같습니다. 장소도 같은 유럽이고요.

-장환수 기자: 정말 특별한 인연이네요.

황영조 감독: 아주 그렇죠. 어떻게 보면 손기정 선생님하고 저하고는 어떻게 보면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그런 상황이었죠.

-장환수 기자: 그리고 족저근막염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셨는데. 부상이 사실은 그전부터 조금씩 앓고 있었다, 고질병이었다는 말도 있는데요. 족저근막염이 우리 황 감독님의 활짝 핀 꽃을 더욱 만개시키지 못하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황영조 감독: 제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가기 전에 이미 족저근막염이 왔어요. 저는 워낙 파워풀하게 뛰는 주법을 구사하는 선수였습니다. 제가 킥이 좋아요. 그러다 보니까 훈련 강도도 세고 훈련 량이 많다 보니 발바닥에 족저근막염이 왔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기억하기로 그때는 자석 같은 거 '빠삐 자기방'이라고 해가지고 그걸 막 붙이고 혈을 돌리면 빨리 나아진다 해서 발바닥까지 참 무식하게 붙이고 뛸 정도였어요.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서울 여의도 본사 스튜디오에서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얘기하고 있다. 2024.10.08 zangpabo@newspim.com

◆올림픽 가기 전부터 앓았던 족저근막염

그러면서까지 운동을 했는데 이 족저근막염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또 첫 발을 내디딜 때 바늘로 쑤시듯이 아파요. 고통스럽습니다. 그 정도로 이 족적근막염이 심하게 왔어요. 그래도 올림픽은 진짜 4년에 한 번씩 오는 기회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부상을 안고 준비를 한 겁니다. 제가 뭐 운이 좋아서 이렇게 금메달을 땄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견뎌내고 금메달을 딴 거예요.

족저근막염을 저는 그런 고통을 죽을병은 아니라는 마음을 갖고 훈련을 했고요. 올림픽을 계속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금메달을 따게 된 거죠. 제가 뭐 엄청나게 좋은 컨디션을 가지고 준비가 잘 돼가지고 금메달 딴 건 아니었어요. 부상을 안고도 연습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거죠.

-장환수 기자: 족저근막염조차도 자신에게 찾아온 축복일 수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황영조 감독: 축복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죽을병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저는 멘탈을 가다듬고 그걸 극복한 거죠.

-장환수 기자: 부상이 온 뒤에 1년 4개월이나 공백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 1년 4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마라톤을 하지 않았는데, 다시 한국기록을 세웠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참 궁금합니다.

황영조 감독: 그렇죠. 족저근막염 수술을 하고 나서 저는 운동화를 신을 수가 없었죠. 오랜 시간 회복기를 가졌고, 93년도에는 제가 시합을 뛰지 못했죠. 그러고 나서 다시 훈련을 진행했죠. 사실 훈련 시간은 좀 짧았습니다. 충분한 훈련을 하지 못했음에도 다시 2시간 8분 9초로 한국 기록을 경신하고, 그 해에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까지 이어져 금메달을 따 가지고 왔죠.

몸이 기억을 합니다. 제가 부상으로 운동은 못했지만 그전에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정상적인 운동이 아니었던 거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2시간 13분 23초로 우승을 했는데 섭씨 30도가 웃도는 그런 더운 날씨였고요. 마지막 오르막이 상당히 가팔라서 남산 같은 코스를 뛰어 올라갔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기록은 안 나왔죠. 그런데 그때 제가 훈련을 해뒀던 게 부상에서 돌아와서도 8분대까지 그냥 간 거죠. 사실 제가 당시에 정상적인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제가 볼 때는 상당히 좋은 기록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뭐 그런 아쉬움은 좀 갖고는 있습니다.

-장환수 기자: 세계 기록까지 나왔을 것 같은데요.

황영조 감독: 예. 당시 세계 기록이 2시간 6분 50초였습니다. 제가 올림픽 가서 금메달 딸 때 참가한 선수는 2시간 7분대, 8분대 선수들이었죠. 요즘 같으면 지금 마라톤 기록이 2시간 0분대까지 갔으니까, 못해도 2시간 1분대나 2분대 기록으로 제가 올림픽에 나간 거죠. 지금 한국 마라톤은 10분 안에도 못 들어오고 있는데 그만큼 제가 세계 톱클래스에 가 있었던 선수였죠.

◆"마라톤은 결국 스스로 하는 겁니다"

-장환수 기자: 지금 우리 한국 선수들은 2시간 10분대 벽조차도 못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감독님께서 25년간 지도자로 활동하고 계신데 감독님을 비롯한 우리 한국 지도자들이 문제가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황영조 감독: 글쎄요. 제가 생각할 때 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인도자 역할을 하는 거예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는 건 선수가 해야 되는 거예요. 마라톤은 팀플레이가 아니에요. 야구 축구 이런 것은 감독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선수기용을 한다든가 그래서 어떻게 저 팀을 분석해서 이길 건가를 연구해야 되지만 마라톤은 본인이 뛰는 거예요. 연습이 됐으면 그냥 시합 뛰는 거예요. 연습이 안 된 선수에게 시합 가서 감독이 아무리 좋은 지시를 한다 해갖고 됩니까.

내 지시대로 뛰면 다 금메달 따죠. 이거는 본인한테 영향력이 충분하게 가게 해야 하는 스포츠예요. 물론 훈련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선수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파악해갖고 최대치를 끄집어내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긴 합니다만 결국은 선수가 해야 되는 운동이거든요.

저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저희 팀 선수들은 연봉이 3000만 원 넘어가는 선수가 한 명도 없어요. 대한민국에 팀이 90개 가까이 되는데 저희 팀이 제일 열악해요. 요즘은 선수들이 좀 뛴다 하면 계약금 1억에 연봉 7000만 원은 맞춰줘야 돼요. 근데 저희는 뭐 계약금은커녕 연봉이 3000만 원, 2000만 원대를 주고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어떻게 우승을 합니까. 말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걸 사람들은 몰라요.

황영조는 잘 뛰었지만 선수는 못 키운다. 좋은 선수를 데려와야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좋은 선수 데리고 간 팀도 지금 올림픽도 못 나가고 있는데요. 그래서 저는 할 얘기 다 하는 사람입니다. 알다시피 제가 뭐 남 눈치 보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장환수 기자: 자 다시 돌아가시죠. 감독님께서 빠른 은퇴를 하시고 그 이후의 삶은 사실 일반 팬들은 잘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황영조 감독: 1996년도에 운동화를 벗고요. 그해 대한민국 국가대표 꿈나무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가 됐습니다. 꿈나무 코치 2년 하고요. 이후 국가대표 후보 팀인 상비군 선수들을 지도하는 중장거리 코치를 이어서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00년도에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으로 맡아 현재까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국가대표 코치, 감독, 마라톤 기술위원장, 대한육상연맹 이사, 대한체육회 이사 등 관련된 일들을 쭉 해왔습니다.

-장환수 기자: 은퇴한 뒤에도 마라톤을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황영조 감독: 네, 저는 은퇴 이후에 현재까지 계속 현장에서 선수 지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 2024.10.08 zangpabo@newspim.com

◆"한창 나이에 은퇴했지만 한 순간도 마라톤을 떠난 적 없어"

-장환수 기자: 이봉주 선수가 최근에 근육이 굳는 난치병을 앓았는데 이봉주 선수랑은 한 번씩 만나십니까.

황영조 감독: 이봉주 선수가 아주 사랑하는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갔다 왔고요. 봉주는 뭐 가끔 행사장에서도 만날 때도 있고, 마라톤 대회 때도 같이 게스트로 와서 만날 때도 있고요. 사실 이봉주 선수와 저하고 관계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수도 있는데요. 이봉주 선수의 부인이 제 중학교 동창입니다. 저희 고향집에서 둘이 처음 만났어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하게 되죠. 저하고는 같이 운동을 했고, 보스톤 마라톤 한국 기록 세울 때도 이봉주가 같이 참가했습니다.

96년도에 제가 은퇴하면서 이봉주 선수가 제 뒤를 이어서 한국 마라톤을 끌어줬죠. 사람들이 저하고 이봉주 선수하고 안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봉주하고 저하고 안 친할 이유도 없고, 나쁜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좋은 친구로서 서로 잘될 수 있게끔 격려하고 그런 친구입니다. 제가 골드클래스라는 유튜브를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뭐합니다만 러닝을 많이 알리고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봉주도 골드클래스 채널에 불러 저희의 이야기를 좀 해야 되지 않겠나, 또 이렇게 사람들이 오해가 있는 부분은 좀 풀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장환수 기자: 이봉주 선수랑은 참 특별한 인연이군요. 우리 황 감독님이 없었으면 결혼을 못 하셨을 수도 있다는 농담이 나올 만하네요.

황영조 감독: 못하지는 않았겠지만 저로 인해서 그렇게 또 인연이 돼가지고 결혼까지 하게 되고 또 같은 팀에서 운동도 했고 한솥밥도 먹었지요.

-장환수 기자: 코오롱 말씀이죠.

황영조 감독: 그렇습니다. 저는 좀 일찍 시작해 일찍 떠났고, 이봉주는 오랜 시간 뛰면서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죠. 선수로서 많은 노력을 했고. 참 훌륭한 선수죠.

-장환수 기자: 최근 마라톤 열풍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데 지도자로서 청년들이나 아니면 또 우리 젊은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팁이라는 게 있다면 엘리트와 순수 아마추어 동호인으로 나눠서 말씀해 주시죠.

황영조 감독: IMF 때 마라톤을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되면서 붐이 일었는데 그때 실직하신 분들이 희망을 찾고자 마라톤을 선택해서 도전했죠. 그래서 당시엔 20대, 30대는 소수였고 40대, 50대가 많았고요. 최근엔 20대가 상당히 많습니다. 러닝은 우리 건강에 상당히 좋고,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아름다운 몸을 만들고 싶어 하죠. 가장 좋은 게 러닝 다이어트거든요. 러닝을 통한 다이어트가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고요.

러닝은 잘 뛰면 보약이 되는데 잘못 뛰면 독이 될 수도 있죠. 제대로 알고 러닝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만 보고 뛰면 되는 심플한 운동인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거든요.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잘 알고 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장환수 기자: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황 감독님한테 직접 문의해 보시면 되겠군요. 흔히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곤 합니다.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황영조 감독: 마라톤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인생에 비유하는데 제가 걸었던 마라톤이란 운동은 '정진'이었던 것 같아요. 한 발 한 발 나를 다스리고 좀 더 강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거든요. 멘탈을 계속 잡아나가야 되는 겁니다. 몸을 끌고 가는 것은 마음이잖아요. 정신이잖아요.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견디고 또 견디면서 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야기합니다. 제가 왜 빨리 은퇴했고, 그만두고 싶었느냐, 제 인생의 마라톤은 어땠느냐 하면 항상 불구덩이였어요. 산 사람을 불에다 집어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엄청나게 고통스럽잖아요. 그런 고통을 감내할 때 뭔가 되는 거지, 그냥 쉽게 적당히 해서는 안 되는 거거든요. 젊은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도 극한 상황을 견뎌낼 때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환수 기자: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zangpab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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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21, '전투용 적합' 최종판정 받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한국형전투기(KF-21) 보라매가 7일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하며 체계개발의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2015년 12월 체계개발 착수 후 10년 5개월, 2023년 5월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 이후 약 3년간의 후속 시험평가 끝에 이뤄진 결과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스웨덴·일본에 이어 독자 전투기 개발 능력을 완전히 확보한 8번째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월 12일 경남 사천 남해 상공에서 KF-21 시제 4호기가 비행성능 검증 임무를 수행하며 비행시험을 전면 완료했다. KF-21 개발은 총 1600여 회, 1만3000개 항목에 이르는 비행시험을 단 한 번의 사고 없이 완료하며 안전성을 입증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2026.05.07 gomsi@newspim.com 방사청에 따르면, KF-21은 2021년 5월 최초 시험평가를 시작해 올 2월까지 약 5년간 지상시험을 통해 내구성과 구조 건전성을 검증했다. 특히 2022년 7월부터 2026년 1월까지 42개월간 진행된 비행시험에서는 총 1600여 회 비행에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극저온·강우 등 악천후 조건 하 비행, 전자파 간섭 하 비행, 공중급유, 무장발사시험 등 1만3000여 개의 다양한 시험조건을 통해 비행 성능과 안정성을 완벽하게 검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투용 적합 판정은 KF-21 블록-I(기본성능·공대공 능력)의 모든 성능에 대한 검증이 완료됐음을 의미한다. 방사청은 KF-21이 공군의 작전운용성능(ROC)을 충족하고, 실제 전장 환경에서 임무 수행이 가능한 기술 수준과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노지만 방사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은 "국방부·합참·공군·한국항공우주산업(KAI)·국방과학연구소 등 민·관·군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룬 결실"이라며 "향후 양산 및 전력화도 차질 없이 추진해 공군의 작전수행 능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방사청은 비행시험 효율화를 위해 시험 비행장을 사천에서 충남 서산까지 확대하고 국내 최초로 공중급유를 시험비행에 도입했다. 그 결과 개발 비행시험 기간을 당초 계획보다 2개월 앞당길 수 있었다. KF-21 체계개발 사업은 올해 6월 종료되며, 양산 1호기는 올해 하반기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양산 1호기는 지난 3월 25일 경남 사천 KAI 공장에서 출고됐으며, 4월 15일 출고 22일 만에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물량은 순차적으로 실전 배치될 계획이며, 추가무장시험을 통해 공대지 무장 능력도 확보할 예정이다. 공군은 2032년까지 총 120대를 전력화할 계획으로, KF-21은 노후화된 F-4E·F-5E 전투기를 대체하는 한편, 대한민국 영공방위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방사청은 "검증된 성능을 바탕으로 글로벌 방산 4대 강국 도약의 서막을 여는 K-방산 수출의 핵심 무기체계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gomsi@newspim.com 2026-05-0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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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내란가담' 항소심 징역 15년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7일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심과 같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형량은 8년이 깎이며 대폭 낮아졌다. 내란전담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2-1부(재판장 이승철)는 이날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를 받는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은 그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바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7일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한 전 총리가 지난해 11월 26일 1심 결심 공판에서 최후변론을 하는 모습. [사진=서울중앙지법 영상 캡쳐] ◆ '내란 중요임무' 유죄 인정…위증은 일부 무죄로 뒤집혀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한 전 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형량을 징역 15년으로 대폭 낮췄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비상계엄 선포 관련 절차적 요건 구비 ▲주요기관 봉쇄 계획 및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관련 지시 이행방안 논의 등 두가지 공소사실이 입증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계엄 선포에 따른 조치가 국회를 봉쇄하는 등 위헌·위법하며, 계엄 선포로 군 병력 다수가 집합해 폭동으로 나아갈 것으로 인식했다고 보인다"며 "이러한 인식 하에 이 사건 내란 행위에 가담하기로 결의해, 윤석열에게 형식적으로 의사 정족수를 채운 국무회의 심의를 거칠 것을 건의하는 등 내란 행위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계엄 선포 직전 도착한 국무위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거나, 윤석열에게 의견을 제시하라는 언동을 하지 않은 점을 보면, 계엄에 반대했으나 결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접견실에 남아 이상민과 둘만 남아 10분 동안 계엄 관련 문건과 단전·단수 조치 문건을 자세하게 검토하고 협의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 (단전·단수) 지시사항을 차질 없이 실행되게 독려해 내란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사후 계엄 선포문' 관련 허위 공문서 작성·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공용서류 손상 혐의 등은 재차 유죄로 판단됐다. 다만 1심에서 전부 유죄로 인정된 위증 혐의는 이날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로 뒤집혔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김용현이 이상민에게 문건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 부분과 관련해 "이상민이 김용현으로부터 단전·단수 지시 문건을 교부받았을 때, 피고인이 당연히 봤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1심에 사실오인·법리오해가 있었다고 봤다.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 직후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통화해 국회 상황을 확인했다는 혐의와, 계엄 해제 국무회의 심의를 지연시켰다는 혐의는 재차 무죄로 판단됐다. ◆ 고법 "내란, 폭동으로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해" 재판부는 양형과 관련해 "내란죄는 폭동으로 국가조직의 기본제도 파괴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 자체를 직접 침해하는 범죄로서 그 성격과 중대성에 있어 어떠한 범죄와도 비교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란죄는 국가기관 기능 마비에 그치지 않고, 법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해 사회 안정성과 국민 기본권 보호 체계를 동시에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제1보좌기관이자 행정부 2인자이며 국가 정책 심의기구인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대통령의 권한이 합법적으로 행사되도록 보좌하고, 대통령을 응당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며 "피고인은 1980년 경 있던 위헌, 위법한 계엄 조치와 내란을 경험해 그런 사태가 야기하는 광범위한 피해와 혼란, 심각성과 중대성도 잘 알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여받은 권한과 지위에서 오는 막중한 책무를 저버리고 위와 같이 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려는 방법으로 내란에 가담하는 편에 섰고, 잘못을 감추려고 사후 범행도 저질러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자신이 저지른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부연했다. 다만 "피고인이 이 사건 내란에 관해 이를 사전에 모의하거나 조직적으로 주도하는 등, 보다 적극 가담했다고 볼 자료는 찾기 어렵고 피고인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되자 대통령을 대신해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해 계엄이 약 6시간 만에 해제됐다"고 설명했다. 검정색 양복에 흰 셔츠, 노타이 차림으로 법정에 나온 한 전 총리는 선고 초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자 급격하게 어두운 표정을 보이며 여러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주문 낭독 직후 재판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변호인과 대화를 나눈 뒤 퇴정했다. 특검 측은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원심 선고형에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판결문을 분석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hong90@newspim.com 2026-05-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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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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