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中 보복 나설시 관계 악화일로"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지난해 11월 중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인도네시아 발리 정상회담이 계기가 된 미중 간 소통 재개와 관계 개선 모멘텀이 '정찰풍선 사건'에 제동이 걸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양국 정상회담의 후속 논의 차원으로 지난 5~6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전격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4년 4개월 만의 미 국무부 장관의 방중이자, 친강(秦剛) 신임 외교부장과 대면할 수 있었던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기자회견하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사진=로이터 뉴스핌]2023.02.04 kckim100@newspim.com |
지난 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기자회견을 한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내 방중 전날에 이런 조치를 한 것은 우리가 준비한 실질적인 대화에 해가 된다"며 방중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뜻을 밝혔다.
중국은 지난주 미국 본토 영공을 비행한 풍선이 자국 것이 맞다고 인정했지만 정찰용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5일 "이 비행선은 기상관측에 주로 쓰이는 민수용 비행선이며 불가항력으로 미국에 진입했다"며 "미국이 민간 무인 비행선을 공격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시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중국 국방부도 미국이 비행선을 격추한 것은 "과잉 반응"이라고 반발했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돌발 변수가 미중 간 새로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식통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이 정찰풍선 영공 비행을 공식 발표한 지난 2일, 블링컨의 방중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블링컨 방중을 취소했고, 중국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관련 기업들의 정당한 권리와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고, 국방부는 "중국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동일한 수단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필요시 상응조치를 예고한 상황.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사전에 정찰풍선 격추 계획을 중국에 알리지 않았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중국이 충분히 불만을 표시할 수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미국 몬태나주 빌링스시 상공 위를 날으는 중국 소유의 것으로 추정되는 에어벌룬 형태의 정찰기구. 사진 출처는 소셜미디어. [재판매 및 DB금지] 2023.02.01.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에노도 이코노믹스의 다이애나 초이레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제 공은 중국 측에 넘어갔다"며 "관건은 시 주석이 공개적으로 미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것이냐인데 과연 그렇게 할지는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11월 대규모 '제로 코로나' 항의 시위로 리더십에 스크래치가 난 집권 2기의 시 주석에 있어 이번에야말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평소 철통같았던 중국의 '만리방화벽'이 정찰풍선 사건에는 뚫린 점에 주목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미국이 풍선을 격추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확산하고 있는데 당국이 검열하지 않기로 용인한 것은 결국 중국이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냐는 해석이다.
싱가포르국립대의 자 이안 총 정치학 부교수는 "중국의 정치 역학상 미국과 화해는 어렵다. 중국도 국내 문제들로 골머리이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미국과 계속 관계하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대중에 강력한 리더로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에 무인비행선이 민간 업체의 것이란 주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도 당장 블링컨 방중을 재추진하기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는 공화당으로부터 '늑장대응에 따른 직무유기'란 질타를 받고 있다. 당국은 떨어진 정찰기구의 파편들을 수집해 제원을 파악,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정보 수집이 가능한 정찰기인지 확인할 방침이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ASPI)의 대니 러셀 부회장은 "핵을 보유한 두 국가가 정찰기를 격추한 것은 조금 우려스럽다"며 "중국이 억울한 피해를 호소하며 보복하기로 한다면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로 회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양국 간 관계가 더욱 악화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WSJ에 따르면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중국의 현 외교정책은 안정 추구 기반의 정책들이고, 중국도 미국과 더 이상의 갈등 고조를 원치 않는다"는 전언이다.
중국의 독립 싱크탱크 인텔리시아연구소의 창업자 천딩딩은 미국에 있어 중국은 지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돼 왔기 때문에 이번 일이 특별히 새로운 관계 악화의 계기가 되진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사실 그냥 풍선이지 않느냐"며 "지루하고 심각한 국제관계에 조금의 흥미를 불러온 이벤트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wonjc6@newspim.com